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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고 있었네
황석영 지음 / 시와사회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사랑하니까 알아야 할 사람과 삶
― 황석영, 《사람이 살고 있었네》
- 책이름 : 황석영 북한 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 글 : 황석영
- 펴낸곳 : 시와시학사 (1993.9.17.)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를 모른다면, 참말 사랑한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힘든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사랑한다 얘기할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어우러져야 하는 한편, 서로서로 조금 더 깊이 살피어 받아들이는 가슴이어야 합니다.
내가 먹는 밥을 내가 손수 지었는지, 누군가 지은 쌀을 돈으로 사다가 먹는지를 곰곰이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손수 지은 쌀로 한 밥이라면, 내가 쌀 한 줌 얻기까지 흙이랑 햇살이랑 비랑 바람이랑 얼마나 고마운가를 알아야 하고, 돈으로 사먹는 쌀이라면 내 몫을 애써 일구어 준 농사꾼이 어떻게 고마운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 우리는 말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한다고 하면서도 철저하게 그에 맞추어 우리 생각의 한계까지 그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의 잠재의식적입니다 … 한참 동구권이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에 신문·잡지마다 사회주의가 망했다느니 안 맹했다느니 하루 걸러서 서로 업어치고 메치고 하는 글들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이런 노력의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덜어서 북한을 알려는 노력을 했으면 싶었습니다 .. (232∼233쪽)
꽤 여러 해 앞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고 나서 책 하나를 그만 전화기에 올려놓고 돌아나온 적 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책을 놓고 온 줄 깨닫고는 부랴부랴 먼길을 거슬러 찾아갔는데, 한 시간 남짓 지나 공중전화로 돌아와 보니 제 책을 누군가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한 시간 사이에 책을 가져간 이는 공중전화에 얹힌 책임자가 찾으러 돌아올 줄을 몰랐으려나요.
이때 잃은 책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입니다. 이 책을 잃고 나서 영 쓸쓸하고 씁쓸해서 좀처럼 되사지 못하며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한동안 헌책방 책시렁에서 이 책이 안 보이더니 이제는 곧잘 보입니다. 여러 차례 되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되사지 않았습니다. 이동안 황석영 님이 보인 매무새가 몹시 달갑잖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내 이 책을 되사서 못 다 읽은 대목을 마저 읽습니다. 퍽 두툼할 뿐 아니라,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두 나라 삶자락이 살가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가만히 보면, 황석영 님이 만난 북녘사람은 ‘수많은 북녘사람 모습 가운데 1/1000이나 1/10000’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1/십만이나 1/백만일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황석영 님은 북녘땅을 밟았고 북녘사람을 만났으며 북녘마을을 거닐었습니다. 몸으로 겪는다 해서 더 잘 알지는 않으나, 적어도 몸으로 겪으면서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남녘땅 모든 사람이 황석영 님처럼 할 수 없는 노릇이요, 이렇게 하며 모두들 국가보안법 사슬에 걸려 감옥살이를 할 테니까 선뜻 나서기는 어려울 텐데(어쩌면 이렇게 한다면 문익환 목사님 말마따나 쇠울타리가 싹 걷힐 수 있겠지요. 백만 천만 사람들이 기나긴 줄을 이루어 북녘에서 남녘으로 또 남녘에서 북녘으로 걸어가서 만난다면 쇠울타리를 지키는 군인들도 총을 내려놓겠지요.), 적어도 “남녘사람은 북녘사람을 알려고 애쓰기”라도 해야 합니다. 북녘사람은 남녘사람이 쓴 책이나 글을 거의 못 읽는다지만, 남녘사람은 이래저래 북녘사람 이야기를 책으로나 글로나 드문드문 마주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도 읽고 헤겔도 읽고 체 게바라도 읽고 지젝도 읽고 홍세화도 읽고 진중권도 읽으면서, 왜 북녘사람 삶자락은 읽을 수 없을까요. 남·북녘이 하나되기를 바라거나 꿈꾼다면, ‘남녘 만세!’나 ‘북녘 만세!’가 아니라 남·북녘 한겨레 눈물과 웃음을 읽어 알며 살아야 합니다. (4343.12.14.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