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 손가락 사진쟁이 손바닥


 새벽녘 쉬를 하러 일어서는 옆지기가 엉덩이가 몹시 아프다고 한다. 옆지기 발바닥부터 등뼈까지 천천히 주무른다. 발바닥과 종아리와 허벅지와 엉덩이와 등과 등뼈를 하나하나 주무르면서 생각한다. 집일에 치이고 아이하고 복닥인다면서 옆지기 몸을 주무른 지 퍽 오래되었다고 느낀다. 틀림없이 내 몸이 힘들거나 고되기 때문에 옆사람 몸을 찬찬히 돌아보지 못한다 할 수 있다. 옆지기 아픈 몸을 주무르면서 내 손가락이나 손목이나 팔이 제대로 힘을 내지는 못한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여린 손으로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고, 힘없는 손으로도 아픈 사람을 보듬을 수 있다. 힘들 때에는 힘든 만큼 조금씩 주무를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일기를 쓰자면서, ‘책일기’하고 ‘사진일기’하고 ‘아이돌봄일기’ 세 가지를 날마다 한 줄이나마 공책에 끄적이면서, 막상 옆지기 팔다리와 등허리 주무르기는 하루에 오 분도 못한다면 집식구로서 할 말이 없다.

 찌개나 국에 마늘을 빻아 넣는 데에 1∼2분만 더 쓰면 된다. 팔다리를 주무를 때에 즈믄까지 숫자를 세어도 된다. 한 번 주무를 때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주무를 일이 아니라, 틈틈이 조금씩 보살필 수 있으면 된다.

 손가락으로 힘을 쓰기 벅차 손바닥을 쓰고, 손가락을 안으로 곱아 손가락 등으로도 눌러 본다. 문득, 내 손가락이 꽤나 뻣뻣하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손가락 그림이 모조리 지워진 사람도 아니다. 사람이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면 온몸이 뻣뻣해진다는데, 핏기가 사라지며 뻣뻣해지는 가운데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러한 내 손가락은 슬픈 손가락이라 해야 할까, 여태껏 온갖 일을 수없이 치러내 주었으니 고이 쉴 수 있는 기쁜 손가락이라 해야 할까.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닥 많지 않고, 한 사람이 손가락을 놀려 할 수 있는 일 또한 그다지 많지 않다고 깨닫는다. 나는 내 삶에 어떠한 책을 곁에 놓는가. 나는 내 삶을 어떠한 손가락으로 돌보는가. 지쳐 나가떨어질 듯한 하루하루이다 보니, 글 한 줄을 쓰면서도 이 글 한 줄에 들이는 품이 몹시 애틋하다.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삶이었다면, 틀림없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싶을 책을 그야말로 대단히 많도록 사고 읽으며 건사했을 테고, 이렇게나 많은 책을 사들이며 읽는 사람은 나라 안팎에 거의 없을 테지. 그렇지만, 아이를 함께 낳아 키우는 삶을 보내면서, 책을 읽는 다른 길을 들여다본다. 곧 둘째를 함께 낳아 키울 때가 되면, 책을 읽는 새삼스레 다른 작은 길을 들여다보겠지.

 어느새 내 손가락은 글쟁이 손가락하고 멀어진다. 차츰차츰 내 손바닥은 사진쟁이 손바닥하고 동떨어진다. 어쩌면 비로소 글쟁이 손가락이 되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이제서야 사진쟁이 손바닥이 된다 할는지 모른다. 천천히 동이 튼다. 이제 곧 쌀을 씻고 불려 아침을 차려야 한다. (4344.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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