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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바꿔 주세요! ㅣ 웅진 세계그림책 109
다케다 미호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3월
평점 :
우리 아이 바꿔 주셔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 다케다 미호, 《짝꿍 바꿔 주세요》(웅진주니어,2007)
깊은 밤, 잘 자다가 깨어난 아이가 칭얼거립니다. 쉬가 마려우면 기저귀에 누든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변기에 누든지 하면 좋으련만, 아이는 깊은 밤이건 이른 새벽이건, 아직 때를 가리지 못합니다. 그저 눈빛 말똥말똥 빛내며 놀고파 합니다.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아이를 달래거나 토닥여야 하는가 싶어 한숨부터 나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거나 고단할 텐데 어버이라는 사람 마음이 이렇습니다. 쉴 겨를 없이 집일과 아이돌보기로 하루를 꼬박 지새우다 보니, 잠자리에서는 기운을 더 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아직 아이가 하나인데 이런 몸이라면 아이가 둘일 때에는 어찌 되려나요. 아이를 셋 넷 다섯 여섯 키운 어버이들은 어떤 몸이거나 마음이었으려나요. 아이가 여럿이면 언니들이 동생을 잘 돌봐 주거나 놀아 주었으려나요.
아이 어머니가 몸을 추스르며 아이를 안고 잠들어 줍니다. 몹시 고맙다고 느끼면서 귓결로 속삭임 한 마디를 듣습니다. “벼리가 이제 다 컸구나. 아빠가 다 키워 줬네.”
다른 집 생각을 하고프지는 않으나, 여느 다른 집에서라면 이런 말은 으레 아빠가 할 테고, 이런 말을 들을 사람은 으레 엄마일 테지요.
어버이 된 몸으로서 마지막 기운을 더 뽑아낼 수 없을 듯하면서도 어찌저찌 움직이면 또 마지막 기운을 한 번 더 쓸 수 있고, 여기에서 다시금 또 어찌저찌 하노라면 마지막 기운을 두 번 더 쓸 수 있곤 합니다. 한 사람 몸이란 워낙 이러한지, 어버이가 되면 누구나 이러한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내 생각에 머문다면 이렇게 하지는 못하고, 아이 생각을 한다면 이렇게 움직입니다. 나를 키워 온 어머니도 이렇게 움직이셨을 테고, 내가 내 아이한테 이렇게 움직일 테며, 내 아이도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하겠지요.
해가 바뀌어 아이는 네 살로 접어듭니다. 달수는 서른한 달. 아이 나이를 한 달 두 달 헤아리면서, 아이 나이 한 달을 함께 보내는 동안 한 달은 마치 한 해와 같다고, 아니 열 해와 같다고 느낍니다. 아이와 보내는 하루는 꼭 한 해와 같겠지요. 아이 나이는 서른한 달이라지만, 이 아이하고 서른한 해나 삼백열 해를 살아온 듯합니다.
갓 태어났을 무렵에는 아이 옹알이나 아이 마음을 거의 못 읽었으나, 이제는 아이가 뒤돌아서 옹크릴 때에도 요 녀석이 뭘 생각하나 하고 읽습니다. 거짓으로 우는 소리를 내거나 놀이 삼아 칭얼거려도 고개 한 번 안 돌리며 알아챕니다. 아빠는 도마질을 하면서 아이를 타이르고, 아이는 말로도 제법 알아들으며 움직여 주곤 합니다. 그러나 말로 스무 번이나 쉰 번쯤 해야 비로소 몸을 움직여요.
