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얘기하고 장미와 말을 섞는
― 이원수, 《시가 있는 산책길》



- 책이름 : 시가 있는 산책길
- 글 : 이원수
- 펴낸곳 : 경학사 (1969.6.10.)


 “아동문학을 내 꽃동산으로 생각해 왔다(5쪽).”고 하는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을 봅니다. 시랑 소설이랑 동화랑 산문을 골고루 엮은 《시가 있는 산책길》은 “동화나 동시가 아동들만의 것으로 끝나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생각(5쪽)”에 따라 내놓는 책이라고 합니다. “문학 예술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4쪽)”한다는 이원수 님입니다. 하루하루 즐겁다고 여기며 보내었기에 즐겁다고 여기며 살아온 손길과 내음과 빛깔과 무늬가 이원수 님 시와 소설과 동화와 산문마다 알뜰히 배어듭니다. 슬프다고 여길 때에는 슬픈 빛과 내음이 담기고, 좋다고 여길 때에는 좋은 빛과 내음이 담깁니다.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내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 가며 조잘대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달)



 이름난 글쟁이나 손꼽히는 평론가 글을 들지 않더라도, 글은 삶이고 책 또한 삶입니다. 부엌일도 삶이고 바깥일도 삶입니다. 장작패기도 삶이며 지게질도 삶입니다. 빨래도 삶이고 젖먹이기도 삶입니다.

 우리가 부대끼거나 복닥이거나 마주하는 일 가운데 삶 아닌 일이란 없습니다. 아귀다툼도 삶이며 주먹다짐도 삶입니다. 손찌검도 삶인 가운데 따돌림도 삶이겠지요.

 나 스스로 즐겁게 꾸리는 삶일 수 있으나, 나부터 짓궂게 팽개칠 수 있는 삶입니다. 깊디깊이 바라보며 속으로 사랑할 삶인 가운데, 겉스쳐 지나가면서 겉치레에 얽매이는 삶입니다.


.. “쟤는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셔요. 전 쟤를 사랑하고 있어요. 쟤는 나를 잴강잴강 씹었어요. 전 아파서 울었어요. 그뿐인가요? 쟤는 저를 마구 비벼서 찢었어요. 저는 쟤 때문에 죽었어요. 아! 나를 죽인 아이여요! 사람을 죽였으면 사형을 받겠지요. 장미꽃을 죽인 아이는 어떻게 됩니까? 사형은 안 받습니까, 선생님?” ..  (191∼192쪽)


 엊그제만 해도 초승달이던 밤하늘인데, 오늘 새벽에 올려다보니 차츰 통통하게 차오르는 밤하늘입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한 달 두 달 지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빠랑 엄마는 꾸준하게 무르익는 나이로 접어듭니다. 이울고 차는 달마냥 나고 스러지는 사람이요, 가느다란 초승달에서 똑 사라지는 듯 보이는 달이었다가는 통통하게 꽉 차는 달처럼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엇을 하며 밥을 차리나 생각하고, 새벽녘 흩뿌리는 눈발을 보며 오늘만큼은 부디 눈도 그치고 날도 하루쯤 풀리면 얼마나 고마우랴 비손합니다.

 시골자락 삶자리이니 으레 땅을 보고 쉬 하늘을 봅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를 듣지만, 언제나 집 둘레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크고작은 새들 날갯짓을 바라보며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풀도 나무도 흙도 모두 눈으로 덮인 나날인데, 이런 겨울날 꽁꽁 얼어붙기만 한 날씨에도 어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낼 수 있니? 너희들도 얼른 따순 봄 찾아와 살진 먹이로 배를 채우면서 새끼를 키우고 싶겠지?


.. 서울의 거리에도 이젠 내 작품 속의 어느 장면이나, 내 동시의 어느 소재가 된 것이 늘어 가는 게 즐겁고, 그래서 나의 산책은 곧 내 생활과 어울려 하나가 되어 버린다. 아귀다툼하며 거리를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가엾은 것 같다 ..  (314쪽)


 1969년에 1쇄를 찍은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은 1972년에 2쇄를 찍은 듯하고 1978년에 3쇄를 찍은 듯합니다. 아니, 3쇄는 안 찍었겠다 싶습니다. 제가 뒤적이는 책은 1972년에 찍은 2쇄 같습니다. 1978년에 간기 종이를 새로 붙여 책값을 650원에서 700원으로 올려받습니다. 그러니까, 1972년에 잔뜩 찍어 놓고 안 팔린 책을 여섯 해 뒤에 종이값이든 물건값이든 꽤 올랐으니까 이렇게나마 종이 한 장 붙여 50원을 더 받으려 했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어찌 보면 우습지만, 곰곰이 헤아리면 슬픕니다. 이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이 2011년까지 새책방 책시렁에 얌전히 남았다면, 슬프게도 1972년 책값 650원 그대로일 테니까, 하는 수 없이라도 2011년 물건값에 발맞추어 6500원이만 16500원이든 올려붙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책을 헌책방에서 뜻밖에 마주친다 할 때에는 ‘마흔 해 앞서 붙은 책값이 650원이든 700원’이든 따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 터전을 헤아릴 때에 이 책이 얼마쯤 될까를 따져야 합니다. 350쪽이 넘는 퍽 도톰한 책이라 한다면 요사이는 글책이랄지라도 만오천 원쯤은 하겠지요. 값싸게 만 원 안팎일 수 있을 테고요. 헌책방 헌책 값으로 《시가 있는 산책길》을 만 원에 살 수 있다면 아주 싼 셈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헌책방에서 딱 한 번 마주칠 그때가 아니고서는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테니, 만 원 아닌 이만 원이어도 값싼 셈입니다. 나중에는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을 얹어 준다 하더라도 책 껍데기 구경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참 얄궂은 짐승이라, 판 끊어졌지 오래되었지 소담스럽지 알뜰하지 ……, 이런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산다 할 때에 만 원이나 이만 원 값을 치러야 한달 때에는 비싸다고 여깁니다. 아마, 이원수 님 이름을 아는 분들조차 이 책을 5000원에 사 가라 하더라도 비싸게 여길는지 모릅니다. (4344.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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