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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니코 일기 2
마리 오자와 지음, 정혜영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조촐한 꿈, 그리고 조촐함을 좋아하는 사람
[만화책 즐겨읽기 13] 오자와 마리, 《니코니코 일기 (2)》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 퍽 많은 골목집 할매와 할배와 아주머니 들이 크고작은 꽃그릇에 온갖 꽃과 나무와 푸성귀를 기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웠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거나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면 도시 한켠 골목동네는 참 작고 꾀죄죄하며 볼썽사납다 할 만합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거나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도시 한복판 골목동네는 몹시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따사롭다 할 만합니다. 십일월이라 하면 쌀쌀하다 못해 추운 날을 맞이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발이 휘날리기도 하는데, 이런 날씨에도 해바라기 알뜰히 키워 내어 소담스러운 노란 꽃송이를 구경할 수 있는 골목집이 있습니다. 골목집 꽃그릇에 배추포기 알차게 여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이분들한테 배추값이 오르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멀리에서 누군가 찾아와서 구경하라는 꽃이 아닙니다. 대단한 도시농업을 하고 있으니 지식인들이 눈여겨보거나 활동가가 알아보라는 환경운동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들 삶입니다.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고, 당신 스스로 누리는 삶이며, 당신 스스로 일구는 삶입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거나 심으며 풀을 뽑아 돌보는 모습을 바라보면 몹시 가지런하고 정갈합니다. 누가 와서 보라고 논밭을 이처럼 돌보지는 않을 텐데, 시골버스를 타고 지나가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든 둘레 논밭을 바라볼 때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우며 몸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농사짓기를 경제활동지수라든지 농업생산지수라든지 하는 숫자로 재거나 따지는 이들한테는 이렇게 돌보든 저렇게 가꾸든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머리에 스며들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나 공무원이나 정치꾼이나 회사원이나 기자나 교사가 도시 삶터를 바라볼 때에는 ‘한 달 벌이’를 잣대로 삼습니다. 이이가 버는 돈이 많으면 잘산다 여깁니다. 이이가 버는 돈이 적으면 못산다 여깁니다. 이이네 집에 꽃그릇이 몇 개요, 꽃그릇마다 몇 가지 꽃이 피는가로 잘사는가 못사는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이네 집에 탱자나무가 몇 살이요 대추나무가 몇 살이며 배나무가 몇 살인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이이네 집 빨래대는 언제 세웠고, 얼마나 많은 빨래가 이 빨래대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말랐으며, 이 빨래대 둘레에 질그릇이 몇 놓였는지를 헤아리지 않아요. 공무원은 나무전봇대를 베고 시멘트전봇대를 박을 뿐입니다. 골목사람은 목아지와 몸통이 뭉청 잘린 나무전봇대에 수국을 심어 흐드러지게 피워 냅니다. 골목사람이 따로 무슨 꽃씨를 심지 않아도 나무전봇대 서던 자리에는 들풀과 들꽃이 뿌리를 내리기 일쑤입니다.
내 삶은 누구한테 드러내려는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좋아하여 즐기는 삶입니다. 네 삶 또한 누가 들여다보거나 재거나 따질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사랑하여 누리는 삶입니다.
- 이 아이를 맡기로 하면서 사랑을 포기했던 건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했어. 애인이 생기면 어린아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저어, 니코, 언니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이브엔 그 사람과 데이트 하기로 약속했거든. 니코랑은 이브이브에 파티하자.” “이브이브?” “23일. 이브의 전날.” (53∼54쪽)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 2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는 한결 무르익은 ‘삶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결 무르익었다뿐, 아주 단단히 여물거나, 매우 튼튼히 뿌리내린 삶사랑까지는 아닙니다. 이제야 한결 무르익으며 참으로 신나며 보람찬 삶사랑입니다. 어떻게 이어가야 좋을지까지 살피지 못하는 한편, 얼마나 즐거운가를 느끼지 못하는데다가, 어느 만큼 아름다운가를 헤아리지 못하는 삶사랑이에요.
그런데요, 아직 잘 모르거나 못 느낀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직 어설프거나 어수룩하다 하여 사랑이 아니라 못박을 수 없어요. 어리석어도 사랑입니다. 모자라도 사랑입니다. 어줍잖아도 사랑이요, 어리둥절하더라도 사랑입니다. 설레면서 좋고, 씁쓸하면서 좋습니다. 달콤할 때뿐 아니라 쓰디쓸 때에도 좋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그예 사랑이니까요. 사랑일 뿐이기에 언제나 좋습니다. 사랑임을 아니까 슬퍼도 좋고 기뻐도 좋습니다. 사랑을 하는 만큼 뜻을 이루어도 반갑고 뜻을 못 이루어도 고맙습니다. 이기거나 지려고 하는 운동경기가 아니듯, 얻거나 가로채려고 하는 사랑이 아니에요. 빼앗는다든지 사로잡으려는 사랑이 아니랍니다. 나와 네가 즐거우며 아름답고자 하는 사랑이에요.
