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나누는 기쁨 ㉤ 사진이 걸어가는 길
 ― 깍두기와 사진


 사진을 찍거나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글과 그림을 즐겨읽으라 이야기합니다. 글을 쓰거나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사진과 그림을 즐겨보도록 이야기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는 글과 사진을 즐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좋은 글은 좋은 그림이랑 사진하고 이어집니다. 좋은 사진을 마주하는 넋은 좋은 그림과 글을 만나며 한결 깊거나 넓어집니다.

 윤오영 님이 쓴 《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1975)이라는 묵은 책을 읽다 보면 〈깍두기說〉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책이나 이 글을 찾아 읽기란 쉽지 않은 만큼, 수필쓰던 윤오영 님이 ‘수필을 쓰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힌 대목에서 왜 깍두기를 빌었는가를 옮겨 봅니다. 윤오영 님한테는 ‘깍두기와 수필’이지만, 사진을 하는 우리한테는 ‘깍두기와 사진’입니다. 퍽 묵은 글이라 어려운 한문 투가 곳곳에 있지만, 좋은 글을 읽을 때에는 옥편이나 국어사전을 곁에 놓고 읽으면 한결 훌륭합니다.


.. 아마 다른 부인들은 산진해미 희귀하고 값진 재료를 구하기에 애쓰고 주방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무·파·마늘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갖은 양념 갖은 고명을 쓰기에 애쓰고, 소금·고추가루는 거들떠보지도 아니했을 것이다. 재료는 가까운 데 있고 허름한 데 있었다.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이나 왜관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으나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더우기 궁중에 올릴 음식을 그런 막되게 썰은 규범에 없는 음식을 만들려 들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무를 썰면 곱게 채를 치거나 나박김치 본으로 납짝납짝 예쁘게 썰거나 장아찌 본으로 걀죽걀죽하게 썰지, 그렇게 꺽둑꺽둑 썰 수는 없다. 기름·깨소곰·후추가루 식으로 고추가루도 적당히 치는 것이지 그렇게 싯뻘겋게 막 버무리는 것을 보면 질색을 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깍두기는 무법이요 창의적인 대담한 파격이다. 그러나 한국 음식에 익숙한 솜씨가 아니면 이 대담한 새 음식은 탄생될 수 없다. 실상은 모든 솜씨가 융합돼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무법 중의 유법이다. 무를 꺽둑 막 써는 것은 곰국 건지 썰던 솜씨요, 무를 날로 먹도록 한 것은 생채 먹던 솜씨요, 고추가루를 벌겋게 버무린 것은 어리굴젓 담그던 솜씨요, 발효시켜서 익혀 먹도록 한 것은 김치 담그던 솜씨가 아니겠는가. 다 재래에 있어 온 법이다. 요는 이것이 따로따로 나지 않고 완전동화되어 충분히 익어야 하고, 싱싱하고 얼근한 맛이 구미를 돋구도록 염담을 잘 맞추어야 한다 ..  (222∼223쪽)


 좋은 밥이란 먼 데 있지 않습니다. 맛난 밥이란 이름난 밥집에 있지 않습니다. 좋은 밥은 바로 내 어버이가 마련해 주는 밥이며, 나 스스로 내 살붙이한테 차려 주는 밥입니다. 맛난 밥 또한 내 할매와 할배가 차려 주는 밥이요, 내가 내 할매와 할배한테 차려 드리는 밥입니다.

 좋은 사진은 틀림없이 나라밖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사진은 어김없이 나라안에도 있습니다.

 머나먼 아프리카나 중남미 가난한 사람들을 찍어도 다큐사진입니다. 인도에 가든 네팔에 가든 티벳에 가든 이곳 자연하고 벗삼은 사람들을 담아도 다큐사진입니다. 그리고, 한국땅 비정규직 일꾼이라든지 여느 알바 푸름이라든지 농사꾼이라든지 한 달 일삯 100만 원이 안 되는 여느 일꾼들 삶을 담아도 다큐사진입니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만 찍어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 윤주영 님은 《50인》(방일영문화재단,2008)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으며 ‘우리 시대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라는 덧이름을 달았는데, 이 사진책 《50인》 또한 알뜰살뜰 다큐사진이 됩니다.

