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님은 ‘독재부역’ 만화를 그렸을까? 아니면?
― 1987∼88년 민주운동을 비웃는 《퇴색공간》을 보면서
- 책이름 : 퇴색공간
- 글ㆍ그림 : 허영만
- 펴낸곳 : 당산 (1990.9.5.)
(1) 창작하는 자유와 비평하는 자유
만화를 비롯해 모든 문화와 예술은 ‘창작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창작하는 자유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개 창작품이 나한테 못마땅하다면, “나는 그이 작품은 못마땅해요” 하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이가 작품을 내놓지 못하게 막아야 해요”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진보만이 옳을 수 없고, 보수만이 옳을 수 없습니다. 진보 목소리를 막을 수 없고, 보수 목소리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반드시 진보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보수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삶대로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으면 됩니다. 법 없이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어느 틀에 매이지 않으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넋일 때가 가장 믿음직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이승만과 박정희를 우러르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원복), 전두환을 높이 사는 사진쟁이가 있더라도(에드워드 김), 노태우를 훌륭하게 여기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고우영),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도록 애쓴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현세), 이분들 모두 당신 생각과 뜻에 따라서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간 분들이므로, 또 이분들 나름대로 만화창작(또는 사진창작)을 하신 분들이므로,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분들이나 다른 분들이나 누구한테나 ‘창작하는 자유’가 있고, 창작하는 자유에 따라서 “박정희를 사랑해요!”나 “노태우가 좋아요!”나 “이회창이 짱이야!”를 외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한테는 창작하는 자유 못지않게 ‘따지는 자유’, 곧 비평과 비판을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따위 만화를 그리냐, 이런 ○○ 녀석!” 하고 쏘아붙이는 헐뜯기가 아니라, “아무개 씨 이런 만화는 이러저러한 줄거리로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는 만화로군요. 이러저러한 만화는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스며들어, 우리들한테 어떻게 느껴지거나 보여지는 만화이네요.” 하고 따질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또 만화를 말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거칠고 팍팍한 이 나라에서 똑같이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만화비평과 만화평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님이 막 대통령이 되어 사랑을 받을 때, 책방에는 ‘노무현 만세!’를 외치는 어린이 만화가 제법 쌓이며 팔렸는데, 여러모로 씁쓸한 길을 걸으면서 이 만화책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황우석 님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만화 또한 한동안 책방 책시렁을 가득 메웠으나, 쓰디쓴 일이 터지면서 이 만화와 전기와 과학책들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작가는 작가고, 작품은 작품이며, 책은 책인데, 작가가 다룬 작품이 누구를 다루느냐에 따라서 책은 붕붕 뜨기도 하다가 종이쓰레기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책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잘못이란, 제대로 알아보거나 앞날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엮어내고 사고팔려던 책마을 사람한테, 또 이런 책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들이던 우리한테 있지 않느냐 싶으나, 화살은 늘 애꿎은 책한테만 돌아갑니다.
(2) 허영만 님 만화 《퇴색공간》을 보면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던 보배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나온 적이 있느냐 놀라는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제법 퍼졌으나 실물을 보지 못해 궁금하던 책을 용케 손에 쥘 때가 있습니다. 때를 잘못 타고 나오는 바람에 사랑 한 번 못 받고 스러졌던 책을 만나고, 때를 잘 타고 나오면서 돈과 이름을 얻었으나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부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자취를 감추어 버린 책을 만납니다.
허영만 님 만화책 《퇴색공간》을 만났을 때에는 느낌이 여러모로 아리송했습니다. 만화 《오! 한강》을 그릴 때 떠돌던 소문이 그저 소문일 뿐인지, 아니면 만화를 그린 분 스스로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길이었는지를 알 길이 없었는데, 만화 《퇴색공간》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아하,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칩니다.
.. “신두표 이제 가니?” “으응, 도서관에서, 에 에 에 에취! 왜들 이렇게 북새통인지 이해가 안 가!” “내가 요즘 읽는 것 중에 고내찮은 책이 있는데 빌려 줄까?” “무슨 책인데?” “이거야.(《대학의 소리》라는 책)” “이거, 불온서적 아니야?” “무슨 말을,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자처하려면 이런 정도의 이론 무장은 되어 있어야지.” .. (17∼18쪽)
만화 《퇴색공간》은 ‘공장에 다니며 누나한테서 대학 등록금을 받던 신두표라는 1학년 학생이 세상물정을 하나도 몰랐다가 좌경학생한테 물이 들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는, 학업을 때려치우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면서 노조운동을 벌여 애꿎은 회사가 부도가 나게 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러면서 사이사이 ‘대학생들이 철없이 데모질이나 한다’는 대목을 끼워넣습니다.
