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의 그림책 - 오늘의 눈으로 읽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최석조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김홍도 그림법’을 몰라도 즐겁다
 [책읽기 삶읽기 31] 최석조, 《단원의 그림책》


 제주섬 아래쪽에 조그마한 섬 마라도가 있습니다. 이 마라도로 찾아와 사진을 찍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마라도를 사진감으로 삼아 내놓는 사진책이 더러 나오기도 하는데, 돋보인다 하는 사진책으로는 배병우 님이 담은 《마라도》(안그라픽스,1985)하고 김영갑 님이 담은 《마라도》(눈빛,1995)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담은 《마라도》는 사뭇 달라, 어느 한 가지만 본 사람이라면 마라도라는 섬을 어느 한 가지 빛깔로 한결 짙게 바라보거나 생각할 만합니다. 두 사람은 사뭇 다른 ‘사진 기법’으로 사진을 찍었다 할 만한데, 곰곰이 헤아린다면 ‘사뭇 다른 사진 기법’이라기보다는 ‘사뭇 다른 삶’으로 마라도하고 만나거나 사귀면서 마라도에서 지냈다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이 사진은 이러한 기법으로 이러한 느낌이 우러나도록 찍었다느니, 저 사진은 저러한 솜씨로 저러한 느낌이 드러나도록 담았느니 하는 말은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사진 기법’을 쓸 수 없습니다. 유행이나 사진 흐름에 따라 어느 기법이 더 사랑받기도 하지만, 유행으로 퍼지거나 사진 흐름으로 자리잡는 까닭이란, 이러한 기법이 더 쓸 만하거나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행으로 퍼지든 사진 기법으로 자리잡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제법 있기 마련이에요.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내 삶에 걸맞게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테니까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찍을 사진이 아니요,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 그릴 그림이 아닙니다. 나부터 나 스스로 흐뭇할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며 그림입니다. 기법이든 수법이든 하나도 소담스럽지 않습니다. 소담스레 바라보거나 보배로이 여길 대목은 내가 즐거이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을 즐겼느냐입니다.


.. 김홍도가 〈무동〉의 저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은, 결국 ‘설움의 공유’에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 음악 향유자의 대부분은 신분이 높았을 터였다. 듣는 쪽에 맞추어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천한 광대들이 갓 쓰고 도포 입은 건 자기들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니었다 ..  (30쪽)


 여느 제도권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갖가지 기법과 수법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실기로 가르치는 기법과 수법보다 이론으로 가르치는 기법과 수법이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이론으로 가르치는 기법과 수법조차 시험문제 틀에서 맴돕니다.

 학교에서 시나 다른 문학을 배울 때에 은유법이니 활유법이니 비유법이니 하는 기법과 수법 이야기만 골이 아프도록 배웠습니다. 글을 읽으며 이 글을 쓴 사람 마음과 삶과 느낌이 어떠했구나 하고 느끼도록 배우지 못했습니다. 글을 즐기는 매무새란 한 번도 배울 수 없었고, 배우도록 이끌어 준 분 또한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글 즐기기’나 ‘그림 즐기기’나 ‘사진 즐기기’는 따로 학교에서 배울 수 없고, 어느 스승이라 해서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노래 즐기기’라든지 ‘춤 즐기기’라든지 ‘영화 즐기기’라든지 매한가지입니다.

 영화평론 하는 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운다고 내가 즐거이 볼 영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림을 풀이해서 알리는 큐레이터 같은 이들이 입에 침이 닳도록 첫손꼽는다 해서 내가 눈을 빛내며 우러를 작품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내 가슴에 사무치도록 스며드는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볼 뿐입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차분히 스며들다가는 용솟음치는 사진과 글을 마주할 뿐입니다.

 대형사진기나 중형사진기나 파노라마사진기를 썼다 해서 더 돋보일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슬라이드필름이나 흑백필름을 썼대서 더 눈여겨볼 사진이 되지 않아요. 천만 원짜리 사진기로 담은 작품이 더 빼어날는지요. 만 원짜리 1회용 사진기로 담은 사진은 작품이란 소리를 붙일 수조차 없을는지요.