 더 가난한 사람을 찾아다닌다든지, 더 꾀죄죄하거나 더 볼품없거나 더 슬퍼 보이는 모습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나서야 다큐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과 웃음과 눈물과 고단함을 골고루 돌아보는 가운데 따순 사랑과 너른 믿음을 살포시 담을 때에 비로소 다큐사진이면서 ‘사진’입니다. 가난한 살림이든 가멸찬 살림이든 똑같은 사람 살림임을 깨달아, 사진쟁이 스스로 이들하고 살가이 이웃으로 사귀며 같이 웃고 같이 우는 가운데 수수하거나 투박하게 맞잡은 손으로 빚어야 바야흐로 다큐사진이자 삶사진이요 ‘사진’이에요.

 수수하거나 투박한 데에서 태어난 깍두기이듯, 흔하고 너른 데에서 비롯한 김치이며, 날마다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먹는 쌀밥입니다. 물 한 방울 없이는 사람이든 어떠한 목숨이든 살아가지 못합니다. 따로 마시는 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먹을거리에는 물기가 배었습니다. 물기 없는 먹을거리로는 어떠한 목숨도 숨결을 잇지 못합니다. 참으로 아름답다 하면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밥이나 밥거리란 바로 밥과 김치와 깍두기 같은 데에서 비롯합니다. 참으로 아름답다 하면서 두고두고 사랑받는 사진이나 사진거리란 바로 ‘밥 같은 사진’과 ‘물 같은 사진’과 ‘깍두기 같은 사진’에서 비롯합니다.

 그러나, 불고기도 사진입니다. 염통구이도 사진입니다. 김밥이나 케익이나 도넛이나 핫도그도 사진입니다. 잡채나 탕수육도 사진일 테지요.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나 스스로 어떠한 사진길을 걷는지 옳게 살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내가 즐기는 사진이 내가 즐기는 삶하고 얼마나 잇닿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궁중에서도 “옛날 음식 본을 뜨고 혹은 중국사관이나 왜관 음식을 곁들여 규격을 맞추고 법도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애썼”다고 하듯이, 오늘날 사진밭에서도 ‘전통 기법’이라든지 ‘서유럽과 미국 기법’이라든지 ‘일본 기법’을 배우거나 따르거나 좇는 흐름이 짙습니다. 사진밭뿐 아니라 그림밭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문화나 예술을 하는 분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 내 문화와 내 예술을 꽃피우거나 갈고닦는 이는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더욱이, 수수한 여느 사람들 삶터인 골목동네나 시골마을에서 문화와 예술을 일으키는 쟁이란 훨씬 적습니다. 대학교 시간강사나 교수 자리조차 바라지 않으며 조용히 사진길을 걷는 이는 얼마나 되려나요. 뚜벅뚜벅 걷는 사진길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뿐사뿐 걷는 사진길을 아끼는 사람은, 톡톡 튀듯 신나게 걷는 사진을 즐기는 사람은, 쉬엄쉬엄 걷는 사진길을 씩씩하게 보듬는 사람은, 다른 이 눈치 아닌 내 삶을 들여다보며 사진길을 다스리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요.

 앤 셸린 제이거라는 이가 엮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미진사,2008)라는 알차며 훌륭한 사진책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진책은 책이름으로 우리들한테 묻습니다. 사진은 찍어서 이룹니까? 사진은 만들어서 이룹니까? 사진은 어떻게 이룹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 깨우칠 분이 있을 테고, 이 책을 읽어도 못 깨우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는 사진은 어떻게 이루는가를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듯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로 헷갈리게도 하지만, 정작 풀이는 다른 데에서 합니다. 사진은 찍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고 아주 고요히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살아내면서 이룬다고 넌지시 들려줍니다.

 사진길은 사진을 찍으며 걸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만들며 사진길을 걸을 수도 없습니다. 사진이란 나 스스로 일구는 내 삶길에 따라 태어납니다.

