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이 손에 걸레를


 ㄱ. 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않게 애쓰기.
 ㄴ. 책만 아는 도깨비가 되지 않게끔 마음쓰기.
 ㄷ. 책만 찾는 기계가 되지 않도록 용쓰기.



 어릴 적부터 책을 즐겨 읽거나 많이 읽거나 아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면 틈틈이 손에서 책을 빼앗을 줄 알아야 한답니다. 책을 빼앗은 손에는 걸레나 빗자루나 낫이나 호미나 쟁기를 쥐어 주어야 한다더군요. 걸레로 방을 훔치고 비로 집안 구석구석을 쓸도록 일을 시켜야 한다지요. 낫으로 풀을 베거나 호미로 김을 매거나 쟁기로 논밭을 갈도록 시켜야 한대요. 빨래를 한 아름 품에 안겨 아이가 입은 옷, 이 가운데 적어도 양말과 신발쯤은 제 손으로 빨도록 시켜야 한다더라고요. 아이가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마땅히 아이 손으로 설거지를 하도록 시켜야 좋다고 해요.

 이렇게 하지 않고 책만 딥다 파면, 책만 좋아라 읽는다면, 이 아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큰다지요. 삶을 놓치거나 느끼지 못한다지요.

 고시 공부를 하는 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분 삶을 보면 엉망이기 일쑤입니다. 당신 삶뿐 아니라 식구나 이웃 삶도 엉망이에요. 오로지 이 한 사람을 뒷배하느라 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 삶을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애써 숱한 사람들 땀방울을 들여 고시에 붙었달지라도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되어 쇠밥그릇을 마련할 뿐, 오롯이 꾸리는 삶으로 거듭나지 않습니다. 이제, 공무원이 되었으니 손수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매무새를 기르지 않습니다. 삶을 깨우치는 공부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예 돈 잘 버는 도깨비나 기계로 머물 뿐, 사람을 사랑하거나 삶을 믿는 착한 넋을 보살피지 못해요. 이제는 교사가 되는 이 또한 됨됨이를 갖춘 교사가 아니라 지식만 갖춘 교사 굴레에서 허덕입니다. 책 읽는 사람뿐 아니라 책 만드는 사람마저 도깨비나 기계 테두리에서 맴돕니다.

 이 나라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은 머리에 담은 지식으로는 똑똑하지만, 손을 쓰거나 몸을 쓰거나 마음을 쓰면서 어깨동무하는 데에까지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을 헤아리거나 동무를 보살피거나 살붙이를 아끼는 데에는 얼마나 똑똑한지 알쏭달쏭합니다.

 운동을 잘 하는 아이나 어른 들은 운동을 참 잘합니다. 야구이든 축구이든 농구이든 배구이든 골프이든 수영이든 피겨스테이팅이든 참 잘합니다. 그러면 이들 운동선수는 운동경기 말고 다른 자리에서는 당신 삶을 얼마나 잘 꾸리는가요.

 크나큰 도시에서는 틀림없이 돈으로 살아갑니다. 돈으로 밥을 사고 집을 사며 옷을 삽니다. 동무를 만나도 돈을 쓰고 어버이를 모셔도 돈을 쓰며 학교를 다녀도 돈을 씁니다. 돈이 없이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아니, 돈이 아니고서야 도시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몇몇 사람은 돈이 아니고서도 도시에서 살아남을 테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돈보다 보배로울 삶이란 없습니다. 이리하여 도시사람한테는 돈을 조금은 멀리하면서 책을 살짝이나마 가까이해야 한다 말할는지 모릅니다만, 제아무리 돈밖에 모른다는 도시사람한테도 책보다는 걸레랑 호미랑 쟁기를 쥐어 주어야지 싶습니다. 돈만 아는 사람한테 책을 쥐어 준대서 삶을 스스로 아름다이 일구는 뜻을 헤아리거나 깨달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책만 읽는 바보 아닌, 돈만 바라는 바보 아닌, 삶을 헤아리는 살림꾼이 되도록 이끈다면 참 좋겠지요. 책만 아는 도깨비 아닌, 돈만 아는 도깨비 아닌, 삶을 아는 마음벗이 되도록 돕는다면 아주 기쁘겠지요. 책만 찾는 기계 아닌, 돈만 찾는 기계 아닌, 삶을 찾는 목숨붙이가 되도록 어깨동무를 한다면 몹시 고맙겠지요.

 아이한테 책과 함께 걸레랑 호미랑 짐꾸러미를 쥐어 줍니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집안을 치웁니다. 아이가 신고 벗는 신발을 스스로 가지런히 놓도록 이끌고, 아이 앞에서 어버이부터 말씨를 곱게 가다듬습니다. 아이와 손을 맞잡으며 멧길을 걷고 아이를 품에 안으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때때로 자동차를 얻어 탈 때면 앞만 보아야 합니다. 자동차를 타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든지 바깥이 얼마나 덥거나 추운지 느끼기 힘듭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길에 밟혀 죽는 작은 목숨을 알아챌 수 없고, 온 들판 가득한 풀과 꽃과 나무한테 말을 걸지 못합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와 물소리를 담은 책이 더러 있을 테고, 요사이는 꾸준히 나오기도 합니다. 바람소리를 담을 수 있는 책이란 아주 훌륭합니다. 새소리 깃든 책이란 매우 빼어납니다. 물소리 흐르는 책이란 참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바람소리는 책 아닌 우리 마을에 있습니다. 새소리는 멧자락 어디에나 있습니다. 물소리는 골짜기와 냇물 가에서 마주합니다. 삶과 삶터가 있어 책과 지식이 있습니다. (4335.7.2.처음 씀/4344.1.11.불.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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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12 21:23   좋아요 0 | URL
ㅎㅎ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