.. “아이고, 이 녀석아, 이게 무슨 냄새냐? 네가 들어오니까 코가 근질거려 죽겠구나!” “최루탄이 묻어서 그래요.” “빨리 벗어라, 물에 담그게.” “예!” “원 녀석들, 비싼 돈 들여 학교 보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웬 데모야, 데모가. 넌 아예 근처도 가지 마라, 응?” “염려 마세요, 어머니.” .. (19쪽)
데모를 왜 하는지, 누가 누구하고 맞서는 데모인지, 1987년에 대학생들이 왜 그토록 데모를 하려고 했는지는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두표가 차츰 ‘지하서클’에 가까이하며 나쁜 물이 든다는 이야기를 펼치고, 지하서클에서는 학생들한테 ‘반공교육이니 대북정책이니 고급호텔이니 식민성과 반 봉건성이니 민중운동이니 부자는 몹쓸 놈이니’ 하는 이야기를 앞뒤 흐름 없이 툭툭 잘라서 토막토막 내던집니다.
1987년에 학생들 데모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노동자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사람들 살림이 고달팠던 까닭, 학생들이 얌전히(?) 공부에 마음쓰지 못한 까닭, 이리하여 전두환 독재정권이 무너진 까닭, 이러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찌 흘러가게 되는지 들은 조금도 다루지 않습니다.
.. “태일아, 책 잘 봤다.” “잘 읽었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 민주화니, 투쟁이니,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 .. (20쪽)
신두표는 “누나가 해 준 등록금이야! 어렵게 벌어서 준 돈인데 공부는 안 하고 데모에 앞장서고 있는 내가 과연 이 돈을 쓸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등을 느끼고 있어.(41쪽)”라 말하면서, 이무렵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을 하는데, 《퇴색공간》은 이 대목에서 이 1학년 대학생들을 뒤에서 이끄는(배후조종자) 사람을 조용히 내보냅니다. 배후조종자는 “여러분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대규모 시위에 관한 것이다. 학원의 민주화 쟁취를 위하여 6개 대학이 우리 대학에 모여 한날 한시 터뜨리는 것이다.(47쪽)”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가벼운’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조직을 탄탄히 하는 데에나 마음을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 “야, 이놈들아 그만두지 못하겠니? 장사를 못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우리 식구는 뭘 먹고 살라는 얘기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이 난리야!” “에취! 에취!” “그놈의 데모 땜에 이사갈래도 집이 팔려야 가지.” “에취! 에취! 기형아를 출산하기 쉽다는데 어떡해.” “좀 조용히 살자! 조용히! 누가 옳고 누가 나쁘든 제발 그만둬!” .. (23∼24쪽)
여섯 개 대학이 모인 큰 집회에서 신두표는 지명수배가 됩니다. 서울역 앞에서 떨꺼둥이로 지내다가 형사한테 붙잡혀 한 해 동안 감옥살이를 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신두표 스스로 누나와 어머니 볼 얼굴이 없다며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는데, 이렇게 한 주 지내는 사이 배후조정자인 박정웅 선배가 귀신처럼 나타나 “민족해방 운동은 학생 신분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넌 학원 내에서의 활동은 졸업했다. 구로공단으로 가라. 그곳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밑바닥 계급의 해방을 위해 헌신해라!(94쪽)”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위장취업을 합니다. 신두표는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한테 편지 한 장 남깁니다. 이 편지에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양지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가야겠습니다. 핍박 받는 수많은 노동민중의 해방은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 “이것은 좌경학생들이나 보는 책인데, 신두표의 가방에서 나왔어요.” “이 미친 놈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네놈 학비 땜에 고생하는 네 누나 생각을 해 봐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돌 던지고 불병 던지고 소리나 고래고래 지리는 게 공부냐! 이번엔 처음이라 풀어 줬지만 다음엔 감옥소에 보낸다고 했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새끼야!” “…….” “두표야, 누나가 어떤 기분인 줄 아니? 나를 더 실망시키지 말아 줘!” “미안해 누나, 하지만, 이건 뭐가 잘못돼 가고 있어.” .. (28∼29쪽)
공장에 들어간 신두표는 노조운동을 하며 파업을 이끌고, 다른 노동자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라! 주 44시간 작업 보장하라! 시간외특별수당을 지급하라! 최저임금 30% 인상하라!” 같은 말을 외칩니다. 이무렵 1988년에는 어느 공장에서나 이와 같은 파업이 두루 퍼졌습니다. 왜냐하면, 회사 간부들은 노동자한테 최저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일삯을 일삯이라고 주면서 시간외수당이나 특근수당을 안 주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쉬는 날 없이 몸이 망가지게끔 일해야 했으니, 빼앗긴 권리를 찾고자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지만, 만화 《퇴색공간》에는 이무렵 노동자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는가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문받은 제품의 납품시한이 코앞인데, 일하지 않고 저러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겠나? 회사가 잘 돌아가야 종업원 처우도 나아질 것 아닌가. 위장취업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여기를 떠나 주게. 이건 적지만 취직이 될 때까지 생활비로 쓰게나!(111쪽)” 하는 얘기 하나 나오고, 이에 신두표가 이 구린 돈을 동료 노동자한테 까밝히면서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로 사장 머리를 후려치고, 회사는 부도로 문을 닫았다는 얘기만 만화로 그려 냅니다.
