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45] 개수대

 부엌에서 밥그릇이나 수저를 씻는 물을 일컬어 ‘개수’라 합니다. 부엌에서 쓴 물이 흘러 나가도록 마련한 곳을 ‘수채’라 합니다.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언제나 ‘씽크대(sink臺)’와 ‘하수도(下水道)’라는 낱말만 들었습니다. 어린 날부터 ‘싱크대’조차 아닌 ‘씽크대’와 ‘하수도’라는 낱말만 들었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으레 ‘씽크대’와 ‘하수도’라고만 말할 뿐, 달리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어버이 집에서 나와 홀로 살림하며 살아가던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들 입에서 ‘개수대’와 ‘수채구멍’이라는 낱말을 듣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낱말이니 낯설었지만, 낯설다고 느끼기 앞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온 사람인지 뿌리부터 궁금했습니다. 이제 나는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한테 ‘개수대’와 ‘수채구멍’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는 제 아버지 말을 귀담아들으며 “응, 개수대.”나 “응, 수채구멍.” 하고 되뇝니다. 오늘날에는 어릴 적부터 ‘개수대’나 ‘수채구멍’이라는 말을 들을 또래는 없을 테지만, 애 아버지인 나는 설거지를 개수대에서 하고 수채구멍에 개수를 쏟는걸요. (4344.3.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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