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속살 - 도시여행자 김대홍이 자전거 타고 카메라에 담은 우리 도시 이야기
김대홍 지음 / 포토넷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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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람, 작은 자전거, 작은 이야기
 [책읽기 삶읽기 45] 김대홍, 《도시의 속살》



 인천에 살면서 서울로 마실을 하거나 서울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일은 많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인천으로 마실을 다니거나 인천으로 일거리를 찾아 오가는 일은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밀양이나 청도에 살면서 부산이나 대구로 마실을 하거나 일거리를 찾아 떠나기는 할 테지요. 그러나 부산이나 대구에 살면서 밀양이나 청도로 마실을 다니거나 일거리를 찾아 오가는 일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 웬만한 일거리는 더 커다란 도시에 많습니다. 더 작은 도시나 시골로 들어가면 일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일거리라 한다면 더 큰 도시에 많을밖에 없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커다란 도시에 더 돈 될 만한 일이 많다 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 커다란 도시로 몰리다 보니, 조금 더 작은 도시는 볼품을 잃거나 빛이 바랩니다. 더 커다란 도시는 더 커다랗게 되어야 하고, 더 작은 도시는 커다란 도시에 지지 않으려고 아웅다웅합니다.


..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길은 걷기 좋다. 길은 고둥을 닮았다 ..  (92쪽)


 군 한 곳에 5만이 살든 10만이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7만이거나 8만이라면 더 낫다 할 수 없고 좀 모자라다 할 수 없습니다. 5만이면 5만대로 즐겁고 10만이면 10만대로 괜찮습니다.

 군이 굳이 시가 될 까닭이 없습니다. 읍이 반드시 군으로 홀로서야 하지 않습니다. 면이 애써 읍이 되어야 하거나 리를 꼭 면으로 올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리가 면이 된대서 올라간달 수 없고, 면이 읍이 되니까 올라가는 셈이 아닙니다. 서울이 되어야 할 부산이나 대전이 아닙니다. 광역시가 되어야 할 통영이나 창원이 아닙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살던 때, 인천보다 작은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인천이 큰도시라서 부럽다’는 말이랑 ‘서울하고 가까우니 좋겠다’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서울사람은 인천을 시골로 여겼으나, 서울하고든 인천하고든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인천만 하더라도 대단한 도시로 여겼습니다.

 인천을 떠나 아홉 해쯤 서울에서 살던 때, 서울에서 살아간다니 인천에 있는 동무들은 부러워 하거나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면 ‘서울 깍쟁이’라고 했습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삶은 서울내기가 아니지만, 서울이라면 다 똑같은 서울내기가 되고 맙니다.

 서울을 떠나 충북 충주시 끄트머리 음성하고 맞닿은 멧골자락으로 들어가서 지내던 때, 도민이 되니 이것저것 새롭게 느낍니다.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제 온나라 어디이든 길이 잘 뚫렸’으니까, 어느 시골에서든 서울로 손쉽게 오갈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서울사람은 술자리에서 인천사람이 일고여덟 시쯤이면 자리를 털고 바지런히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서울사람은 한낮부터 시골사람이 얼른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재촉해야 하는 줄을 모릅니다.


.. 3000원짜리 칼국수는 푸짐하다. 익지 않은 김치와 푹 익은 김치, 오징어포 무침을 곁들여 든든하게 저녁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 홀려 두부 파는 노점 앞에 섰다. 한 모를 사고, 사진기를 꺼내 찍으려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이거 비싼 거죠?”라고 묻는다. “쫌요.”라고 하니, “무척 좋은 직장 다니시나 봐요.”라고 말한다. DSLR카메라가 비싸긴 하다. DSLR카메라를 갖고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직장 다닌다’고 믿는 아주머니와 나는 같은 시대 같은 동네에 산다 ..  (139∼141쪽)


