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안재구 지음 / 돌베개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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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한테 돈을 더 주면 기쁜 일이 될까
 [책읽기 삶읽기 46] 안재구,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길어올리는 이야기란 나한테만 재미있을 수 있고, 나부터 따분할 수 있으며, 여럿이 함께 즐거울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고단하거나 힘든 삶을 담은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것 아닐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대단하지만 다른 이한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씩씩하거나 꿋꿋하게 살아가려 힘을 쓰지만, 남이 보기에는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발버둥을 치는 꼴일 수 있어요.

 사진은 어제나 그제를 찍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진은 꼭 오늘만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어제나 그제 이야기를 얼마든지 담거나 나타냅니다. 내 마음으로 가만히 떠올리면서 어제나 그제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요. 그러나 사진은 어제나 그제 모습을 어찌저찌 만들어서 찍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찍기만 어제를 못 찍지 않습니다. 내 삶 또한 어제를 일구지 못합니다. 어제는 어제이고 그제는 그제입니다. 나로서는 오늘 내 삶만 일굽니다. 다가올 앞날을 앞당겨서 일굴 수 없습니다. 며칠 뒤에 배가 고플 테니까 며칠 뒤 먹을 밥을 오늘 먹을 수 없습니다. 어제 못 먹은 밥을 오늘 곱배기로 먹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오로지 오늘 밥그릇만 비웁니다.

 지나온 내 삶은 즐겁게 되새길 수 있으나 슬프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프게 돌이킬 수 있으며, 반가이 곱씹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나온 내 삶이란 내가 어떻게 헤아린다 하더라도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득한 옛이야기입니다. 머나먼 옛 발자국이에요.

 사람들이 예전에는 한결 맑은 물과 바람과 흙을 누리면서 미리내도 보고 밤하늘 별도 훨씬 많이 보며, 박쥐나 땅강아지나 두더쥐하고도 벗삼으며 놀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논둑에서 개구리나 버마재비하고 벗삼으며 놀지는 못합니다. 어디에서나 자연을 잃고 어디에서나 자연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가까이합니다. 어디에서나 자동차와 가까이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하고 제 보금자리에서 부대끼기보다는 학교나 학원이나 시설에서 전문 보육교사나 학습교사하고 지식쌓기를 합니다. 안재구 님은 당신 아이들한테 당신이 걸어온 지난날을 이야기책 하나로 갈무리해서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습니다. 그러면, 안재구 님네 아이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면서 ‘안재구 님네 아이들이 낳아 돌볼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밀양시에서는 서쪽 교외 들판의 논 일대를 ‘터실’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금은 읍에서 시가 되어 집이 꽉 들어차 있지만 터실은 겨울날 우리 어린이들의 놀이터이고 여름에는 식물원과 작은 동물원이었다. 터실에서 자라는 것은 벼·보리·수수·콩·조 등 온갖 곡식과 여러 가지 채소뿐만 아니다. 밀양읍의 서쪽에 사는, 그러니까 내이동에 사는 아이들도 이 자연의 교실에서 함께 자랐다 ..  (62쪽)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몇몇이 남았을까 헤아려 봅니다. 2010년대에 서른 줄이나 마흔 줄을 보내는 사람들은 당신 어린 나날 이야기를 얼마나 곱씹거나 떠올리면서 당신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2010년대에 쉰 줄이나 예순 줄을 보내는 사람들은 당신 뒷사람한테 무슨 옛날이야기를 어느 만큼 되새기거나 아로새기면서 물려줄 수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스무 줄 젊은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이야기책 하나를 묶을 수 있을까요. 2010년대에 아홉 살이나 열아홉 살을 보내는 아이들은 앞으로 무럭무럭 커서 서른이나 마흔쯤 되었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쓴다 할 때에 무슨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나눌 만할까요.

 다른 집 아이를 생각하기 앞서 우리 집 아이를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집 아이가 일찍부터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 들어간다 할 때에 어버이로서 사랑다운 내리사랑을 물려줄 수 없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무슨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아이 똥오줌을 가리며 아이 스스로 똥오줌을 가리도록 할 뿐 아니라, 아이하고 잘 놀아 주지는 못하나 아이 손을 잡고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며 노는 동안 아이 손길과 살결을 느끼는 나날처럼 빛깔 고운 이야기가 더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운 날 겨울눈을 아이랑 함께 바라보며 눈쓸기를 하든, 새봄에 새눈 틔우는 멧나무를 아이랑 함께 바라보며 눈에 새기든, 스스로 치마를 입을 줄 안다며 용을 쓰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든, 곁에서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이 있어야 비로소 아이하고 함께 살아간다고 느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재구 오나.” “아이구, 내 새끼야. 이리 보자. 얼마나 컸능공.” 이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고, 할매들이 품어 등을 두드려 주던 손길이 그립다. 할매들은 나와 작은아버지에게 무엇을 해먹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  (111쪽)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이라는 이야기책은 수학자 안재구 님이 옥살이를 하는 동안 당신 딸아이한테 띄운 편지를 그러모았다고 합니다. 안재구 님은 옥살이를 하면서 ‘일제강점기에 당신이 어느 마을에서 어떤 어린이로 살며 어떤 어른이나 동무하고 복닥이며 자랐는가’를 편지로 적바림합니다. 아버지로 당신 아이한테 할 수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몫인 ‘이야기 남기기’를 편지쓰기로 합니다.

