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 현대문학북스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내 하루를 빛내는 좋은 길
― 박경리,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 책이름 :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 글 : 박경리
- 펴낸곳 : 현대문학 (1995.4.20.)


 도시이거나 시골이거나 해는 똑같이 떨어집니다. 멧골은 해가 일찍 기운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든 멧골에서든 해가 기우는 때는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멧골에서는 이웃 멧자락에 해가 가린다 할 만하니 일찍 기운다고 느낄 만합니다. 또한, 멧골에는 도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만큼 더 어둡고 더 추우며 더 쓸쓸합니다.

 시골에서 산다고 늘 자연이나 날씨나 바람이나 물이나 흙을 느끼지는 않습니다만, 도시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자연이나 날씨나 바람이나 물이나 흙을 느낄 수 있으려나요.

 시골이 더 나은 터전이요 도시가 더 못난 터전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나 스스로 고운 목숨을 선물받아 꾸리는 내 하루를 얼마나 즐겁고 사랑스레 일굴 만한 보금자리인가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잎이 모두 진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를 느끼지 못하는 곳이라면, 찬바람 싱싱 불며 물을 꽁꽁 얼어붙도록 하지 못하는 곳이라면, 가랑잎이 썩어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곳이라면, 아침에 뜨는 해를 따스히 바라보고 저녁에 뜨는 달을 해맑게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이라면, 이러한 곳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이거나 헤아리며 살아가려나요. 이러한 곳에서 살아가며 쏟아내는 글에는 무슨 이야기를 담으려나요.


.. 문화는 삶을 위한 틀이며 본이지, 결코 죽음이나 칼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 어떠한 경우에도 이론이란 만들어진 그 순간부터 정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며, 진행은 그 반대의 개념입니다 … 요즘 문학도 자본주의 식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풍조이고 보면, 그러나 문학을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면 구태여 창작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 옛사람들은 일이 보배라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일이란 인간에게, 아니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  (198, 243, 255, 301쪽)


 삶을 일구는 문학이고, 삶을 살찌우는 문화이며, 삶을 북돋우는 교육입니다. 삶을 돌보는 과학이고, 삶을 이끄는 운동이며, 삶을 사랑하는 철학입니다.

 삶하고 동떨어졌다면 문학도 문화도 교육도 아닙니다. 삶하고 어깨동무하지 않는다면 과학도 운동도 철학도 아니에요. 정치나 행정도 매한가지입니다. 한결같이 삶하고 나란히 걸어가야 합니다.

 삶은 돈이 아닙니다. 문학도 돈이 아닙니다. 책도 돈이 아닙니다. 사진 한 장 또한 돈이 아니에요.

 사람이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와 내 어버이가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인생은 결코 장식이 아니며 문학도 장식이 아닙니다 … 문학은 학문같이 처음부터 체계적인 것으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삶이라는 외길을 나타내기 위하여 작가는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수렴해야 합니다 … 문학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며 느끼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이며 온갖 것이 다 널려 있는 세상을 보는 눈에 의한 것입니다 ..  (302, 303, 306쪽)


 《토지》라는 작품을 읽으려는 분이나 읽은 분이라면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를 함께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문학을 바라는 젊은이란, 삶을 바라는 젊은이입니다. 삶을 바라는 젊은이란 언제나 내 넋을 젊게 보살피고픈 사람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픈 사람들한테 박경리 님 스스로 당신 삶을 어떻게 사랑해 왔는가를 조곤조곤 살몃살몃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책 하나가 싱그러이 태어났으나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4343.12.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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