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핀 - 꼬마 빌리의 친구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3
로얼드 달 지음,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숲삶을 찾는 사람, 숲이야기를 잊은 사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6] 패트릭 벤슨·로알드 달, 《민핀》(시공주니어)



 깊은 밤에 쉬를 하려고 일어납니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뒷산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새일까, 올빼미 소리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새소리는 오래도록 그치지 않습니다. 텃밭 가에 쉬를 누고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새소리는 내처 이어집니다.

 낮에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으로 다녀오는 길에는 용산리 숯고개 비탈논 얼음 녹은 자리에서 멧개구리 깨어나 우는 소리 가득했습니다. 사람이 논둑을 거닌다면 멧개구리 울음소리가 뚝 하고 그치지만, 한길에서 자전거로 낑낑대며 오르막을 타는 동안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곽곽 하면서 이어집니다.

 길디길었다는 겨울이 어느덧 저뭅니다. 우리 살림집 깃든 멧자락 비탈논에는 아직 눈과 얼음이 다 안 녹았고, 이 둘레 멧개구리 또한 아직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눈과 얼음이 제법 녹은 자리가 있으니, 어쩌면 이곳에 멧개구리가 알을 낳았을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하고 논둑을 거닐며 개구리알이 있는가 돌아보면 군데군데 보일 수 있겠지요.

 날이 풀리니 멧등성이나 풀섶이나 논둑마다 파릇파릇 새 풀이 돋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날씨 탓에 먹이가 모자라 애먹었을 ‘풀 먹는’ 멧짐승은 이제부터 조금씩 살 만해질까 궁금합니다. 머리는 검고 턱은 하얀 작은 멧새들도 새끼를 치며 새봄을 기쁘게 맞이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살림집 물은 여태 녹지 않아 날마다 물을 길러 멧길을 오르내리는데, 낮나절 물을 길으러 오가다 보니 새로 깬 듯한 새끼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기스락에 가득합니다.


.. 빌리의 엄마는 항상 꼬마 빌리에게 해도 좋을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정확히 일러 줍니다. 그런데, 해도 좋은 일은 하나같이 재미없는 일들뿐이고, 해선 안 되는 일은 하나같이 신나는 일들입니다 … 하지만 빌리는 언제나 그냥 얌전히 있는 게 너무도 지겨웠습니다 ..  (5쪽)


 햇볕이 따사롭다고 느끼기에, 방마다 깔아 놓던 담요와 이불을 걷어 먼지를 털고 볕바라기를 시킵니다. 이 가운데 이불 두 채를 빨아 봄볕에 말립니다. 네 살 난 아이는 아버지 일하는 둘레에서 어정거리면서 저도 제 이불을 들고 이리 나르고 저리 나릅니다. 이제 날이 꽤 따스하니까 아이가 마당이며 멧자락에서며 더 신나게 뛰어놀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다리힘을 더 씩씩하게 길러 세발자전거를 스스로 탈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느낍니다. 뒤에서 밀지 않으면 발판을 스스로 굴리지 못하기는 하지만, 머잖아 혼잣힘으로 자전거를 낑낑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 《민핀》을 펼칩니다. 그림책 《민핀》에 나오는 어린이는 우리 아이하고 견주면 나이가 꽤 많다 할 열 살 남짓인데, 이 아이는 시골자락에서 살면서 바깥마실을 거의 못합니다. 《민핀》에 나오는 어린이네 어머니는 아이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도록 하거든요. 집에서 얌전히 지내라고만 하거든요.

