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과 책읽기


 헌책방에 다니기 때문에 헌책을 따로 보고 새책을 갈라 보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에 다니지 않았다면 모든 책을 똑같이 책으로만 바라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헌책방에 다니기 때문에 모든 책은 책이면서 헌책이요 새책이라고 새삼스레 깨닫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 맨 처음에 새책으로 장만하여 읽었으나, 어느덧 스무 해가 흐르며 헐고 낡아 헌책 이름을 붙여야 마땅한 책을 다시금 읽습니다. 선물을 받은 새책이지만, 하루이틀사흘나흘 흐르며 차츰 손때를 타서 헌책 이름이 붙는 책을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남긴 책을 돌아보면서, 당신이 젊은 날 읽었기에 아주 헌책처럼 보이는 빛바랜 예전 책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습니다. 이오덕 선생님도 헌책방마실을 하셨지만, 당신이 1950년대나 1960년대나 1970년대에 새책으로 사서 갖추었던 책을 오늘날 돌아볼 때에, 이 책은 무슨 책이라 해야 할까요. 멋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쉰 해나 예순 해를 한 사람 책꽂이에서 곱게 먼지 먹은 책이란 ‘헌책’일까요 ‘새책’일까요 ‘책’일까요.

 내가 읽은 책을 내 아이가 읽을 무렵이면, 이 책은 어떠한 책이 될까 헤아려 봅니다. 내가 읽은 책을 내 아이가 나중에 읽고 싶다 할 때에는 아빠 책꽂이를 살피면 되지만, 아빠가 이 책들을 헌책방에 내놓는다든지 다른 사람한테 넘긴다면, 아이로서는 도서관보다 헌책방을 뒤져야겠지요. 우리 나라 도서관에서는 쉰 해나 예순 해쯤 묵은 책을 잘 건사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쉬 빌려 주지 않으니까요. 우리 나라 도서관은 갓 나온 책이랑,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을 빌려 읽는 곳이지, ‘책’을 살피거나 나누는 자리는 못 됩니다.

 아빠 된 사람은 그때그때 나오는 책들을 건사하면서 아이한테는 헌책이 될는지 모를 책을 차곡차곡 갖춥니다. 아빠 된 사람은 틈틈이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아빠가 처음 마주하여 읽을 때’부터 헌책이라 할 만한 책을 알뜰살뜰 돌봅니다.

 인터넷을 뒤지며 숱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살림집과 내 자그마한 시골 도서관 책꽂이에서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살포시 뽑아들어 찬찬히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을 모시는 일이 한결 좋습니다.

 사람을 모시고 삶을 모시기에 책을 모십니다. 옆지기를 섬기고 아이를 섬기니까 책을 섬깁니다. 시골 삶자락을 받들고 논밭과 멧골짝을 받들면서 저절로 내 삶을 함께 받듭니다.

 책만 사랑할 책사랑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터에다가 뭇 푸나무와 짐승과 벌레가 복닥이는 터전을 사랑할 때에 바야흐로 책사랑으로 고이 이어진다고 느낍니다.

 어젯밤 느즈막히 잠든 아이가 일어나면 함께 먹으려고 새벽부터 조용히 마련해 놓은 밥과 국을 오늘은 언제쯤 먹을까 손꼽습니다. 홀로 일어나 쌀을 씻어 불리고 밥을 안치는 동안, 밥 익는 냄새 구수히 배어듭니다. 내 두 손으로 모아 쥘 밥그릇이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손으로 서툰 숟가락질을 할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엄마 배에서 잠자는 둘째랑 둘째를 아기방에 따스히 보듬는 옆지기랑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곁에, 꽤나 어지러이 늘어놓기는 했으나, 참말 고마우며 사랑스러운 책이 가득가득 있습니다. (4344.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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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눈물 2011-01-30 22:26   좋아요 0 | URL
야나기 무네요시 책을 찾아보다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들이 너무 많네요. 주욱 읽다 제가 좋아라하는 헌책방 애기가 있어 댓글을 씁니다.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마음가짐이 너무 좋아 보이십니다. 저도 배워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도서관은 갓 나온 책이랑,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을 빌려 읽는 곳이지,‘책’을 살피거나 나누는 자리는 못"된다고 하시는 님의 말 십분 동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단순히 책을 찾아보고 읽는 곳이 아니라 책을 두루 살필고 더듬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설 잘 보내세요^^ 종종 찾아 뵙겠습니다!!

숲노래 2011-01-30 23:33   좋아요 0 | URL
도서관마다 '책 새로 살 예산'이 모자라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도서관도 '인건비'로 돈을 가장 많이 쓰고, 다음이 전기세나 뭐 이런 데에 돈을 많이 들이거든요. 처음부터 너무 큰 건물로 지으니 건축비랑 인건비로 다 쏟아붓고 말아요... 참으로 책을 책답게 건사할 도서관으로 일구는 삶이 되자면, 우리부터 삶을 잘 꾸려야 할 텐데요...

말씀 고맙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빚은 글에 담긴 좋은 빛을 사람들이 잘 읽고, 모자라거나 아쉬운 대목은 우리가 즐거이 보듬어 주면 기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