- “24일에 만날 수 없다니, 갑자기 왜.” “아는 사람의 아이를 맡을 때, 그 아이에게 고의로 상처를 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어. 왜냐면 그 애는 친엄마의 사랑을 모르고 크면서 지금까지 충분히 상처받아 왔으니까. 난 그 애가 날 필요로 하는 동안은 그 애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었어.” “24일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애한테도 특별한 날이야. 우린 어른이니까 지금까지 그런 날을 얼마든지 지내 왔고, 얼마든지 특별한 날을 만들 수 있지만, 어린아이는 다르잖아?” (62∼63쪽)
꽤 어설프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딪힙니다. 참 어수룩한 탓에 이래저래 휘둘립니다. 퍽 멍청하거나 바보스럽다 할 만하기에 으레 헷갈립니다. 망설이거나 갈팡질팡합니다. 머뭇거리거나 조마조마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느낌이 좋아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느낌들이 썩 달갑지 않겠지요.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하나둘 치러내면서, 차근차근 느끼면서, 바야흐로 사랑이란 이런 맛이구나, 사랑이기에 이렇게 멋있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글동글한 사랑이란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또는 하나부터 백까지, 모가 없거나 티가 없는 사랑이란 없답니다. 아파하고 슬퍼하며 힘들어하는 사랑입니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며, 고단하다가 개운해지는 사랑입니다.
니코 어린이와 케이 언니는 이제까지 살면서 참다이 누리지 못하던 사랑을 늦깎이로 누립니다. 늦깎이 사랑이지만 둘도 없는 사랑임을 차츰 알고, 늦깎이 사랑이건 꽃등 사랑이건 새내기 사랑이건, 어떠한 사랑이든 사람을 곱게 가꾸어 주는 줄 배웁니다.
- “전부 합해서 782엔. 한 달에 500엔씩 용돈을 받고 있는데, 만화잡지 사고 남은 돈을 모은 거예요.” (81쪽)
- “니코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집에서 자랐으니까. 그날이 처음이었어. 가짜라도 엄마 아빠랑 셋이서 외출한 것 같은 기분.” (161쪽)
그렇지 않나요. 한 달에 백만 원을 벌면 넉넉하지 않나요. 세 식구이건 네 식구이건 다섯 식구이건. 아니,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벌어도 알뜰하지 않나요. 오십만 원 가운데 사십만 원을 밥값으로 쓰고 십만 원을 방삯으로 쓰더라도 살뜰하지 않나요. 돈이 모자라면 손전화는 안 쓰면 되지요. 돈이 없으면 텔레비전이나 빨래기계나 냉장고는 치우면 되지요. 돈이 없으니까 자가용은 안 몰면 돼요. 돈이 없는 만큼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아껴서 살아가면 되고, 돈이 없으니까 아파트 투자나 주식 투자 따위란 처음부터 아예 생각조차 않으며 살아가면 좋아요. 텔레비전을 안 보니까 연예인이든 연속극이든 운동경기이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 나누어도 됩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우리 식구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겪은 일을 돌이키면 됩니다. 이웃과 동무랑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됩니다. 우리 집 숟가락이 몇 있고, 너희 집 숟가락이 몇 있구나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됩니다. 우리 집 아이 기저귀 빨래는 몇 장 나오고, 너희 집 아이 기저귀는 몇 장이구나 하는 얘기를 하면 되어요.
살림집 숟가락 갯수를 도표로 만든다든지 수첩에 적바림해 놓고 외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이나 나이나 태어난 해나 띠나 다닌 학교나 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머리속에 안 담아도 됩니다. 그때그때 말문을 열고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말을 섞으면 그만입니다. 부침개를 몇 장 더 했으니까 접시에 담아 나누어 주면 됩니다. 고맙게 부침개를 얻어 먹었으니 접시를 돌려줄 때에 잘 익은 감알 몇 따서 아이한테 들려 보내면 됩니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몇 점 걸렸는가 세 보아도 즐겁습니다. 오늘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올 때에, 멧등성이를 멋들어지게 날아가던 누렁조롱이를 마주한 일을 어머어머 오늘 있잖니 하면서 조잘조잘 떠들어대어도 신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내 삶에 다 있습니다. 즐거운 일은 내 삶에 고루 있습니다. 고운 꿈은 내 삶에 알맞게 있습니다.
