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글쓰기
제주섬 헌책방으로 마실을 왔다. 아이는 헌책방 골마루를 누비며 논다. 아이 엄마랑 아이 아빠는 책꽂이를 찬찬히 살피며 책을 찾거나 읽는다. 아이가 지루해 하지 않고 스스로 잘 놀아 주니 몹시 고맙다. 아이 아빠는 사진을 같이 찍는다. 동화쓰는 ㅎ님이 쓴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힌 책 하나 본다. 새책으로 나왔을 무렵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지 않은 책이다. 책이 나온 지 네 해 흘렀다. 나는 내가 쓴 글이 네 해 묵었다면 참 철없고 해묵었으며 부끄러운 글이라고 느낀다. 새로 쓰거나 다시 손질하거나 거듭 매만져야 한다고 여긴다. 하루하루 새롭게 배우며 다시금 익히는 삶이니, 네 해나 흐른 오늘 이 자리에서 예전 내 글을 쉽사리 남들한테 보여주지 못한다. 자꾸자꾸 새 글을 써야 하고 거듭거듭 옛 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내놓는 책이란 늘 모자라거나 어설프거나 어리숙하다고 본다.
동화쓰는 ㅎ님은 ‘동화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힌 이 글을 언제쯤 썼을까. 2006년에 나온 책이니 적어도 2006년이나 2005년에는 썼다 할 테고, 더 예전부터 갈무리해 놓았다고 할 수 있겠지. 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 하는 글인데, 나라 안팎 숱한 이론이 가득하다. 이 이론을 풀이하고자 제법 어려운 말이 많다. 따지고 보면,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편, 또다른 대학교수나 학자들이 머리로 헤아린 이야기를 주섬주섬 엮었다 할 만하다. 가만히 보면, 어려운 말이라 할 수 있으면서, 갖가지 영어와 한자말을 뒤섞었다 할 수 있다.
대학생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서 이러한 글 눈높이와 매무새여야 하는가 궁금하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학문을 한다 할 때에는 이렇게 ‘이론 늘어놓기’와 ‘영어에 한자말 섞어쓰기’를 즐겨야 하는가 모르겠다. 글쓰기를 배우러 대학교에 찾아온 아이들은 글쓰기 삶쓰기 넋쓰기 아닌 이론쓰기 영어쓰기 한자쓰기를 배우는 노릇인가 싶어 아리송하다.
학문하는 글쓰기는 어린이문학에서 학문하는 글쓰기일 때마저 영어 뽐냄 글쓰기이거나 한자 자랑 글쓰기에서 허덕여야 하는가 궁금하다. 사랑 듬뿍 글쓰기요 믿음 가득 글쓰기로 거듭날 수는 없는 이 나라 학문 글쓰기인가 궁금하다. 어린이책이든 어린이문학이든 영어 뽐냄 글쓰기나 한자 자랑 글쓰기를 하지 않는데, 어린이책을 이야기하거나 어린이문학을 다룰 때에는 으레 아이 사랑 글쓰기나 어른 믿음 글쓰기가 되지는 못한다. 어린이책을 쓰듯이 ‘어린이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문학을 나누며 즐기듯이 ‘어린이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다루는 책’을 여미어야 하지 않겠는가. (4343.11.16.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