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문화와 사진예술
 ― 좋은 삶에서 길어올리는 사진꽃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예뻐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든 빨리빨리 해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학교를 나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어를 솜씨있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결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제 목숨을 보배롭게 여기면서 즐거이 살아가면 넉넉합니다.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면서 저마다 사랑하는 마을에서 저마다 사랑하는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일굴 수 있으면 좋습니다. 누구나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삶자락을 누리면서 어깨동무를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 나라에는 사진문화가 없습니다. 사진문화란 사진만 헤아리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진만 헤아리더라도 이 나라에는 사진 또한 없습니다. 더욱이 문화라 할 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삶이 있기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삶이 있을 때에 문화가 비로소 태어납니다.

 전통문화란 여느 자리에서 수수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꾸린 삶입니다. 김치이든 된장이든 시래기이든 콩국수이든, 잘나거나 대단한 사람들이 잘난 재주나 대단한 재주로 자랑하던 모습이 아닙니다. 밥이건 집이건 옷이건 노래이건 춤이건, 하늘에서 똑 떨어지거나, 사람들 살림살이나 마을에서 동떨어진 채 퍼지는 문화나 예술이란 없습니다. 그저 여느 삶이고 그예 수수한 사람이 어디에서나 나눈 전통문화입니다.

 짚신, 소쿠리, 삽짝, 온돌, 이엉, 질그릇, 멧돌이란 전통문화이면서 생활문화라고도 하지만, 이런저런 이름이란 부질없이 ‘삶’ 한 가지입니다. 삶이었고 삶이며 삶으로 이어가기에 ‘전통’입니다. 따로 ‘전통’이라는 앞머리를 붙일 까닭이 없이 삶이요, 삶이기에 학자들은 전통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예술이라든지 이름을 거듭 붙입니다. 도자기를 굽든 그림을 그리든 장구를 치든 굿을 하든 무어를 하든 인간문화재나 예술이나 문화이기 앞서 노상 삶입니다. 언제나 삶인 가운데 더욱 알뜰히 즐긴 이야기입니다.

 사진문화가 있다 한다면 사진이 삶으로 녹아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예술이 있다 한다면 사진이 삶으로 꽃피운다는 소리입니다.

 나랑 너랑 우리,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수수한 터전에서 조촐하게 어우러지면서 즐기는 삶인 사진일 때에 사진문화이면서 사진예술입니다. 이른바 ‘순수문화’나 ‘순수예술’이란 없습니다. ‘순수삶’부터 없기 때문입니다.

 ‘순수식사’란 없습니다. ‘순수육아’라든지 ‘순수살림’이라든지 ‘순수직장인’ 또한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서 되는 삶이란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서 되는 삶이란 기계와 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해도 되는 삶이란 사람이 사람다이 꾸리는 삶이 아닙니다.

 집 바깥에서 돈만 벌어들이면 되는 아버지 노릇이나 어머니 구실이 아닙니다. 집 안쪽에서 식구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도란도란 생각과 꿈을 나누어야 비로소 어버이 노릇이요 딸아들 구실입니다. 밥하는 사람 따로 밥먹는 사람 따로일 때에는 집살림이 엉터리입니다. 함께 밥을 차리고 함께 밥상을 치우며 함께 마루에 둘러앉아야 합니다. 한 집안 식구가 다 같이 돌보는 아이입니다. 한 집안 식구가 모두 사랑하며 보살필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사람은 부속품이나 톱니 하나가 아닙니다. 사람은 늘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어느 한 가지 일만 해도 된다거나, 회사에서 무슨 한 자리만 지키면 된달지라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말을 하고 귀로 들으며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 따사롭거나 너그러운 마음결을 고이 건사하는 살아숨쉬는 목숨인 사람입니다. 누군가한테 아버지나 어머니요, 누군가한테 딸이나 아들인 고운 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곱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쁜 한 사람으로 사랑받기보다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명함으로 다루어집니다. 경제개발을 이루어야 하는 톱니바퀴로 여겨집니다. 사람이 부속품처럼 나뒹구는 이 나라에서는 사진이란 어쩔 수 없이 부속품 구실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다울 때에는 사진이란 한결같이 홀가분하면서 아름답습니다. 돈벌 생각만 하거나 돈벌 일만 하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듯, 사진문화만 생각하거나 사진예술만 살필 때에는 문화도 예술도 못 될 뿐더러 사진부터 되지 않습니다. 사진찍기만 한대서 사진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진문화가 되지 못하고, 사진읽기(비평)만 한대서 사진이야기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진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집살림 꾸리는 돈은 돈대로 벌면서 집식구랑 살가이 어울리는 가운데 내 삶 그대로 사진을 하면 됩니다. 먹고살기 팍팍해서 ‘사진찍기’나 ‘사진읽기’는 젖혀 놓은 채 돈벌이만 한다면, ‘사진을 찍어서 돈벌이를 한다’고는 하더라도 ‘돈벌이를 할 뿐’이지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수 없어요. 오늘날 신문·잡지사 사진기자가 수두룩하게 많기는 많으나, 돈벌이를 하는 사진기자만 있지 사진을 하는 사진기자는 몹시 드뭅니다. 스튜디오이든 사진관을 차린 이들 또한 돈벌이로 사진기를 매만지지, 삶을 헤아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매우 적어요.

