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11번가’ 바보짓


 내 새 책 《사랑하는 글쓰기》가 나왔다. 제때에 나오지 못했으나, 이렇게 종이에 곱게 찍혀 태어난 모습을 보니 눈물이 글썽하다. 이 아이는 나와 내 둘레 사람들이 얼마나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으려나. 책이 새로 나오기도 했고, 옆지기가 인천에 오랜만에 마실을 하고프다고 말한다. 애 아빠는 이런저런 볼일로 지난달에 인천으로 마실을 했지만, 옆지기는 넉 달 만에 인천으로 마실을 한다. 아이랑 모두 인천으로 마실을 다니기도 넉 달 만이다.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는 길에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온몸이 찌뿌둥하다. 아주 잠깐조차 쉬지 않으며 놀아대려 하는 아이를 전철에 얌전히 앉힐 수 없다. 뛰놀고픈 아이는 전철 같은 데가 얼마나 갑갑할까. 콩콩 통통 튀고플 텐데.

 아이하고 복닥이다가 살짝 숨을 돌리려고 머리를 창문에 기댄다. 히유 하고 한숨을 쉬는데, 오른쪽 위에 대롱대롱 달린 광고판이 보인다. 전철이든 버스이든, 이런 탈거리 구석구석은 눈을 쉴 곳이 없이 광고판이다. 버스나 전철이 사람 눈길이 닿는 데마다 이렇게 광고판을 덕지덕지 붙인다면, 이들 회사가 광고삯 받는 만큼 버스삯이나 전철삯을 안 받아야 옳지 않으려나. 광고삯은 광고삯대로 받으며 우리 눈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흔들면서 찻삯은 또 찻삯대로 다 받으니 얼마나 몹쓸 노릇인가.

 광고판 그림에는 책을 잔뜩 그려 놓았다. 책 그림 옆으로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선다. 사이에 잔글씨로 무어라무어라 적었구나. 안경을 쓰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번 주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무료 배송 …….” 아, ‘싸게’ 살 뿐더러 집에 드러누워 거저로 받아 보기까지 하는 이 책들이란 ‘읽는’ 책인가, ‘사서 쓰고 버리는’ 책인가. 모든 책은 적어도 10% 에누리에 적립금까지 몇 퍼센트가 되는데, 이 몫은 누가 내지? 책값에 이 몫이 담기는가, 출판사가 피를 뱉어야 하는가, 책방이 살을 깎는가? 내 삶을 밝히며 내 넋을 살찌우는 책을 나누는 좋은 책방 이야기란 어디론가 숨고, 이처럼 서로서로 더 싸게 많이 팔아치우는 장사꾼들 놀음놀이만 번쩍번쩍 춤을 추어야 하는가?

 그러나, 책방들이 이렇게 춤을 추면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이 춤 가락에 맞춘다. 한두 사람이 아닌 참 많은 사람이 이 가락에 이 춤을 추고 저 가락에 저 노래를 부른다.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이란 차츰 사라지면서, 1회용품 같은 싸구려 물건을 늘 새롭게 장만해서 쓰고 버리는 사람만 자꾸 늘어난다. 책이 태어나지 못하고, 책이 읽히지 못하며, 책이 녹아들지 못한다. 바보짓이 바보짓이 아닌 듯 뿌리를 내리고, 바보짓을 할수록 돈을 거머쥘 뿐 아니라, 바보짓 막놀이가 온누리를 휘감는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당신 살던 동안에 당신 책이 ‘느낌표 책’으로든 무슨 책으로든 뽑혀서 불티나게 팔리는 일을 두려워 했다. 가만히 보면, ‘느낌표 책’으로뿐 아니라 무슨무슨 추천도서나 필독도서나 권장도서로 뽑히는 일도 두렵다. 책은 기관이나 단체나 교사가 ‘좋은 책’이랍시고 뽑아서 이름표를 붙일 수 없다. 책은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 스스로 가슴으로 마주하고 사랑으로 껴안으며 나무처럼 가지를 벌리고 잎을 틔우며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해리포터·하루키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으로 읽혀야 한다. 이오덕·리영희는 지성인이 아닌 책으로 읽혀야 한다. 이원수·권정생은 추천명작이 아닌 책으로 읽혀야 한다. 책은 삶으로 자리를 잡고, 삶은 책으로 다시 살아숨쉬며, 사람은 책을 책다이 가꾸는 가운데, 사람은 삶을 삶다이 일구어야 한다. 바보짓 사람들이 바보짓을 멈추지 않으니 ‘도서 11번가’는 바보짓을 그치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도 새삼스러이 바보짓을 벌일밖에 없다. 책방들이 책방 구실을 하도록,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 읽는 사람’ 구실을 옳고 착하며 예쁘게 해야 한다. (4343.1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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