 몸으로 부대낀 나날을 이야기하고, 몸으로 살아낸 나날을 이야기하며, 가슴에 깊이 새긴 나날을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누구도 다시 찾거나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안재구 님은 당신 가슴으로 언제든지 떠올리고 얼마든지 되새깁니다. 안재구 님이 어릴 적 뛰놀던 들판은 예전 들판이 아니요, 올해에 피는 꽃은 일흔 해나 여든 해 앞서 피던 꽃하고는 다른 모양새 다른 냄새 다른 빛깔이라 할 테지만, 올해에 피는 꽃을 바라보며 일흔 해 앞서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이듬해에 다시금 마주할 봄날에는 여든 해 앞서 느끼던 봄꽃을 되돌아볼 수 있어요.

 안재구 님은 “고향을 모르고 사는 너희들에게 옛사람들의 생활과 슬기, 우리 선조들의 풍상(4쪽)”을 들려주려는 생각으로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누구나 태어난 곳이 있으니 고향이 없다 할 수 없으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제 고향마을을 떠올리거나 되새기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고향마을 숨결과 살결을 보듬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돈벌이 되는 일자리를 찾는 데에 바쁘고, 내 이름값 높일 가방끈을 늘이느라 힘겨우며, 내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키우는 데에 마음쓰느라 벅찹니다. 어쩌면 안재구 님네 아이들도 이런 오늘날 흐름에 쉬 휩쓸릴까 걱정스럽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쓰기를 했겠구나 싶고, 오늘날 삶터가 그닥 살갑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지 못하니까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자락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하는구나 싶어요.

 살가운 삶이라면 굳이 글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아도 되고, 사랑스러운 삶이라면 애써 책으로 이야기를 묶지 않아도 되며, 아름다운 삶이라면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며 넉넉합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이야기는 몸에서 몸으로 잇지, 글로 적어 글로 잇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할머니는 시집올 때 무척 많이 해 가지고 오셨는가 싶다. 옛날에는 해 가지고 온다고 해 봤자 무명·명주·삼베밖에 더 있었겠는가. 이 무명·명주·삼베 중에서 고운 것은 할머니의 친정어머니가 손수 길쌈하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 평생, 할아버지 소용은 물론이고 윗대 어른 소용도, 그리고 많은 시동생 소용도, 아랫대 두 아들, 두 딸의 소용도 다 감당했고, 나도 어릴 때 이 베로 옷을 해 입고 이불도 만들어 덮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물건을 챙겨 보니, 그러고도 무명·명주·삼베가 남아 있어서 초상에 보태 썼다고 했다 ..  (223∼224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길쌈을 하지 않습니다. 길쌈을 가르쳐 줄 어른이나 어버이가 없고, 길쌈을 할 만한 연장이 없으며, 길쌈을 하기까지 흙을 일구어 거둘 목화가 없습니다. 누군가 목화농사를 지어 거둔 다음 실로 잣고 천으로 엮어 주어야 비로소 돈을 치러 장만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 아이도 스스로 길쌈을 한다거나 옷짓기를 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 되는 나부터 스스로 길쌈을 한다거나 옷짓기를 하지 못하니까요. 아이는 어버이가 꾸린 삶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제 어버이 삶을 돌아보면서 제 어버이가 걷지 못한 길을 얼마든지 걸어갈 만합니다. 어버이 그늘에서 맴돌 수 있지만, 어버이 그늘이 아닌 내 길을 찾아 씩씩하게 살아갈 만합니다. 안재구 님이 당신 어린 나날을 이야기책 하나로 갈무리한 까닭은 당신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길을 찾아 씩씩하며 꿋꿋하게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당신은 당신대로 이렇게 살아낸 나날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하니까, 당신 아이들은 당신 아이들대로 너희 삶을 일구면서 앞으로 너희 삶을 너희 새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들려주면 좋겠다는 꿈을 나누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 할아버지는 새해 들어 모든 생활필수품이 배급제로 되자 가장 안타까운 일이 용아 먹일 분유를 못 구하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쌀을 빻아 백설기를 쪄서 말리고 다시 가루를 내어 암죽을 끓여 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탕을 넣지 못해 단맛이 없으니 아이가 먹지 않고 혀로 밀어냈다. 젖이 모자라니 암죽으로 키울 수밖에 없는데 아이는 달지 않다고 먹지 않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 집에 와서 할아버지는 양치질을 오래오래 하고서 자기 입으로 백설기를 꼭꼭 씹어서 단맛이 날 때, 말하자면 침 속에 있는 지아스타제로 단맛이 생길 때 그것을 용아에게 먹였다 ..  (249쪽)


 누구나 어버이나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어버이나 어른으로 지내면서 집이나 자가용이나 살림살이를 가득가득 갖출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제 아이한테 이 돈 저 살림살이를 하나씩 물려줄 수 있습니다. 큰회사를 일군 분들은 당신 아이한테 큰회사 이름과 돈과 힘을 물려주려고 여러모로 용을 쓰곤 합니다. 재벌총수네 아이는 똑같이 재벌총수가 되고, 대학교수네 아이는 똑같이 대학교수가 됩니다. 의사네 아이는 똑같이 의사가 되고, 정치꾼네 아이는 고스란히 정치꾼이 되곤 합니다.

 나는 아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무슨 빛그림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곱씹습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물려줄 빛그림이란 어떠한 빛으로 이루는 그림이 될 때에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즐거울까 되뇝니다. 나 또한 무슨무슨 재벌총수네처럼 아이한테 어마어마한 돈을 남기는 어버이여야 할까요. 나 또한 내 아이가 대학교수가 되든 법관이 되든 의사가 되든 하도록 이끌어야 좋거나 훌륭한 어버이 노릇을 다했다 할 만한가요.

 내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물려받거나 이어받을 때에 빙그레 웃을 수 있을는지요. 우리 아이는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느끼거나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날 때에 신나거나 즐겁거나 고맙다 할 만할는지요. (4344.3.30.불.ㅎㄲㅅㄱ)


―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소리도 다른강? (안재구 씀,돌베개 펴냄,1997.10.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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