 《도시의 속살》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던 김대홍 님이 남녘땅 여러 도시를 자전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가며 마주한 사람과 삶과 터전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오늘날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가운데 ‘자가용 아닌 자전거’라든지 ‘자가용 아닌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 땅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마주한 이야기를 신문에 이어싣는 일은 아직 없다고 느낍니다. 두 다리로 내 고향을 느낀다든지, 자전거로 이웃마을을 만나는 일이란 좀처럼 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이 오늘날처럼 두루 퍼지지 않던 꽤 예전에는 신문기자이든 잡지기자이든 기차나 버스를 타고 취재를 다녔겠지요. 때로는 취재 자동차를 탔겠지만, 맨몸으로 골골샅샅 다니던 이들이 꽤 있었겠지요.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숱한 여행책을 들여다보면 으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거쳐 찾아가는 길’을 ‘서울에서 길을 떠나는 틀’로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하나같이 판박이라 할 만하고, 한결같이 뻔하다 할 만합니다.

 찬찬히 읽으면, 《도시의 속살》도 여느 여행책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남녘땅 도시를 ‘자전거와 기차와 버스’로 만난다는 대목이 다르다 할 뿐, 남녘땅 도시를 만나며 풀어내는 이야기 얼거리는 매한가지입니다. 도시마다 어떠한 발자취였고 어떠한 오늘날 모습인가를 짚는데, 좀 많다 싶도록 ‘지나온 발자취’ 이야기가 크게 차지합니다.


.. 6070거리는 옛날 드라마 세트장 같다. 안성장터 특징이 담겨 있지 않아 아쉽다. 우리는 사라진 것들을 아쉬워하지만 지금도 먼 훗날 아쉬워할 것들을 숱하게 지우는 중이다 ..  (200쪽)


 이야기책 《도시의 속살》이라 한다면, 말 그대로 ‘속살’이란 ‘이름과 힘과 돈이 있던 사람들이 벌인 좀 많이 알려진 옛이야기’가 아니라, ‘이름도 힘도 돈도 없으나 예쁘며 즐거이 살아온 하나도 안 알려지거나 동네에서만 살가이 아닌 삶이야기’에 눈길을 맞추었다면 훨씬 재미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속살》은 ‘자전거와 기차와 버스’로 한결 천천히, 조금 더 느리게, 값싸면서 호젓한 밥과 술과 잠집을 마주하며 누리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애써 다큐멘터리 영화나 사진처럼 ‘아주 가난하거나 몹시 꾀죄죄해 보이는’ 밑바닥 사람들을 파헤치려 하지 않습니다. 국수장수이건 두부장수이건 스스럼없이 만납니다. 시골 장마당이건 멧길이건 그렁저렁 돌아다닙니다.

 더 돋보여야 할 이야기란 없습니다. 더 뒤처져야 할 이야기란 없습니다. 모두 사람들이고, 모두 삶이며, 모두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번쩍번쩍 눈부시다 해서 이야기가 훨씬 많을 도시일 수 없습니다. 이제 많이 기울어졌다 하기에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도시일 수 없어요.

 이야기란 언제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야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릴 뿐입니다.


.. 작은 자전거라 속도가 느린 단점은 곧 도시여행에선 장점이었다. 느리니 그만큼 찬찬히 보고 많이 볼 수 있었다. 웬만하면 옆길로 새고 많이 보자는 여행 목적과는 잘 들어맞았다. 작고 귀여운 자전거라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왔고, 아이들은 ‘태워 달라’라고 조르며 사진모델이 돼 주었다 ..  (317쪽)


 자가용으로 씽씽 달리면 ‘가려는 곳’까지 거침없이 빨리 갑니다. 자전거로 씽씽 달려도 ‘가려는 곳’에 자가용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빨리 갑니다.

 자가용으로 달려도 느리게 20킬로미터 밑으로 달릴 수 있으면 마을을 조금이나마 느끼겠지요. 자전거로 달려도 20킬로미터 넘게 달린다면 마을이건 동네이건 시골이건 도시이건 느끼기 어렵겠지요.

 작은 사람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작은 마을을 찾아다닐 때에 작은 이야기를 작은 손으로 작게작게 길어올립니다. 큰 사람은 큰 비행기를 타고 큰 나라를 찾아다니며 큰 이야기를 뽑아오겠지요. (4344.3.22.불.ㅎㄲㅅㄱ)


― 도시의 속살 (김대홍 글·사진,포토넷 펴냄,2010.9.15./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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