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7 : 인문책 읽기

 인문책이지 않은 책이란 없습니다. 어느 책이든 인문책이며, 인문책이란 책을 일컫는 또다른 이름입니다. 인문책이 안 읽히거나 안 팔린다면, 책이 안 읽히거나 안 팔린다는 뜻입니다. 인문책이 너무 어렵거나 딱딱하다면, 책이 그야말로 너무 어렵게 뒤틀리거나 딱딱하게 가라앉았다는 소리입니다. 지식인들이 자꾸 말놀이를 하듯 뇌까리지만, 인문책은 지식인들이 써내는 책이 아닙니다. 지식인이 써내는 책도 인문책 테두리에 들 만하지만, 인문책은 살림하는 여느 사람이 온몸과 온마음을 바친 땀방울로 일구는 책입니다. 살아숨쉬는 책이 인문책이요, 펄떡펄떡 뛰는 염통 소리가 묻어나는 책이 인문책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인문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학교수나 공무원이나 소장학자나 기자나 뭐 이런 지식인들이 아닙니다. 인문책은 여느 살림집 할머니 할아버지라든지 농사짓는 일꾼이라든지 아이 낳아 키우는 아줌마 아저씨라든지 이제 막 온누리를 부대끼며 깨닫는 어린이랑 푸름이라든지 용역 청소부 일꾼이라든지 맥도널드 알바 일꾼이라든지 기름집 알바 일꾼이 씁니다. 때로는 ㅅ이나 ㅎ 같은 큰회사 사무직원도 인문책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웬만한 사무직원이란 지식인하고 다르지 않아 인문책을 쓸 깜냥이 못 됩니다. 대학 문턱을 밟았다든지 나라밖 물을 마셨다든지 제법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섣불리 인문책을 쓰지 못합니다. 대학 강단에 선다거나 소장학자로 이름이 높다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꾸준히 싣는 지식인들이 쓰는 책은 ‘인문책’이 아닌 ‘지식책’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떠도는 숱한 인문책은 참답게 인문책이라 할 만하지 못합니다. 거의 모두 인문책이 아닌 지식책이기 일쑤입니다. ‘인문’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람들 삶’이 한자말로 옮겨적어 인문입니다. 사람들 삶자락과 삶결과 삶무늬와 삶매무새를 한자말로 가리켜 인문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인문책은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루는 책이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바라보며 온누리를 읽는 슬기로운 눈썰미를 얻도록 돕는 책입니다. 갖은 지식을 늘어놓는 책이 인문책일 수 없고, 똑똑한 지식인들 똑똑한 말씨가 뚝뚝 흐르는 지식책을 함부로 인문책인 듯이 덮어씌울 수 없습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도마질 소리가 깃들어야 합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인문책이 되자면 빗자루질 소리와 걸레질 소리가 감돌아야 합니다. 인문책이라 할 때에는 할머니 재채기 소리에다가 할아버지 앓는 소리가 고이 맴돌아야 합니다. 바람이 흐르며 나뭇잎을 건드리는 소리, 햇살이 따사로이 내리쬐면서 어린 싹에 기운을 북돋우는 소리, 나비가 팔랑거리며 꽃가루를 퍼뜨리는 소리, 배추잎이 갈라지며 으썩으썩 내는 소리, 어린이가 날듯이 콩콩 뛰면서 도움 닫는 소리, 집식구 고픈 배를 채울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깊은 밤 보름달과 뭇별이 가만히 지나는 소리가 고스란히 담길 때에 이러한 이야기 담은 책 하나를 두고 비로소 인문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인문책은 삶책입니다. 인문책은 사람책입니다. 인문책은 사랑책입니다. 인문책은 웃음책이요 눈물책입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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