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송언 / 내일을여는책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딸내미 아빠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송언,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 책이름 :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 글 : 송언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 (1997.5.25.)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시골 땅과 하늘을 바라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던 아이는 도시 땅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아이한테 달빛 하나 가르치기 몹시 힘들었습니다. 워낙 갖은 불빛이 많아, 아빠가 제아무리 손가락으로 밤하늘 높다란 자리에 걸린 동그라미 하나를 가리킨다 한들, 달인 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는 달 둘레에 온갖 별이 반짝입니다. 달은 달대로 가리키며 가르쳐 주고, 별은 별대로 손가락으로 꼽으며 가르쳐 줍니다.

 도시에서 살며 풀과 꽃과 나무를 가르쳐 주기 참 벅찼습니다. 골목동네 곳곳에 예쁘장하거나 앙증맞게 꽃그릇이나 텃밭 일구는 분들 터전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으니 그럭저럭 가르쳐 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곳에서는 꽃이니 풀이니 나무이니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빠방(자동차)’하고 건물만 가득합니다.


.. 경기도 땅 덕소의 연립주택 3층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큰놈 이슬이는 어두컴컴한 지하 셋방에서 꼬박 5년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유독 잔병치레가 잦았다 ..  (11쪽)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제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배웠거나 무엇을 배울 수 있었나 돌아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가까이 바다가 있고 갯벌이 있으며 골목동네 놀이동무하고 어울렸습니다. 바다는 쇠가시울타리로 꽁꽁 막히기는 했어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다니며 바라보았고, 아직 새 건물 들어서지 않은 빈 땅에는 논이나 밭을 일구는 분이 있었으며, 물웅덩이에서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찻길 옆 연탄공장 둘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라든지, 바로 이 옆에 붙은 국민학교를 여섯 해 다닌다든지 하면서 철길과 골목집과 판자집 삶을 ‘이런 삶은 이런 모양이다’ 하고 배우지는 않았으나, 내 둘레 사람들 여느 삶은 다 이러했으니 물처럼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노느라 바쁜 나날이었고, 한두 시간쯤 되는 길은 으레 걸었으며, 누군가하고 만나기로 했으면 ‘몇 시 몇 분 어디’에서 만난다 하지 않고 ‘언제쯤 어느 둘레’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가볍게 기다리면서 골목골목 쏘다녀 본다든지 다른 동무랑 논다든지, 나중에 중학생쯤 되면 가만히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든지 했습니다.

 도시라지만 도시 같지 않은 인천에서 나고 자랐기에 사람다운 빛을 그럭저럭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싶은데, 아주 깊디깊은 도시 한복판 삶터였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는지 두렵습니다. 시골 아닌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도시 아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처럼 풀이나 꽃이나 나무 이름을 척척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셨으면서 도시로 나와서 시집가고 아이 낳아 기르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셨을까요.


.. 어제 저녁 무렵이었다. 지난 일요일에 내려왔으니 덕소에 오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불쑥 물었다. “얘, 아범아. 요 아래 왜 노는 땅이 있지 않디?” “그런데요?” “내일도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니 함께 텃밭 좀 일궈 봤으면 해서 말이다.” “우리 땅도 아닌데 괜찮을까요?” “어차피 놀고 있는 땅인데 텃밭 좀 일궜다고 설마 뭐라 그럴라구.” “그럴까요, 그럼?” ..  (42쪽)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두 돌이 지나기 앞서 멧골자락으로 옮긴 첫딸 사름벼리는 앞으로 이 시골자락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거나 살피거나 헤아릴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버지는 제 아버지를 키운 어머니한테 없는 여러 가지 길을 찾으며 살아갔다면, 딸아이는 제 아버지한테 없는 여러 가지 길을 살피며 살아갈까요. 제 아버지는 제 아버지를 키운 어머니와 달리 도시에서 시골로 왔다면, 딸아이는 제 아버지와 달리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가는 삶을 맞아들이려나요.

 어머니는 심부름을 참 많이 시켰고, 저는 심부름하기를 몹시 즐겼습니다. 어머니한테서 이것저것 곧바로 배운 집일은 드물지만, 언제나 곁에서 알짱거리면서 어깨너머로 요모조모 익혔습니다. 딸아이는 제 아버지가 했듯 저 또한 아버지 바지꽁무니 둘레에서 어정어정거리면서 이냥저냥 발치너머로 익히려나요. 어머니 삶이 제 삶이 되고, 제 삶이 아이 삶이 됩니다. 아이 삶을 생각한다면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아주 또렷합니다. (4344.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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