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푸른말


 말만 예쁘장하게 쓰는 사람이 있어요. 삶이나 매무새는 하나도 예쁘장하지 않을 뿐더러, 넋이나 얼 또한 조금도 예쁘장하지 않을지라도 말만큼은 예쁘장하게 쓰는 사람이 있어요.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 이름을 아는 말사랑벗은 몇 사람이나 있으려나요. 말사랑벗들은 어릴 적부터 이원수 님 동요나 동시나 동화를 읽었는가요. 읽은 벗님이 있고, 이름을 모르는 벗님이 있겠지요. 이원수 님은 《얘들아 내 얘기를》이라는 수필책을 어린이가 읽도록 1975년에 내놓은 적 있는데, 이 책에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이름을 붙인 짧은 글이 실렸어요. “마음이 곧은 사람은 곧은 글을 쓰고, 마음이 슬픈 사람은 슬픈 글을 쓰고, 성격이 괄괄한 사람은 괄괄한 모양의 글을 쓴다.”고 하면서, 글을 읽으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말사랑벗들은 말만 참 예쁘장하고 삶은 엉망이거나 짓궂거나 미워 보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참말 말은 훌륭하거나 멋진데, 하는 모양은 엉터리인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원수 님은 “그러나 그 속에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생각은 없었다. 그 시를 쓴 사람을 나쁘다고 한 것은 그가 속은 좋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좋은 듯이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고 덧붙입니다.

 저 또한 이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제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오로지 제 삶 테두리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그대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눌 뿐입니다. 저부터 아름다이 살아가지 못하면서 아름답다 싶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요. 저부터 더 착하게 살아가지 않으면서 착한 마음이나 넋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저부터 집에서고 밖에서고 어디에서고 바르며 고운 말을 즐겨쓰지 않는다면, 이 책에서만 바르며 고운 말 이야기를 적바림할 수 없어요.

 푸른말을 생각합니다. 푸른말이란 말사랑벗님이 보내는 10대라는 나이에 둘레에서 들으면서 말사랑벗님 스스로 쓰는 말을 일컫습니다. 푸름이가 쓰는 말이기에 푸른말이에요. 또한, 내 삶과 넋을 푸르게 가꾸고픈 꿈으로 쓰는 말이 푸른말이에요.

 나이로 치면 10대 푸름이가 쓰는 말이지만, 나이를 넘어 누구나 푸른 모두를 사랑하고플 때에 쓰는 푸른말입니다. 옷차림만 푸름이답기보다 마음차림부터 푸름이다우면 좋겠고, 나이를 세는 밥그릇으로만 푸름이가 되기보다 사랑을 담는 마음그릇부터 푸름이다우면 좋겠어요.


1. 배움집 : 우리는 ‘학교(學校)’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이 한자말은 한자말이라기보다 그냥 우리말이 되었기에 굳이 한자를 밝힐 까닭이 없어요. 초등학교는 ‘초등학교’이지 ‘初等學校’가 아니고, 중학교는 ‘중학교’이지 ‘中學校’가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배우는 곳이지요.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나 ‘배움터’일 테고, 건물이 선 학교뿐 아니라 마을이나 집 어디에서나 사람들 누구나 배우기에 ‘배움마을’이요 ‘배움집’이며 ‘배움누리’이고 ‘배움마당’입니다. 


2. 스승 : 해마다 5월 15일 하루만 ‘스승날’이라 하면서 ‘스승’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다른 때에는 ‘교사’나 ‘선생’이라고만 해요. 우리한테는 좋은 낱말 ‘스승’이 있지만 좀처럼 이 낱말을 못 쓰며 살아요. 참다운 스승, 곧 참스승이 없기 때문인가요. 내 마음에 참스승을 못 모시며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3. 동무 : 북녘사람들은 나이나 계급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동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남녘땅 사회와 학교에서는 이 낱말 ‘동무’를 몹쓸 낱말로 여기고 말았어요. ‘어깨동무’ ‘길동무’ 하듯이 동무일 뿐인데요. ‘사랑동무’ ‘마음동무’ ‘공부동무’ ‘놀이동무’처럼 우리들은 좋은 벗님, 그러니까 너나들이를 사귀면 좋을 텐데요. 


4. 골마루 : 건물이나 집에서 나무로 바닥을 댄 거님길을 골마루라 합니다. 옛날 학교는 나무로 지어서 ‘복도’ 아닌 ‘골마루’였어요. 그런데 아파트에서도 ‘마루’이고 ‘부엌’은 똑같아요. 솥을 걸어야만 부엌이 아니고, 시멘트로 바닥을 대었어도 ‘골마루’랍니다. 


