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
이외수 지음 / 동문선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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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바나나·아쮸끄림
― 이외수,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 책이름 :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 글 : 이외수
- 펴낸곳 : 여원 (1988.4.1.)


 이름난 사람이 그리 이름나지 않을 무렵에 쓴 책이기에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새삼스레 다시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썩 이름나지 않은 사람이 더욱 이름나지 않을 때에 쓴 책이라서 새로운 출판사는커녕 아무런 출판사를 다시 만나지 못해 오래도록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묻히다가는 그예 사라지는 책이 있습니다.

 널리 읽힌다고 다 좋은 책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알아본다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이 아닙니다. 책은 그저 책입니다. 새롭게 되읽히면 새롭게 되읽히는 대로 좋고, 한 사람이 알아보는 아름다운 넋이면 이와 같은 넋 그대로 좋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세(293쪽)”를 당신 글 어디에나 고이 담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적바림한 책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는 끊일 듯하면서 끊이지 않고 새옷을 입으며 새로운 책손을 만납니다. 아마, 이외수 님은 나날이 더 이름을 얻고 날마다 새로 책손을 사귀겠지요.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이든 다른 소설이든 수필이든 오래도록 사랑받을 만하리라 봅니다.

 그러면 이외수 님 문학에서 무엇을 들여다볼 만하기에 이외수 님 책을 뒤적일 만할까요. 이외수 님 문학을 읽는 내 삶은 얼마나 아름답거나 넉넉히 거듭날 만하기에 굳이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여 먼지를 탁탁 털어 장만할 만할까요.


.. 가격을 물으니까 참외 한 개의 값이 거의 연탄 스무 장 값과 맞먹는 액수였다. 하지만 나는 냉방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마누라에게 참외만은 사다 주고 싶었다. “봉투에 넣어서 깨끗한 종이에 포장해 주십시오.” 나는 세 개를 샀다. 돈이 모자라서였다 … 솔직이 말해서 한 개 정도는 나도 먹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  (85쪽)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즐거이 살고, 가면 살림이면 가면 살림대로 기쁘게 살아갑니다. 가난하다 해서 이웃하고 사랑을 못 나누리란 법이 없습니다. 가면 살림이어야 비로소 이웃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습니다. 가멸게 살아가며 이웃사랑 한 줌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가멸게 살면서 ‘아직 배고프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몹시 많습니다.

 저는 이외수 님이 가난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아 반갑습니다.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을 뿐더러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느껴 고맙습니다. 가난하던 이외수 님은 가난하던 결 그대로, 없는 주머니를 털거나 동무한테서 돈을 빌었습니다. 입덧하는 옆지기한테 연탄 말고 참외를 사다 줍니다. 정갈한 종이봉지에 참외 세 알을 담아 대접합니다.

 아이 밴 옆지기를 돌보며 살림을 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살아갑니다. 아픈 옆지기를 보살피며 살림을 일구는 사람일 때에도 언제나 이처럼 살아갑니다.

 어른 버스표가 110원 하던 때에 바나나는 한 송이가 아니라 한 알이 500원이었습니다. 그무렵 어머니는 당신 아이가 썩은이 때문에 이를 뽑거나 고쳐야 하면 당신 버스표 다섯 장어치 값이 되는 바나나 한 알을 아낌없이 사 주었습니다. 당신 아이는 바나나 한 알을 눈물 글썽이며 고맙게 받아 아주 오래도록 아주 천천히 씹으며 먹었습니다.


.. 눈치 빠르신 분들은 대번에 알아차리셨겠지만 결코 낙관적인 안목에서 표현되어진 말은 아니다. 대학생이 국화빵이라면 대학은 그 국화빵을 찍어내는 빵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개성이라는 것을 찾아보랴. 한결같이 똑같은 모양, 똑같은 무늬, 똑같은 크기를 가진 것이 바로 국화빵이다 … 잘 아시겠지만 지성이란 지식과는 달라서 많은 법칙을 기억하고 많은 공식을 기억하고 많은 단어를 기억하고 많은 인명이나 연대를 기억한다고 해서 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지성은 지식을 통한 깨달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두뇌에 있지 않고 가슴에 있다 ..  (231∼232쪽)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우리 딸아이는 ‘아쮸끄림’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집에서는 얼음과자를 사 주지 못합니다. 읍내에 나가야 비로소 사 주지요. 어쩌다가 읍내에 마실을 가서 얼음과자를 사 주면, 아이는 거의 한 시간쯤 걸려 먹습니다. 겨울이라 더디 녹으니 오래오래 먹는데, 여름에는 그만 녹아 줄줄 흐릅디다. 그래도 아이는 얼른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맛난 고마운 먹을거리를 천천히, 아주 더디게 즐기려 합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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