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긷고 빨래하러 날마다 이오덕자유학교를 오르내리며, 이오덕 선생님 빗돌에 눈 쌓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문득, 여러 해 앞서 쓴 글 하나 떠올라 걸쳐 놓습니다. 

 



글이름 : 나한테 이오덕 선생님은


 새벽마다 일찍 잠이 깹니다. 겨울이 지나면서 개구리가 깨어났고 웅크리던 새들도 기운을 찾았습니다. 새벽 네 시 반쯤 되면 창밖은 환하고 새들 우는 소리로 귀가 따갑기까지 합니다.


 아침 햇빛은
 맨 처음 분홍색으로
 어질게 솟아오른 산의 이마를
 물들이고,

 다음엔 나뭇가지 위에서
 밤새도록 별들의 노래를
 꿈속에 수놓던
 새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주고,

 차츰 산기슭에 내려와
 시래기가 매달린 토담집
 찌그러진 방문을
 빨갛게 비추고,

 그 흙내 나는 방 안
 밥상 위에 놓인 된장찌개에서
 모락모락 서려 오르는 김을,
 둘러앉은 식구들의 검붉은 얼굴들을,
 그 가슴속까지
 환히 밝히고,

 그리고, 길가에 굴러 있는 자그만 조약돌
 조약돌마다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아침 햇빛〉(시모음 《까만새》에서)



 아침 햇빛은 공납금을 내지 못해 쩔쩔매던 아이들 머리에도, 시험점수 따는 공부에 떠밀리는 아이들 머리에도, 학교를 떠나거나 학교에서 쫓겨난 ‘문제아이’머리에도 비춥니다. 하지만 새벽별 보고 학교에 가서 저녁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머리에는 비추지 못하겠군요. 체육시간마저 아깝다 해서 바깥에 내보내지 않고, 오로지 책상 앞에만 묶어 두는 형편이니까요.

 교사가 되는 꿈을 꾼 적 있습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며 겪은 일’을 한 아이만이라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그 젊은 나이에 배우고 익히며 받아들일 여러 가지’를 즐겁게 부대낄 수 있도록 힘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교대에 들어가려면 ‘제도권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시험점수 따기 공부를 시키며 닦달하는 지식’을 나부터 다시 머리속에 넣어야 하더군요. 언젠가 ㅅ교육대학교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책’하고 ‘뻔질나게 빌려가서 닳고 닳은 책’을 보았습니다. 교대에서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책’은 제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숱하게 ‘선생들이 압수해 갔던 책(시험공부에 걸리적거리니 보지 말라며 빼앗은 책. 하이네 시모음, 소설 《원미동 사람들》도 빼앗긴 책이었어요.)’이며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뻔질나게 빌려가서 닳고 닳은 책’은 ‘교대에서 학점을 따고 강의를 들을 때 쓰는 교재’입니다. 더러 ‘동네 책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책’들도 ‘닳고 닳은 책’이 되곤 합니다.


.. 오늘날의 교육에는 사랑이란 것이 없어졌다. 겉으로야 무슨 말을 못하며, 보이기야 무슨 모양 어떤 숫자를 못 만들어 내랴. 가르치는 것이 지식의 단편이요, 물질을 얻고 입신하는 수단이고 보면 이런 넋 빠진 교육에서 아이들은 교사를 지식 전달의 기계로 보고, 교사는 아동을 밥벌이의 도구로 여긴다. 교육은 완전히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  《이오덕-삶과 믿음의 교실》(1978) 49쪽


 아직 힘알이 없는 멧개구리 뒤뚱걸음을 보았다가, 곧 깨어날 개구리알이 얼마나 있나 들여다보다가, 새벽부터 부지런히 울어대는 저 작은 새가 박새인지 콩새인지 살펴보다가, 새잎을 틔우려는 나무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 보다가,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지만 온갖 공해를 내뿜는 사람문명 탓에 먼지띠가 짙게 끼어 뿌옇게 보이는 하늘은 언제쯤 파래질까 생각하다가, 아, 철쭉이 피었네? 산수유는 진작 폈지? 살구꽃이 곧 터질 듯 말 듯이라는데, 복숭아꽃도 피겠구나, 보리순 뜯어 먹고 쑥 뜯어 먹고 민들레와 씀바귀도 캐어 먹으면서 참말 봄이 왔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난 2003년 8월 25일에 이오덕 선생님이 이 땅을 떠난 뒤로 세 해째 되었습니다. 선생님 살아 계실 때 딱 한 번 뵌 일은 있지만, 오로지 책으로 배우고 책으로만 스승이었습니다. 함께 어깨를 걸고 다부지게 일할 동무가 보이지 않고, 이런 까마득한 벼랑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찔할 때 한결같은 목소리로 만날 수 있던 책 스승이었습니다. 책으로만 만나는 스승이기에 자칫 ‘책에만 묻힐’까 아슬아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약용도, 박지원도, 홍대용도, 이규보도, 허균도, 김시습도 책으로만 만나는 스승입니다. 이분들은 언제나 ‘당신들이 한 일을 책에 적힌 글월로 읽기’보다 ‘책은 안 읽어도 좋으니, 어느 한 가지라도 얻은 것이 있으면 바로 몸으로 옮기며 네 깜냥대로 받아들이며 부대끼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깨우침·앎·슬기도 책으로 남아 우리한테 다가올 테지요.

 ‘교육자 이오덕’이 우뚝 설 때까지 이분한테 ‘스승이 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책도 많이 읽으셨을 테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많이 배우고 겪기도 하셨을 테며, 시골학교에서 자연을 언제나 벗삼기도 하셨겠지요. 그러고 보면 저한테 스승인 것은 사람이 남긴 책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태어나도록 한 자연 삶터, 둘레 사람들,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이기도 하겠어요.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누구하고도 열린 마음으로 부대낄 수 있다면,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거듭날 수 있겠어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들한테 스승으로 있기보다 말동무로, 살구와 오디를 함께 따먹고 감을 함께 주워먹는 놀이동무로, 자연 삶터에서 땀흘려 제몫을 다하는 일동무로 함께 살아가고 싶으셨구나 싶어요. 그래, 이제는 봄입니다. 이 봄을 봄기운 그대로 마음껏 느끼면서 ‘이오덕 선생님도 듣고 좋아하셨을 새소리’로 새벽을 열고 쑥을 뜯어 찌개를 끓여 아침을 먹습니다. (4339.4.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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