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글쓰기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거나 다리가 없어 걷지 못하는 사람한테 계단을 오르내리라 할 수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없는 사람이 걱정없이 다니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 아기 밴 어머니를 세워 놓고 버스나 전철을 달릴 수 없습니다. 어린이를 어버이 무릎에 앉히며 어른들이 자리 하나 차지할 수 없습니다. 글을 잘 모르거나 적게 배운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운 서류를 만들어서 적으라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잘 모르는 사람 또한 쉽게 알아들을 뿐 아니라, 적게 배운 사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도록 서류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목사님만 알아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은 스님만 알아들으면 될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 누구나 알아들으면서 즐거이 받아들일 말씀입니다. 어린이부터 늙은이까지, 학교 문턱을 못 밟은 사람부터 대학원을 나온 사람까지 두루 고르게 새기면서 곱씹을 말씀입니다.

 문학하는 사람이나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만 읽으면 될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 아닙니다. 사진하는 사람이나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만 알아보면 될 사진이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만 즐기면 넉넉할 그림이 아닙니다.

 글은, 쓰는 사람 몫이 아니라 읽는 사람 몫입니다. 읽는 사람을 생각하며 써야 할 글입니다. 말은, 하는 사람 몫이 아니라 듣는 사람 몫입니다. 초등학생을 앞에 앉히고 대학교재를 줄줄 읽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을 앞에 앉혔으면 초등학생하고 나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할머니하고 마주앉았으면 할머니하고 나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대학교수 논문에나 적바림하는 글월을 읊을 수 없어요.

 글이란 참말 읽는 사람 눈높이와 삶결을 헤아리면서 써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쟁이 생각을 버리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다만, 글쟁이 생각은 버리되 글쟁이 마음을 담아서 글을 씁니다. 글쟁이 마음을 담은 글쟁이 삶을 글로 씁니다.

 사진이란 참으로 보는 사람 눈썰미와 삶무늬를 살피면서 찍어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쟁이 생각을 내려놓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다만, 사진쟁이 생각은 내려놓되 사진쟁이 사랑을 실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쟁이 사랑을 실은 사진쟁이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우리 삶터 모든 시설과 기관과 학교는 장애인한테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터전 어느 곳에서 오가거나 주고받는 말마디이든 무지렁이라 하는 ‘적게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 배움이나 앎에 맞추어야 합니다.

 부자한테 맞추는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운동선수한테 맞추는 체육정책이나 문화정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예술가나 대학교수한테 맞추는 예술정책이나 사회정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교사한테 맞추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학생한테 맞추는 교육정책이어야 합니다. 서민을 헤아리는 정책이 없다고 정부나 공무원을 나무라고자 한다면, 내가 쓰는 글과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찍는 사진은 얼마나 내 둘레 사랑스러운 이웃이랑 동무랑 살붙이한테 맞추었는가를 돌아보며 느껴야 합니다. (4344.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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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1-13 11:33   좋아요 0 | URL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네요

숲노래 2011-01-13 23:37   좋아요 0 | URL
글 쓰는 사람들이 눈높이를 수수한 여느 사람들한테 맞출 수 있다면... 아니, 높은 자리를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내 둘레 사람을 사랑하는 수수한 살림살이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