 일본사람 ‘다케타쓰 미노루(竹田津 實)’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훗카이도 동물의사’로만 알려졌으나,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들짐승 사진을 찍는 놀라운 사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토몬 켄’ 님 사진책이나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책 하나 제대로 나온 적조차 없고 옳게 알려지지도 못했으니, 다케타쓰 미노루 님 ‘들짐승 사진책’이 찬찬히 옮겨지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예쁘장하게 꾸민 이야기책만 겨우 나올 뿐입니다. 이는 ‘호시노 미치오’ 님 북극곰 사진을 생각해도 똑같습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은 사진쟁이이지만 막상 호시노 미치오 님 사진책이 나오지는 않아요. 호시노 미치오 님 이야기책만 옮길 뿐입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책을 옮겨 주니 고맙다 해야 할 테지만, 사진하는 사람으로 보자면 ‘사진책으로 사진을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책으로 이야기만 만나는’ 일은 슬픕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이야기책을 만나는 동안 이분들이 어떠한 사진길을 걸었는가 하고 어림하거나 헤아리거나 꿈을 꾸어 보고, 이렇게 생각날개를 펼치면서 ‘글을 읽으며 사진을 읽는다’를 이루기도 합니다만, 사진쟁이로서 빚은 열매인 사진책을 못 보는 일은 서운해요. 겨우겨우 헌책방에서 몇 가지 사진책을 만나면서 쓸쓸함을 씻는데, 다케타쓰 미노루 님 사진책 《キタキツネ : 北邊の原野を驅ける》(平凡社,1974)를 마주쳤을 때에는 몹시 놀랐습니다. 다케타쓰 미노루 님이 1974년에 내놓은 북극여우 사진책 여우 모습이 1997년에 한국에서 나온 이름난 어린이책에서 보던 여우 모습하고 털끝 하나까지 같았거든요.

 사진은 내가 보는 대로 내 사진기 단추를 누르며 태어납니다. 사진이라 할 만하든 아니든 어떻든 사진이라는 물건은 쉽게 끊임없이 숱하게 태어납니다. 애써 찍은 사진이 물건으로 머무는지 작품으로 거듭나는지 이야기로 빛나는지는 사진길을 걷는 사람 매무새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진은 보는 대로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자 무엇을 보자면 무엇이 어떠한 님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어떠한 님인지를 알자면 지식쌓기도 해야겠으나,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로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내 남자친구 키랑 몸무게랑 취미랑 직업을 안다 해서 내 남자친구를 ‘안다’고 할 수 없어요. 마음을 알고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어야 시나브로 ‘남자친구 알아 가는 길’에 첫발을 디딥니다. 마음알기를 하자면 ‘함께 살아가’거나 ‘함께 살듯 어울려’야 합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글과 그림을 나란히 좋아하고, 만화도 몹시 좋아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더 좋아할 수 없고, 어느 하나만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루고루 즐길밖에 없고, 고루고루 즐길 만큼 모두 반가우며 기쁩니다.

 밥만 잘한대서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빨래를 잘한다고 살림을 잘 꾸리지 않습니다. 가계부를 잘 쓰거나 살림돈을 아낀다면 살림을 잘한다 말할 만한가요. 아이를 잘 돌보거나 보살핀다고 살림을 잘하는 셈이겠습니까. 비질이나 걸레질을 잘하는 사람은 어떠할는지요. 살림살이란 이 모두와 다른 숱한 여러 가지를 골고루 사랑하면서 잘할 때에 살림살이라 이름을 붙입니다. 사진찍기란 사진기질을 잘하는 일 하나로는 이루지 못합니다. 기계나 장비를 잘 건사한다고 사진을 하는 셈이 아닙니다. 취재원이나 사진거리를 잘 알아본다고 사진을 하지 않아요. 온몸 바쳐 현장에 뛰어든다고 사진을 힘껏 잘한다 말하지 않습니다.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유학길을 떠났다 해서 사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사진삶을 골고루 슬기롭고 사랑스레 껴안을 때에 사진길 첫발을 디딘 셈입니다. (4344.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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