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사람 책읽기


 시골집에서는 큰비가 와락 퍼부을 때 으레 전화줄을 뽑아 놓는다. 벼락이라도 칠라치면 허둥지둥 전화줄을 뽑아야 한다. 자칫 몇 초 늦다가는 벼락이 전화줄을 타고 들어온다. 벼락은 시골집 셈틀을 퍽 하고 터뜨릴 수 있다. 지난여름에는 셈틀까지 탈 뻔했으나 공유기와 모뎀까지만 태우고 끝났다.

 오늘은 갑작스레 날이 흐려지더니 거센 비와 바람이 몰아친다. 부랴부랴 셈틀을 끄고 전화줄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한창 기차표와 비행기표 예약을 하던 터라, 이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에 괜히 더 바빠서 콩닥콩닥 조마조마.

 헐레벌떡 일을 마치고 전화줄을 먼저 뽑는다. 벼락이 치기는 해도 잇달아 치지 않으니 한숨을 돌린다. 셈틀을 끄고 얼마 뒤부터 벼락이 꽤나 크게 자주 친다. 전기불까지 모두 끄고 촛불을 켜야 하나 생각해 보았으나 전기불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두 시간 남짓 이렇게 있었나. 이동안 책을 한 아름 들고 작은방으로 건너와서 아이한테 책을 읽히고, 또 아빠는 아빠대로 책을 읽는다. 그런 다음 저녁을 차려서 먹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또 책을 펼친다. 아이는 이리 뒹굴고 저리 놀다가 바닥에 잔뜩 굴러다니는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가 하도 이리 던지고 저리 어지르는 바람에 날마다 몇 번씩 치워도 다시금 엉망이라 아예 두 손을 든다. 오늘은 몸이 너무 고단해서 더 치우지는 못하고, 이듬날 일어나서 치울 생각이다.

 혼자서 뒹굴며 놀기도 하다가는 그림책을 보다가는 또 어지르다가는 또 아빠 등에 갑자기 안기다가는 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우리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나는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놀며 무럭무럭 컸을까. 그때 우리 형은 나를 어떻게 마주해 주었을까.

 둘째를 밴 아이 엄마가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오로지 뜨개질만 한다. 뜨개질을 하는 바람에 뜨개질 바늘이며 실을 장만하느라 꽤 목돈이 든다. 내 살림으로는 도무지 바늘과 실 값을 댈 수 없어 형한테 전화를 걸어 바늘 값 보태어 달라고 얘기했다. 형은 몹시 고맙게 동생을 기꺼이 도와준다. 돈벌이가 어수룩한 동생은 노상 형한테서 도움을 받는다. 살림이 바닥날 때마다 형이 도와주어 숨통을 튼다. 내가 쓰는 글이랑 내가 찍는 사진으로 벌이를 제대로 하는 적이 없다.

 아이 엄마 얘기로는 아직 바늘을 다 안 샀단다. 아, 앞으로 바늘을 얼마나 더 사야 하기에 아직 모자라다 그러나. 그렇지만 아이 아빠가 책을 사들이는 데에 쓴 돈을 헤아린다면 바늘을 더 사야 한다는 소리는 하나도 따갑지 않다. 마땅히 사야지. 아무렴, 투덜투덜댈지라도 즐거이 사야지.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까지 아이 엄마는 손가락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뜨개질을 한다면, 아이 아빠는 아이랑 놀며 책을 읽다가는 이른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글을 써야 할 테지. 빨래하고 밥하고 뭐하다 보면 책을 쥘 엄두가 안 나기는 하지만, 빨래를 마치고 밥하기와 설거지를 마치고 크게 한숨을 돌린 뒤에는 바람소리랑 햇살이랑 달빛을 느끼다가 저절로 책을 펼친다.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고, 집구석에 텔레비전을 모셔 놓지 않다 보니, 아주 홀가분하게 책읽기를 놀이로 삼는다. 그렇다고 재미없거나 지루한 책은 읽고 싶지 않다. 좋은 햇살을 느끼며 좋은 책을 읽는 가운데 하루를 열고, 좋은 밤하늘 달빛을 느끼며 좋은 책을 몇 장 넘기는 가운데 스스르 잠들고 싶다. (4343.1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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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1 21:35   좋아요 0 | URL
공유기와 모뎀 오랜만에 들어보네요.인터넷 강국이라고 해도 아직 시골까지 전용선이 들어가진 않는 모양이군요^^;;;

숲노래 2010-11-12 05:28   좋아요 0 | URL
시골은 오로지 전화선으로만 인터넷을 한답니다. 이리하여... 일 때문에 사진파일을 보낸다거나 받아야 할 때에는 100메가에 한 시간 반쯤 걸립지요 @.@

카스피 2010-11-12 10:43   좋아요 0 | URL
허걱 한시간 반씩이나요 ㅜ.ㅜ

숲노래 2010-11-12 22:55   좋아요 0 | URL
100메가에 한 시간 반이니... 웬만한 파일을 보내려면 서너 시간은 기본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