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9 : 믿음책 읽기
이오덕 님이 1984년에 내놓은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이 2010년 7월에 《삶을 가꾸는 어린이문학》(고인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이 책에는, “교훈을 너무 밖으로 드러내어 보이는 훈화나 도덕 교과서의 글같이 되었다면 그것은 문학작품이라 할 수 없지만, 교훈성 그 자체를 죄다 빼려고 하는 것은 어린이문학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교훈을 꺼리고 무서워하는 사람일수록 재미없고 해로운 작품을 쓰는 것이다. 교훈이 없다는 것은 글쓴이의 의도가 없고 사상이 없다는 것이고, 역사와 사회·어린이에 대한 믿음과 정열·사랑에 없는 것을 말해 준다(98∼99쪽).”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틀림없이 배웁니다. 어른들은 틀림없이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나 책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교과서나 책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살아내는 몸뚱이로 가칩니다.
교과서란 지식입니다. 그야말로 지식덩어리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쥐어 줄 책은 으레 ‘삶책’이 아닌 ‘지식책’이기 일쑤입니다. 과학동화나 철학동화는 온통 지식책이에요. 동화책이라 하는 문학 또한 지식책으로 기울거나 값싼 ‘시간 때우기’ 책에 머물곤 합니다.
어린이책을 잘 모르는 분들은 자칫 ‘어린이문학 = 가르침(교훈)’이어야 하는 듯 잘못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무언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 이 모든 이야기는 ‘가르침’이 되고 ‘배움’이 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는 수다 또한 서로서로 가르치는 말이요 배우는 말이에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비질과 걸레질 하는 모든 삶이 바야흐로 책이자 배움이요 가르침입니다.
아이들한테도 삶이 배움입니다. 가까운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둘레 어른이 읊는 말마디를 고스란히 배웁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태운 차를 거칠게 몰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거친 매무새를 배웁니다. 어른들이 길가에 담배꽁초뿐 아니라 갖은 쓰레기를 버리니, 아이들도 과자봉지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어른들이 바쁘다며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걸으니, 아이들도 동무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짓을 서슴지 않습니다.
온삶이 그야말로 ‘교과서’입니다. 온삶을 따스히 어루만지지 않는다면 가르침과 배움이 올곧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부터 내 삶을 포근히 돌보며 넉넉히 일구어야 비로소 내 아이한테든 이웃 아이한테든, 사랑하는 짝꿍과 살붙이한테든 좋은 손길을 내밉니다.
이 나라 한국에는 예배당이 대단히 많습니다. 딱히 부처님 나라나 하느님 나라가 아니지만, 불교·천주교·개신교를 믿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이리하여, 불경이든 성경이든 믿음을 담은 책이든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그렇지만, 막상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가르친 ‘사랑과 믿음’을 ‘따뜻함과 넉넉함’으로 나누는 사람은 드뭅니다. 수수한 여느 자리에서 사랑과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믿음책이 제아무리 값지거나 훌륭하달지라도 참된 믿음이(신자)로 거듭나지 않으나, 좀처럼 깨닫지 않습니다. (4344.1.25.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