 값싼 붓으로 그리면 못난 그림이 되나요. 비싼 붓과 종이를 쓰면 잘난 그림이 되나요. 스승이 이름난 분이면 이름난 그림쟁이로 되나요. 스승 없이 혼자 그림을 배워 나갔으면 어설픈 그림쟁이가 되려나요.


.. 모든 작품에서 숭늉처럼 구수한 여유가 끓는다 ..  (135쪽)


 최석조 님이 쓴 《단원의 그림책》을 읽습니다. 단원 김홍도 님이 일군 그림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림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를 곰곰이 풀이하여 들려주는 책입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그림 풀이책(해설서)’은 어렵거나 딱딱한 말투에다가 갖은 외국말을 섞어 그들먹거렸다면, 《단원의 그림책》은 오늘날 여느 사람들 여느 말씨로 살가우면서 홀가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을 굳이 어려운 말로 딱딱하게 읽을 까닭이 없으며, 그림이란 누구나 제 눈썰미와 깜냥껏 마음 가득히 즐기면 좋다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단원 김홍도 님이 무슨무슨 기법이나 수법을 썼다는 대목을 훤히 꿰뚠다 해서 단원 김홍도 그림을 더 잘 헤아렸거나 즐겼다 할 수 없습니다. 선운사 지붕이나 대문이 어떠한 모습 어떠한 값어치 어떠한 시대유물임을 안다 해서 선운사 마실을 한결 즐거이 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이 골목길 ‘정취’가 ‘몇 십년대 풍물’이라 읊으며 사진을 찍어야 골목마실이 한껏 빛난다 할 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바라보며 소나무 넋이 어쩌고 저쩌고 하고 떠들어야 소나무가 아름답다 여길 수 있지 않습니다.

 살아온 목숨을 꾸밈없이 껴안을 줄 아는 내 고운 목숨이면 넉넉합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이며 이웃이라 느낄 줄 아는 따순 가슴이면 넉넉합니다. 서로서로 사랑스러운 숨결로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애틋하게 어우러지는 삶임을 깨닫는 너른 품이면 넉넉합니다.


.. ‘먹는’ 그림에서 아이들은 꼭 엄마 옆에 붙어 있다 ..  (162쪽)


 단원 김홍도 님 그림이든 혜원 신윤복 님 그림이든, 또 박수근 님이나 이중섭 님 그림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당신들 그림이 어느 시대 어느 기법으로 빚은 작품이라는 풀이말은 덧없습니다. 당신들 그림이란 당신들 어떠한 삶이 소롯이 묻어난 이야기임을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당신들 그림에 당신들 삶을 어떻게 담아 우리들이 오늘날 어떠한 넋과 얼로 껴안으면서 흐뭇한가 하고 즐길 수 있으면 됩니다.

 다만, 《단원의 그림책》도 ‘김홍도 님 삶’보다는 ‘김홍도 님이 선보인 그림 기법’에 조금 더 눈길을 맞춥니다. ‘김홍도 님 그림 기법’ 이야기를 여느 사람들 말씨로 재미나게 풀어내는 일도 좋다 할 수 있으나, 이렇게 풀어낸다 하더라도 딱딱하거나 메마른 말투로 풀어낸 ‘그림 풀이책’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읽고 나누어야지, 손재주를 기리거나 우러를 수 없어요. 자동차를 몰더라도 자동차를 모는 사람 매무새를 읽어야지, 자동차 기종이 무어요 ‘모퉁이 돌기(코너링)’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하느냐를 다룰 까닭이 없습니다. 단원 김홍도 님이 지난날 ‘어떤 붓으로 그림을 그렸느냐’라든지 ‘어느 종이에 그림을 그렸느냐’를 샅샅히 살피거나 훑는다고 단원 김홍도 그림을 더 잘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림을 그린 사람 삶과 그림에 그려진 사람 삶을 살가이 껴안으면서, 내가 꾸리는 삶을 톺아보고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가 복닥이는 삶을 그러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4.1.11.불.ㅎㄲㅅㄱ)


― 단원의 그림책 (최석조 글,아트북스 펴냄,2008.5.13./1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