5. 푸름이 : 이름만 푸름이로 쓴다 해서 참으로 푸른 사람 푸른 꿈 푸른 날 푸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는 않지만, ‘청소년’이라는 이름에서는 푸른 빛깔과 맑은 무지개를 떠올리기 너무 어려워요. 


6. 사랑매질 : 예부터 학교에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얼차려를 하거나 매질이나 주먹질을 했습니다. ‘체벌’이라고도 하는데, 참말 사랑을 담은 매질이라면 이름부터 ‘사랑매질’이라 붙여서, 거짓없이 사랑을 담은 손길로 우리들을 어루만지면 고맙겠어요. 


7. 개밥도토리 : ‘왕따’는 일본말이라 ‘집단 따돌림’이라 써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 나라에도 예부터 ‘개밥도토리’랑 ‘돌림뱅이’가 있었어요. 일본에서 들어온 못된 짓이 아니라, 우리한테도 우리들 살갑고 사랑스러운 벗을 괴롭히던 슬프며 못난 삶이 있었습니다. 


8. 건널목 : 나어린 아이들은 건널목을 건널 때에 손을 높이 들도록 시킵니다. 키가 작아 ‘자동차에 탄 어른들 눈에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건널목 앞에서 얌전히 서거나 기다리는 어른은 몇이나 되나요. 아이들은 어른들 차 모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중에 어른이 되어 차를 몰 때에 똑같이 슬픈 빛으로 차를 몬다고 느껴요.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건널목 앞에 서면 무섭습니다. 


9. 징검돌 : 시골 아저씨는 말사랑벗한테 징검돌 하나입니다. 말사랑벗이 저 같은 아저씨 한 사람을 밟고 새길을 걸으면서 슬기로우며 예쁜 넋을 북돋우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징검돌입니다. 나중에 말사랑벗님들이 씩씩하며 훌륭한 어른이 된다면 또다른 징검돌 노릇을 해 주셔요. 디딤돌이나 받침돌이나 밑돌 노릇도 좋아요. 걸림돌은 되지 말아 주셔요. 


10. 길잡이 : 가시밭길을 꿋꿋이 헤치면서 뒷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일컬어 ‘이슬떨이’라 합니다. 이슬떨이만큼 대단하게 살 수 없어도 길잡이 노릇으로도 즐겁습니다. 길잡이가 못 된다면 길동무로도 좋고, 그냥 길손이 되어도 괜찮아요. 


11. 꿈날개 : 꿈에 날개를 답니다. 생각에도 날개를 답니다. 마음에도 날개를 달아요. 이야기에도 날개를 달고, 책이나 글이나 선물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날개를 달아 봅니다. 


12. 삶이야기 : ‘판타지’란 어떤 이야기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읽을 문학을 손수 쓰거나 나라밖에서 들여오면서 ‘판타지문학’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우리 삶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라면 꾸밈없이 ‘삶이야기’라 해도 되고, 우리 꿈을 마음껏 펼치는 이야기라면 수수하게 ‘꿈이야기’라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3. 셈틀 : 아저씨도 ‘컴퓨터’라는 낱말을 쓰지만, 때때로 ‘셈틀’이라는 낱말을 쓰곤 합니다. ‘셈 + 틀’이라 셈틀이고, ‘셈’이란 ‘세다’에서 비롯했으며, ‘세다’는 ‘헤다’에서 온 말이요, ‘헤다’는 ‘헤아리다’로 가지를 뻗었습니다. ‘헤아리다’란 ‘생각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셈틀’이란 ‘생각틀’이요 ‘꿈틀’이기도 합니다. 


14. 빛슬기 : 아저씨하고 아줌마는 첫째 딸아이 이름을 ‘사름벼리’라고 지었습니다. 아저씨랑 아줌마는 어버이 성씨를 둘 다 안 쓸 마음으로 딸아이 이름을 지으며 ‘사름’을 성으로 삼고 ‘벼리’를 이름으로 삼았어요. 호적에 올릴 때에는 아버지 성을 넣어야 했는데, 여느 자리에서는 아버지 성을 뺀 ‘사름벼리’라고만 불러요. 티없이 고우면서 꾸밈없이 어여삐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름 넉 자에 담았어요. ‘빛슬기’라는 낱말은 푸름이로 살아가는 말사랑벗들이 빛과 같은 슬기를 몸소 일구면서 나누면 좋겠다는 꿈을 담아 새로 지어 봅니다. ‘꿈슬기’를 지을 수 있고 ‘참슬기’라든지 ‘멋슬기’라 지어도 되겠지요. 더 많은 지식보다는 더 따스한 슬기와 더 너그러운 빛깔을 사랑해 주면 기쁘겠어요.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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