답답하고 갑갑하며 고단한데다가 힘겨운 아빠는 홀로 생각합니다. ‘난 오늘 아무것도 못할 듯해. 그러나 아무것도 못할 수 없어. 그러면 우리 집 식구들 모두 굶을 테니까. 머리가 아프든 손이 다쳤든 허리가 삐끗하든 집살림을 꾸려야 해.’ 말 안 듣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네가 우리 아이 맞니? 왜 이렇게 미운 짓만 골라서 하니? 같이 놀아 주지 못해서 그러니? 그렇다고 너하고만 내내 놀아 줄 수는 없잖니?’ 문득, ‘우리 아이 바꿔 주셔요.’ 하는 생각이 몽실몽실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를 바꿔 달랄 수 없고, 바꿀 수조차 없습니다. 밥 먹으며 온갖 곳에 흘리고 입 둘레가 지저분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한창 칭얼거리다가 제풀에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면서, 놀이에 빠져 오줌 마려운 줄 잊다가 바지에 싸는 모습을 보면서, 조그마한 손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거나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 꼼틀꼼틀 살아숨쉬는 여린 목숨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길 말고 무엇이 있겠느냐고 곱씹습니다.
.. 난 오늘 학교 못 갈 것 같아. 머리가 아픈 것 같아. 배가 아픈 것 같아. 열이 나는 것 같아 .. (1∼3쪽)
그림책 《짝꿍 바꿔 주세요》를 읽습니다. 지난 2007년 3월에 한글판이 나온 일본 그림책입니다. 우리 식구는 이 그림책을 일본판으로 먼저 읽었습니다. 일본글은 모르면서도 그림이 예쁘고 줄거리가 살갑다고 느껴 헌책방에서 기쁘게 장만했습니다(우리 식구가 장만한 일본책은 1991년에 1쇄를 찍고 1996년에 20쇄를 찍었습니다. 2007년에 이 그림책을 옮긴 웅진출판사는 보도자료에 이 그림책이 2007년까지 일본에서 50만 부 넘게 찍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아이 또한 제 어버이처럼 일본글을 모를 뿐더러 아직 한글조차 모르지만, 아이도 이 그림책을 몹시 좋아합니다. 아빠는 그림책 그림만 보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읽어 주곤 합니다. 아이는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알 노릇은 없지만, 무릎에 앉히고 한 장씩 넘기며 따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야기보따리’나 ‘이야기꽃’을 즐기는구나 싶어요.
그림책 얼거리로 본다면 《짝꿍 바꿔 주세요》는 그림이 예뻐 한눈에 사로잡힐 만하지만, 그저 그림만 예쁘지 않습니다. 예쁜 그림에 걸맞게 예쁜 이야기를 펼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이 마음과 눈높이와 삶결에 따라 나즈막하면서 싱그럽고 보드라운 결을 곱게 보살핍니다. 짓궂은 짝꿍한테 시달리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기고, 짓궂은 짝꿍한테 크게 성을 내는 마음풀이를 곱게 담으며, 짓궂던 짝꿍이 속으로는 제 여자 짝꿍하고 더 살가이 지내고픈 마음이었으나 이렇게 짓궂게 굴어서는 살가울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아 부드러운 사이로 발돋움하는 흐름을 아리땁게 담는 가운데, 이 모두를 놓고 힘들어 했으면서도 너그러이 받아안는 조그마한 여자 아이 커다란 가슴을 흐뭇하게 담습니다.
남자 아이든 남자 어른이든 참 어리석습니다. 짓궂게 군다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바둥거린들 무엇 하나 예뻐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남자들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대로 살면서 참사랑을 놓치곤 할 테지요. 여자 아이나 여자 어른이 남자들 어리석은 바보짓을 언제까지나 참아내거나 보아주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은 바보짓은 그만두고 따숩고 너른 손길을 나누거나 따사로우며 넉넉한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밤샘 밤일 몰아붙여 돈을 더 벌어들인다고 집안이 더 즐거울 수 없습니다. 그저 돈만 더 번다고 집식구가 좋아할 수 없습니다. 집안에 자가용이 꼭 있을 까닭도 없으며, 자가용을 갖춘다 했을 때에 더 크거나 빠른 자가용을 갖출 까닭이란 없습니다. 꼭 있어야 하면 조그마하거나 값싼 자가용이어도 넉넉합니다. ‘내 살림집’이라면 굳이 아파트여야 하거나 넓은 집이어야 하지 않아요. 호젓하거나 아리따운 시골집에서 논밭 작게 일구며 조용히 살아도 참으로 기쁩니다. 군대를 크게 일으킨다고 나라 지키기를 할 수 없습니다. 미사일이며 탱크며 전투기며 군함이며 만들거나 꾸릴 돈으로 온누리 평화로우며 사랑스럽게 일구어야 아름답습니다.
