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읽기 삶읽기 사람읽기 4
― 세계문학전집 말고 사진책을
집에서 아이 어머니하고 함께 사진책을 보는데, 아이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를 합니다.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 세계문학전집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지 말고 좋은 사진책을 장식용으로 꽂아 두면 더 좋을 텐데요.”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꽂는 일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 말을 듣고 보니, 사진책만큼 ‘사람들한테 그럴싸해 보이도록 꽂을 만한 책치고 사진책만큼 좋은 책’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게다가 글로만 이루어진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아 이 책을 다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하지만, 사진책을 ‘책꽂이 꾸미기’로 가득 꽂는다면, 가끔은 그냥 주루룩 넘기기라도 할 테니까 ‘장식용 사진책은 이래저래 어떻게든 다 훑는’ 일이나마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사진책은 값이 싸지 않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는 사람과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머니가 탈탈 털리도록 하는 비싼 책입니다. 그러나 좋은 사진책 때문에 주머니가 탈탈 털리더라도 마음이 다친다거나 살림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림돈은 다시 벌기 마련이요, 책값으로 돈을 쓴 만큼 내 마음밭이 한결 기름질 수 있습니다.
책꽂이를 꾸민다며 책을 들이는 사람한테는 글책이든 사진책이든 그림책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사람들한테 자랑하려고 책꽂이를 마련하는 이들한테는 천만 원이나 이천만 원은 돈이 아닙니다.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에 이르는 자가용도 쉽게 뽑으니까요. 이렇게 돈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으며 값나가는 사진책’을 몇 천만 원어치 장만해서 집안 마루 한쪽을 ‘놀랍고 대단한 사진책’으로 꾸미는 일이란, 어떻게 보니 대단히 괜찮은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첫째, 보기에 좋습니다. 둘째, 자랑할 만합니다. 셋째, 손님이든 집임자이든 ‘글 읽느라 애먹지 않으면서(?) 책 문화를 맛봅니다. 넷째, 나중에 책이 짐스러워 내놓으려 할 때에 다른 사람이 고맙게 넘겨받는다든지 헌책방으로 흘러들면서 좋은 사진책을 우리처럼 가난한 사진쟁이들이 값싸게 사서 즐길 수 있습니다.
다섯째를 덧붙인다면, 사진을 모르는 집임자라 하더라도 좋은 사진책을 가끔 들추면서 천천히 ‘사진 보는 눈’과 ‘사진으로 우리 터전 읽기’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제가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가끔가끔 마주하는 나라밖 좋은 사진책들은 어쩌면 돈있는 누군가가 집안 책꽂이를 꾸미려고 장만하던 책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집안 책꽂이를 이런저런 돋보이는 책으로 꾸미다가 나중에 지겹거나 취미가 바뀌어 내놓은 책일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이란, 이렇게 흘러드는 책이든 저렇게 나오는 책이든 좋은 새 임자를 만날 수 있게끔 다리를 놓기 때문에, 돈있는 이들이 좋으면서 값나가는 책을 처음에 기쁘게 장만해 줄 수 있으면, 뭇사람한테 고마운 선물이 됩니다. 또한, 퍽 비싼 값이 붙어 나오는 사진책을 돈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사들여 준다면, 애써 사진길을 걸어가며 좋은 사진을 이룩하자고 하는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삶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알기에 삶을 돌아보면서 사진책 또한 조용히 돌아보아 줍니다. 저는 아이 아버지 되는 사람으로서 사진을 찍거나 읽는다며 버둥거리는데, 사진만 읽으려 애써 본들 사진조차 제대로 못 읽기 일쑤입니다. 아이 어머니처럼 삶을 먼저 튼튼히 다스리면서 읽는 매무새를 길러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합니다. 돈없는 사람은 푼푼이 그러모아 한 달에 한두 권씩 사진책을 장만하면 되고, 돈있는 사람은 집안을 예쁘게 꾸미도록 한꺼번에 목돈을 들여 책꽂이 채울 사진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4344.3.13.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