 내 아이를 사랑하며 즐거이 돌보는 가운데 담는 사진 한 장이랑, 사진관에 찾아가서 예쁘장한 옷을 입히고 예쁘장하게 웃으라 하면서 찍는 사진 한 장이랑,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서로 견줄 만한 값이 아닙니다. 무언가 뜻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을 앞에 세워 놓고 사진기를 드는 사진 한 장이랑, 스스로 알차거나 다부지거나 씩씩하거나 즐거이 삶을 일구는 사람을 살가이 사귀면서 스스럼없이 사진기를 쥐는 사진 한 장이랑, 둘을 나란히 놓을 수 없습니다. 둘은 나란히 놓을 높낮이가 안 됩니다.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을 살피려 한다면, ‘좋은 사진문화’나 ‘아리따운 사진예술’이 꽃피우는 나라나 겨레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이 사진쟁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마을)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일구며 삶을 즐기는가에 따라, 사진은 문화도 되고 예술도 됩니다. 좋은 삶에서 좋은 사진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진’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좋은 문화’나 ‘좋은 예술’만 덩그러니 태어나거나 샘솟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틀만 좋을 수 없습니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해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좋음이란 다 다름입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꽃을 피워 다 다른 열매를 맺고 다 다른 맛을 즐길 때에 좋음입니다. 호박꽃은 호박을 맺고 오이꽃은 오이를 맺으며 수세미꽃은 수세미를 맺습니다. 호박은 호박이어서 좋고 오이는 오이여서 좋으며 수세미는 수세미여서 좋습니다.

 잘 찍는 사진 한 장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길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잘 찍자며 가르치거나 배울 학사과정이나 강의란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즐거우면서 좋은 사진을 당신 삶으로, 내 삶으로, 우리 삶으로 받아안으며 펼칩니다.

 잘 찍어 선보이는 사진이 없듯, 잘 찍어야 할 사진이 없습니다. 저는 제 아이랑 짝꿍을 굳이 잘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제 아이는 제 아이답게 찍으면 되고, 제 짝꿍은 제 짝꿍대로 찍으면 됩니다. 제가 살아가는 대로 제 아이를 바라보며 제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제가 일구는 살림살이대로 제 짝꿍을 마주하며 제 짝꿍 한삶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내 됨됨이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고, 달라지는 내 삶에 따라 사진 또한 달라집니다. 내가 먼저 고운 됨됨이가 되어 아름답게 살아가는 가운데 사진을 해야, 눈물을 흘릴 만큼 좋은 사진을 얻습니다. 나 스스로 착한 마음가짐으로 아리땁게 살아가는 가운데 사진을 즐겨야, 웃음꽃 흐드러질 만큼 기쁜 사진을 얻습니다.

 사진을 하는 내가 아니라, 참답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는 사람인 나로서 사진을 맞아들일 노릇입니다. 사진문화를 말하는 내가 아니요, 사진문화를 북돋우는 내가 아니라,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랑 따숩게 껴안을 줄 아는 예쁜 사람인 나로서 사진을 곰삭일 노릇입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고 옆지기를 사랑하며 멧골자락 조그마한 집에서 시골 도서관을 꾸리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하는 사진이라면 제 삶에 따라 하는 사진입니다. 제가 좋아하거나 바라보는 사진이라면 제 삶자리에서 바라보며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나 ‘나한테 돈 10억이 들어온다면’처럼 덧없는 꿈을 꿀 일이란 없습니다. 나로서는 ‘딸아이 아빠로서’ 오늘 하루를 생각하고, ‘집살림 일구는 남편으로서’ 오늘 하루를 헤아리며, ‘시골마을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를 되뇝니다. ‘작가’라든지 ‘비평가’로 살필 사진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서 돌아보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으로서 되돌아보며, 사랑받는 한 사람으로서 뒤돌아보는 삶인 가운데 사진입니다.

 이 나라에 내 삶을 내 삶대로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즐기는 사람들이 조금 더 늘거나 조금 더 자리를 잡거나 조금 더 신나게 사진잔치를 마련하거나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아주 보드랍고 따사로이 사진문화가 꽃을 피고 사진예술이 무럭무럭 봄바람 꽃내음을 실어나릅니다. (4344.1.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