예쁜 어린이로서 예쁜 어린 나날을 보내며 예쁜 짝꿍이랑 예쁜 꿈을 꾸는 가운데 예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삶을 일굴 때에, 예쁜 어른으로 무럭무럭 크면서 예쁘게 일을 하고 놀이를 즐깁니다.
겉만 예쁜 말이 아니라, 속으로 예쁜 말입니다. 겉만 예쁜 옷이 아니라 온몸이 예쁜 삶이어야 합니다.
.. 학교 가기 싫다 .. (21쪽)
싸움터에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싸움터에는 가기 싫습니다.
시뻘건 피가 튀며 총알이 비오는 곳만 싸움터가 아닙니다. 출퇴근과 통학을 한다는 아침길부터 지옥철이거나 지옥버스라 한다면 싸움터입니다. 알맞춤한 벌이와 배움을 즐기는 알맞춤한 일터와 배움터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복닥이며 싸움터로 바뀌어 버린 도시란 바로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싸움터 아닌 일터와 배움터에서 서로 맑게 웃을 노릇입니다.
밭을 갈고 싶다거나 눈밭을 걷고 싶다거나 장작을 패고 싶다거나 나물을 캐고 싶다고 생각하는 삶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착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꿈을 꾸면서 나부터 착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아름답습니다.
이리하여 날이면 날마다 아이랑 복닥이며 요 개구진 말괄량이랑 어떻게 놀며 어떻게 하루를 또다시 복닥여야 할는지를 놓고 아침부터 해롱해롱입니다만, 새삼스레 새힘을 내자고 다짐합니다. 서른한 달이 되는 아이는 엊그제부터 ‘어머니 전은경’과 ‘아버지 최종규’라는 소리를 똑똑히 말하는 한편, 제 이름 ‘사름벼리’도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드디어 서른한 달 만에 식구들 세 사람 이름을 또박또박 익혀서 말합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좋은 모습 좋은 꿈 좋은 삶을 빛내면 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아이인 만큼 아이한테 애늙은이가 되라 바랄 수 없어요. 어버이는 어버이인 만큼 어버이답게 아이하고 부둥켜안는 나날을 보내야지요. 《짝꿍 바꿔 주세요》에 나오는 어린이는 매우 괴롭고 힘든 나머지 “짝꿍 바꿔 주세요!” 하고 속으로 외치고 외쳤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학교에 다시 나갑니다. 아니, 날마다 학교에 빠져 공원이나 길가 어디에서든 떨어져 지내고 싶지만, 눈물을 꾹 삼키며 다시 학교로 갑니다. 이윽고 못된 짓 일삼던 짝꿍은 제 잘못을 뉘우치며 “짝꿍 바꿔 주세요!”라 외치고파 하던 아이한테 모진 손길이 아닌 여린 손길을 내밉니다. 우리 집 돼지 한 마리도 고단한 나날 보내는 제 아버지가 너무 지쳐 드러누우면 고 조막만 한 손으로 이마며 볼을 쓰다듬어 줍니다. 짝꿍도 아이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내고 함께 살아갑니다. (4344.1.6.나무.ㅎㄲㅅㄱ)
― 짝꿍 바꿔 주세요 (다케다 미호 글·그림,고향옥 옮김,웅진주니어 펴냄,2007.3.30./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