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이
정필화 지음 / 특수교육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마음을 여는 이야기로 빚는 사랑
― 쇼지 사부로,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 책이름 :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 글 : 쇼지 사부로
- 옮긴이 : 정필화
- 펴낸곳 : 특수교육 (1990.7.24.)


 아이는 새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쥐하고도 이야기를 나누며, 나무하고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느 어른은 새는커녕 쥐하고든 나무하고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 헤아리면 새나 쥐나 나무에 앞서 제 아이하고 옳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기까지 합니다.

 어른은 어른끼리도 살가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나하고 돈크기가 다르다거나 선 자리가 다르다거나 사는 집이 다를 때에 선뜻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아니, 집 바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에 앞서 집 안쪽에서 오순도순 지낼 살붙이하고 얼마나 깊고 넓게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합니다.

 아이와 둘이서 읍내 장마당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는 버스에 타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합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내릴 때에 조금만 걸으려고 문 가까운 자리에 앉습니다. 우리는 문 뒤쪽 자리에 아이가 발을 올릴 수 있는 바퀴가 튀어나온 데에 앉습니다. 아이 목소리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꾸준히 인사를 하고, 어르신들이 인사 소리를 못 들어도 씩씩하게 거듭 인사를 합니다.

 아이하고 길을 거닐 때, 아이는 낯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도 즐겨 인사를 합니다. 낯빛 없이 걷던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모두 아이 인사를 받지는 않으나, 꽤 많은 분들은 굳은 얼굴을 펴면서 인사를 받곤 합니다. 길을 걸어가면서 모든 사람한테 인사를 하자면 길을 못 간다 할 만하지만, 생각해 보면 길을 거닐 때에 마주하는 모든 사람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란 하나도 힘들거나 어려운 노릇이 아니에요. 제 어린 날, 동네에서 심부름 하나 하려고 달음박질을 하며 가게에 다녀올 때는 언제나 인사하느라 제대로 못 달리곤 했으나, 그래도 어른들 앞에서 뜀박질을 멈추고 “안녕하셔요!” 한 다음에 어른들이 지나가면 다시 달음박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인사는 잘 한다지만 이야기는 잘 못하는 내 삶이 아닌가 돌아봅니다. 누구보다 내 어버이하고 형한테 안부 전화조차 자주나 가끔이나마 걸지 못합니다. 생각조차 않는다고 해야 하나요. 옆지기 어머님은 곧잘 안부 전화를 걸어 주시지만, 정작 저부터 옆지기 어머님이나 아버님한테 틈틈이 전화로 잘 지내시느냐 여쭙지 못합니다.

 동무들한테도 새해인사 같은 전화를 잘 안 걸며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옆지기한테 흔한 인사말 같은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합니다.

 아이하고도, 옆지기하고도, 살붙이하고도, 동무하고도, 마음과 마음을 나누면서 오붓하게 살아야 즐겁습니다.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 똑똑하거나 예쁜 아이이든 몸이나 마음 한켠에 아픔이 있든 한결같이 사랑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고운 마음붙이입니다.


.. 일생 동안 신체상의 결함에 슬픈 일들이 끊이지 않을 이 아이가 걸어가야 할 운명을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의 행복했던 날은 언제였던가? 어머니 품에 안기고, 할머니 품에 안기던 시절이 이 아이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한 날이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해서 밖에 나가서 놀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바깥에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걸을 수 없었던 때가 오히려 행복했던 것 같다. 성장하니까 이러한 곤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장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가끔 떠올랐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자기 아이가 하루빨리 성장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커 갈수록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내 아이에게는 언제까지나 현 상태로 그대로 있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또 울고 돌아왔구나. 남자가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한담.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절규하듯 말하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35쪽)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라는 책을 생각합니다. 소아마비를 앓는 두 아이를 키우며 두 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픈 아이’가 걱정없이 사랑스레 배우며 씩씩하게 자라날 보금자리이자 배움터이자 만남터를 꿈꾸면서 온힘과 모든 돈을 들여 학원 하나 마련한 쇼지 사부로 님 한삶을 담은 책입니다. 쇼지 사부로 님은, 또 쇼지 사부로 님네 아주머님은, 또 아이들은, 늘 누구하고도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거나 만나고 싶어 합니다. 대단하거나 훌륭한 이야기가 아닌 수수하거나 너른 이야기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4343.12.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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