 알쏭달쏭합니다. 도시 아닌 시골자락에서 살아가면서 아이를 집에 가두다니요. 아이는 숲을 신나게 쏘다니고 싶어 하는데, 아이 어머니는 숲에는 무서운 녀석들이 많아서 잡아먹힐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림책 《민핀》에서는 참말 숲에 무서운 녀석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깊디깊은 숲이라면 그러할는지 모르나, 어쩐지 거짓스럽습니다. 불을 뿜는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그리 믿기지 않습니다. 불 뿜는 괴물을 아이가 슬기롭게 물리쳐서 숲속 ‘민핀’들이 걱정하지 않으며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줄거리인데, 글쎄, 얼마든지 생각날개를 펼쳐 이런 얘기도 짓고 저런 얘기도 꾸밀 수 있겠지요. 제가 어른이라서 불 뿜는 괴물을 안 믿는다 여길 수 있습니다만, ‘아이 엄마가 아이를 숲으로 못 가게 막는 까닭’이 ‘불 뿜는 괴물’ 때문이요, 참말 숲에 불 뿜는 괴물이 산다고 하는 줄거리는 우리 터전에 그리 맞갖지 않습니다.

 불 뿜는 괴물보다는 늑대라든지 여우라든지 곰이라든지 살쾡이라든지 무늬범을 이야기해야 알맞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양사람은 불 뿜는 괴물 이야기를 꽤나 좋아하는 듯한데, 깊디깊은 숲은 사람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아 들짐승이나 멧짐승이 그나마 홀가분하게 지내는 보금자리이고, 이 보금자리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선다면 들짐승이나 멧짐승으로서도 썩 달갑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좋은 먹이’가 나타났다고 여길 만하겠지요.


.. “새들이 그렇게 잘 도와주나요?” 빌리가 다시 물었습니다. “새들은 우리한테 무슨 일이든 다 해 준단다. 새들은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도 새들을 좋아해. 우리가 새들의 식량을 나무 속에다 저장해 두니까.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추운 겨울이 와도 새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거든.” 돈 미니가 대답했습니다 ..  (25쪽)


 숲에서 숲사람을 만나고 숲짐승을 마주합니다. 숲에서는 숲나무를 느끼고 숲풀을 얼싸안습니다. 숲이기에 숲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숲그림자에 자리를 펴고 드러누울 수 있습니다. 숲길은 사람 발자국 하나 없을 테지만, 짐승 발자국이 여기저기 있기도 할 테지요.

 참말 숲에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발자국을 남깁니다. 숲흙은 더없이 깨끗하며 기름지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눌러도 소옥 들어갑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발자국을 남길 수 없습니다. 온통 시멘트바닥이거나 돌바닥이거나 아스팔트바닥입니다.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도무지 않을 수 없으며, 도시에서는 길바닥에 퍼질러 앉으면 차에 치인다든지 사람들 발길에 채입니다. 아니, 워낙 지저분해서 아무 데나 퍼질러 앉지 못해요. 게다가 얼마나 시끄러운가요. 더구나 자동차 배기가스는 얼마나 매캐한가요.

 숲에서는 자리를 깔고 앉아야 합니다. 고운 흙과 풀을 타고 물기가 올라오니까 자리를 깔고 앉아야 엉덩이가 안 젖습니다. 도심지 길바닥에서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습니다. 이곳도 막히고 저곳도 막힙니다. 사람들은 도심지에서 잘도 버티면서 용하게 돈벌이를 하며 살아갑니다. 풀포기 하나 마음껏 고개를 내밀 수 없는 터전에서 사람들은 참 대단하게 복닥거리면서 꿈을 키운다든지 예술을 펼친다든지 스포츠를 즐긴다든지 정치나 경제를 한다든지 얼크러집니다.

 어쩌면, 불 뿜는 괴물이란 숲이 아닌 도심지 한복판에 있지 않을까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은 숲이 아닌 도심지에 있지 않나요.