.. “명단하고 목적 말이야! 잘 봐줄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성갑성 씨야좌경분자인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하겠다는 걸 잘봐 주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회사엔 지금 노조가 있는데 무슨 말인가? 노조를 반대하려면 정당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숨어서 선동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 “웃기는 소리 말더라고잉, 토요일날 우리는 민주노조 결성을 헐랑께 회사에서 막아 놓고 뭔 소리여?” “그건 위장취업된 불순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좌경세력에 의해서 노조가 결성되면 회사가 망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좌경부자라니? 빨갱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중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습니다. 기존 노조가 있으니까 회사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고, 기존 노조와 대화로 해결하세요. 그리고 나서 회사와 협상합시다. 그러니까 모두 작업장으로 들어가세요.” “잘해 준다는데 이러고 있을 건 없잖아.” “맞아!” .. (143, 158∼159쪽)
신두표는 구로공단에서 ‘한 건’을 올려 얼굴이 팔렸기 때문에 더 위장취업을 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와서 위장취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 회사 사장은 다른 노동자들 앞에서 “여러분! 민주노조를 자랑하는 저 사람들 말처럼 제가 여러분들을 정말 착취했습니까? 명색이 창업주가 사장인 제가 이 공장을 운영한 지 28년 동안 남은 것이라곤 32평 아파트 한 채올시다. 이것이 착취입니까? 정해진 월급 외에 회사돈 꺼내 썼다면 내가 개요 개(179쪽)!” 하고 말하며 살살 달랩니다. 신두표는 “귀족과 노예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역시 타협하지 못합니다. 싸워 이겨서 뺏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착취당한 것을 찾읍시다, 여러분(178쪽)!” 하고 외칩니다. 이 바람에 노동자들은 신두표를 ‘빨갱이’로 여기며 등을 돌립니다.
.. ‘멍청이! 라이터가 6개면 어떻고 6백만 개면 어떻다는 거야? 우리는 불을 지른 자의 소모성 부싯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 (216∼217쪽)
노조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고개를 떨군 신두표 앞에, 배후조종자 박정웅 선배는 ‘분신’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라이터 돌을 뺀 채 분신을 하겠다고 사장과 간부를 을러대라 꼬드깁니다. 그런데 그만 누군가 노조원 몸에 불을 붙여서 두 사람이 불에 타 죽습니다. 신두표는 학생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노조운동이든 한낱 부질없는 짓이며, ‘그들’ 끄나풀로 ‘소모성’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고 깨달았다고 뉘우치면서 《퇴색공간》은 빛바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3) 어느 곳이 ‘퇴색’된 ‘공간’일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수많은 ‘어용’노조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은 ‘주 44시간 노동’이 아닌 ‘주 40시간 노동’과 ‘주 5일 노동’이 자리잡습니다. 지난날 ‘어용’노조가 말썽이 된 까닭은, 이들 어용노조가 노동자 권리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노동자 짓누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간부나 중간간부가 노동자를 때리고 욕하거나 윽박질렀다면 요즈음은 이주노동자가 이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삶터가 차츰 나아진다고 하지만 얼마나 나아진다고 하는가를 헤아리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허영만 님이 그린 만화 《퇴색공간》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가 될까요. 무엇보다도 허영만 님은 이와 같은 만화를 어떠한 까닭과 생각으로 그렸을까요. 스스로 ‘학생운동-사회운동-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여기면서 이러한 만화를 그렸을는지요? 아니면, 다른 어느 누가 부탁을 해서 그려 주었을는지요?
만화책 《퇴색공간》으로 담아내듯, 이 나라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을 몰아낸 사람들 몸부림은 ‘옳든 그르든 중요하지 않고, 데모란 하지 말아야 했을 나쁜’ 일이며, 학생은 곱게 ‘공부나 해야 하는’ 노릇이었을까요?
참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을 바라던 사람들 몸짓과 발자국을 모두 거스르는 한편, ‘소모성 부싯돌’인데다가 ‘퇴색한 공간’이라고 말하는 허영만 님 만화생각을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요?
글 첫머리에서 밝힌 대로, 허영만 님한테는 허영만 님 눈길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만화를 그릴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영만 님 눈길대로 그리는 만화와 ‘참과 거짓을 비틀면서 그리는 만화’는 똑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꾸밈없고 아낌없이 쏟아내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다른 이 자유와 권리와 민주를 허튼 짓이라고 깔아뭉개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허영만 님은 당신이 1990년에 세상에 내놓은 만화책 《퇴색공간》을 어떤 까닭으로 어떻게 그리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부디 속시원히 당신 생각을 털어놓아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3.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