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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을 읽지 않고 방송을 보지 않으며 인터넷소식조차 살피지 않기 때문에, 나와 우리 집 살붙이는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을 하나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우리 집 살붙이는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우리들은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보금자리와 마을’을 알고 싶을 뿐이다.

 2월에서 3월로 넘어온 요 며칠 사이, 멧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새로 돋는 풀싹이 싱그럽다. 새벽에 민방위훈련을 갔다 오니, 시골 마을회관에 켜 놓은 텔레비전에서 꽃샘추위이니 무어니 하면서 서울시청 앞에서 날씨가 춥다며 벌벌 떠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꽃샘추위이건 봄추위이건 늦겨울추위이건, 들판과 숲속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다. 우리 집 텃밭에도 새로운 풀싹이 잔뜩 돋았다.

 우리 집 살붙이들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소식을 읽지 않기 때문에, 신문이며 방송이며 인터넷소식으로 무엇이 나오는지를 하나도 모른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봄얘기로 ‘추위에도 돋아나는 풀싹’을 다루거나 보여줄 수 있겠지. 어디에선가 벌써 달래를 캔다 할는지 모르고, 꽃다지나 돌나물을 캤다고 할는지 모르리라. 이런 이야기도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소식에 나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문에든 방송에든 인터넷소식에든 이런 얘기가 나온들 우리하고는 아무런 이음줄이 없다. 우리는 우리 집 앞 멧기슭에서 봄나물과 봄풀을 보면 되니까. 우리는 아이 손을 맞잡고 천천히 멧길을 거닐며 봄 풀싹을 마주하면 되니까.

 새벽부터 삼십 분 남짓 민방위훈련 긴급소집 때문에 불려가느라 바빴다. 나는 늘 새벽 두 시에서 너덧 시 사이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 때문에 새벽 여섯 시에 맞추어 마을회관에 가서 이름 스윽 적고 돌아오는 일이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새벽 여섯 시란 한창 머리가 달구어지면서 내 삶과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하는 때. 신나게 글을 써야 하는데, 쓰던 글을 얼추 마무리짓고 셈틀을 꺼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회관을 다녀온다.

 집식구는 고이 잠든 채 깨지 않는다. 집식구가 깰까 걱정하면서 살금살금 움직이며 겉옷을 벗는다. 아이 기저귀를 만져 보니 안 젖었다. 아이는 밤새 아직 오줌을 누지 않았다. 조금 뒤 오줌을 누면서 깨려나. 오줌을 누었어도 안 깨면 좋으련만. 오줌을 누었다고 뒤척일 때에 아버지가 얼른 갈아 줄 테니까, 그대로 새근새근 꿈결을 즐기면 좋으련만.

 다시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아 모처럼 여러 누리집을 둘러보다가 ‘서울 홍익대학교 청소부’ 이야기를 읽는다. 얼마 앞서 이들 서울 홍익대 청소부들이 파업을 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일이 있었고, 이들 청소부들이 바라던 대로 무언가 뜻을 이루었다 하는데, 제대로 다 이루지는 못한 듯하지만, 이모저모 그동안 못 누리거나 빼앗겼던 권리를 얼마쯤 찾았다고 한다. 쉬는 날이란 없던 청소부한테 조금이나마 쉬는 날이 주어지고, 터무니없이 적은 일삯이 조금이나마 올랐단다. 그래, 일삯이 얼마나 올랐나 했더니 한 달 75만 원에서 94만 원이 되었단다.

 궁금하다. 75만 원이든 94만 원이든, 이 돈에는 ‘4대 보험’이 어떻게 되었을까. 4대 보험 값을 회사(대학교)에서 내주고 75만 원이나 94만 원을 받는지, 이 돈에 4대 보험 값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청소부들이 출퇴근할 때에 드는 찻삯이나 낮이나 저녁에 먹을 밥값은 이 일삯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궁금하다. 청소부들치고 아이 안 키우는 아주머니는 없을 텐데, ‘육아수당’이 이 일삯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궁금하다. 청소부한테도 근속수당이나 연차수당이 있을까. 어느 일터이든 안식년이 있는데, 청소부도 안식년을 받는지 궁금하다.

 75만 원 일삯에서 94만 원으로 자그마치 19만 원이나 한꺼번에 올린다 한다면, 19만 원이라는 돈은 처음부터 제대로 주었어야 하는 돈이다. 더구나, 이제부터 94만 원을 준다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94만 원을 주었어야 한다는 소리요, 이제는 94만 원보다 더 주어야 한다는 소리이며, 얼마든지 더 줄 수 있다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청소부들이 못 받은 몫을 대학교에서는 알뜰히 돌아보며 제대로 챙겨 주기는 할까.

 나는 생각한다. 대학교 청소부와 대학교 교수는 일삯을 똑같이 받아야 한다. 대학교 청소부와 대학교 교수가 일하는 시간은 같아야 한다. 대학교 청소부가 일할 때에 대학교 교수도 일해야 한다. 대학교 교수가 쉴 때에 대학교 청소부도 쉬어야 한다. 대학교 교수가 밥을 먹는 곳이 따로 있다면, 대학교 청소부가 밥을 먹는 곳이 따로 있어야 한다. 대학교 교수가 느긋하게 쉬는 방이 따로 있다면, 대학교 청소부가 쉬는 방이 따로 있어야 한다. 대학교 교수한테 건물 지킴이나 학생들이 꾸벅 인사를 한다면, 대학교 청소부한테 건물 지킴이나 학생들 또한 꾸벅 인사를 해야 한다.

 대학교 교수도 내 아버지요 어머니이고, 대학교 청소부도 내 아버지요 어머니이다. 대학교 교수도 대학생 아이를 두고, 대학교 청소부도 대학생 아이를 둔다.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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