.. “빌리야, 넌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네가 곧 백조를 못 탈 정도로 무거워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돈 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빌리가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백조보다 더 큰 새는 없단다. 하지만 백조가 더 이상 널 데려다 주지 못하더라도, 네가 우리를 보러 여기로 와 주면 좋겠다.” ..  (46쪽)


 아이들은 실컷 뛰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얌전히 굴 때에는 얌전히 굴어야 하지만, 여느 때에는 거리낌없이 뛰놀아야 합니다. 그런데 얌전히 굴어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문득 궁금합니다. 저부터 우리 집에서 아이한테 밥자리에서 얌전히 좀 굴라고 말하는데, 아이로서는 이리 장난하고 저리 놀며 그리 딴청 피우고 싶은지 모릅니다. 그래, 다 좋아요. 다만, 놀려면 놀 기운이 있어야 하고, 놀 기운이란 밥을 먹으며 샘솟습니다. 밥은 밥대로 알뜰히 먹고 배가 불러야지 이리 뛰든 저리 달리든 하겠지요.

 밥을 먹을 때에는 고맙게 밥그릇 비울 수 있다고 두 손 모아 하늘과 흙한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오늘 하루 신나게 놀도록 목숨을 불어넣어 주어 고맙다고 두 손 가지런히 배에 올려놓고 눈을 감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이 두 가지를 아이가 함께 즐거이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어버이 된 나부터 조금 더 옳고 바르게 잘 지키지 못하니까 아이도 어버이 따라 개구지거나 어긋나게 놀지는 않을까요. 어버이부터 한결 신나며 알맞게 살아가는 매무새를 다스리지 못하니까, 아이도 자꾸 막나가려 하지는 않는가요.

 우리 살아가는 터전에서 고맙지 않은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어찌저찌 해서 돈을 제법 벌어들일 수 있어도 고마운 노릇이고, 이래저래 하는 일마다 막히며 가난하게 지내고 말아도 고마운 노릇입니다. 돈을 제법 거머쥐어 마음껏 쓸 수 있는 사람은 이대로 삶을 마주하거나 배우거나 느낍니다. 돈을 거의 만지지 못하며 쪼들리는 사람은 이대로 삶을 맞아들이거나 익히거나 깨닫습니다. 더 나은 삶이나 더 슬픈 삶이란 없습니다. 주어지는 삶을 어떻게 느끼느냐를 대수로이 살펴야 합니다.

 그림책 《민핀》에 나오는 아이는 제 어머니한테 ‘숲속 민핀’ 이야기를 숨깁니다. 《민핀》에 나오는 아이는 어느덧 몸이 꽤 자라서 그만 해오라기 등에 타며 하늘을 신나게 날아다니는 놀이를 즐길 수 없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예나 이제나 아이한테 숲에 가지 말고 얌전히 지내라고만 말합니다. 아이는 어머니 말을 고분고분 듣지만 속으로는 ‘어머니 말을 안 듣고 숨기는 이야기를 자꾸자꾸 쌓’습니다.

 아이는 제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 우리 숲 나들이 함께 해요. 깊이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숲에서 자리 깔고 함께 밥을 먹거나 책을 읽어 봐요.” 하고 이끌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보고 집에서만 지내지 말고, 집 곁에 펼쳐진 숲으로 조금씩 발을 디뎌 보자고 손을 잡고 이끌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하지는 못하나 궁금합니다.

 어머니도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 또한 아이였을 텐데, 어머니는 왜 아이였던 당신 넋을 건사하지 못하고, 아이는 또 왜 어머니하고 ‘좋으며 사랑스러운 숲삶과 숲이야기’를 함께 나눌 생각을 못하는지 아쉽습니다.

 비밀은 비밀대로 살가우며 좋기도 할 테지만, 비밀 아닌 비밀로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이 살아갈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이 함께해야 한결 살가우며 좋습니다. 숲삶은 혼자 찾거나 누린다고 해서 좋은 숲샆이 되지 않습니다. 숲이야기를 자꾸 잊는 사람은 착한 마음과 살가운 이야기 또한 자꾸 잊거나 잃습니다. (4344.3.13.해.ㅎㄲㅅㄱ)


― 민핀 (패트릭 벤슨 그림,로알드 달 글,우미경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9.2.5./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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