- 그러나 이 아이의 주위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온통 거짓뿐이었다. (156∼157쪽)
- 지금부터라도 관계는 얼마든지 쌓을 수 있는데, 미후유는 자신이 얼마나 아까운 걸 놓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158쪽)
《니코니코 일기》 2권에 이르러 비로소 무르익는 삶사랑을 맛보는 케이 언니는 ‘아이를 낳는 아픔과 기쁨’이라든지 ‘갓난쟁이가 어린이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돌보는 고단함과 보람’을 모릅니다. 그러나 ‘여덟 살 어린이가 아홉 살 어린이가 되는 결’하고 ‘아홉 살에서 열 살로 접어드는 고비’를 복닥이면서 갓난쟁이일 때에는 갓난쟁이일 때대로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꼬맹이였을 때에는 꼬맹이였을 때대로 어느 만큼 어여뻤으며, 오늘 여덟아홉 살 어린이는 이 나이대로 어찌어찌 아리따운가를 헤아립니다. 쉬 놓칠 뻔한 삶을, 아니 이제껏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삶을, 어쩌면 앞으로도 꿈꾸지 못했을 삶을 고맙게 마주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고마운 하루하루임을 깨달으면서 더 보람차며 알차게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케이 언니 스스로 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케이 언니 둘레 사랑스러운 동무와 좋은 짝꿍한테 조촐히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케이 언니 둘레 사랑스러운 동무는 케이 언니가 왜 이렇게 촐랑대는지를 잘 알아챕니다. 케이 언니 둘레 좋은 짝꿍은 겉훑기로만 돌아봅니다. 사랑스러운 동무는 사랑스러운 여러 가지 얼굴을 모두 껴안습니다. 좋은 짝꿍은 틀림없이 좋은 짝꿍이기는 한데 속읽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 “괜찮아.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돼! 이리 와! 케이 언니도 그렇게 할게. 지금부터 니코의 친엄마라고 생각할게!” “언니.” “엄마답지 못한 엄마라 미안해. 그래도 니코를 정말 사랑해!” (165쪽∼166쪽)
스물일곱 달째 함께 사는 딸아이 손을 잡거나 발을 잡거나 작은 몸뚱이를 껴안을 때에 ‘내가 이 아이 아버지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볼일을 봐야 해서 홀로 인천이나 서울로 마실을 가야 할 때에 시외버스를 타며 깡통보리술을 하나 톡 따곤 합니다. 홀짝홀짝 들이키며 가슴이 저밉니다. 글쎄, 가슴이 저미기 때문에 홀짝홀짝 들이킨다고 해야 옳겠지요. 오늘 하루 또 이렇게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이는 아이대로 심심할 테고 엄마는 엄마대로 고단하겠다고 헤아리면서,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우리 살붙이하고 얼마나 따사롭거나 넉넉한 사람으로 지냈는가를 뉘우칩니다. ‘내가 참, 한 집안에서 지아비요 아버지임을 잊으며 살지 않았나.’ 하고 되새깁니다.
만화책으로 다 보았고 거듭 보았으니 줄거리를 뻔히 알지만, 만화영화로 만들어 새롭게 나온 《블랙 잭》을 보면서 스르르 눈물이 흐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든 〈기적의 팔〉이든 훤히 꿰는 줄거리인데, 다시 보고 또 볼 때마다 가슴이 촉촉히 젖어듭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만화를 그려냈을까 곱씹으며 가슴이 뭉클합니다. 《니코니코 일기》를 2권째 차근차근, 한 장 두 장 천천히 넘기면서 오자와 마리 님은 어떠한 넋으로 이 만화를 담아냈을까 곰삭이며 가슴이 찡합니다.
바로 사랑이겠지요.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일 테지요. 내 몸하고 나눈 피가 흐르는 살붙이라 해서 사랑인가요. 내 몸하고는 동떨어진 피가 흐르는 동무나 이웃이나 짝꿍이라 해서 사랑이 아닌가요.
아이한테는 어머니 품처럼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은 없다 합니다. 그런데 내 어머니가 아닌 품이면서 어머니 품하고 똑같이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이 있습니다. 어머니 품하고는 사뭇 다르게 보드랍고 포근한 살결이 있어요. 내 어머니는 내 어머니대로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품으로 맞아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가 아닌 사람 또한 이 땅에 꼭 하나뿐인 품으로 맞아들여요.
- “난 그 애와 함께 즐기려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도 가끔은, 이 ‘가족’ 놀이를 함께 즐겨 주었으면 해.” (172쪽)
꿈은 조촐합니다. 꿈인 만큼 조촐합니다. 꿈이니 조촐해요. 조촐하지 않을 때에는 꿈이 아닙니다. 조촐하지 않은 생각은 부질없는 허우적거림입니다. 조촐하지 않은 생각을 자꾸 품으면 덧없이 갈팡질팡해댈밖에 없습니다. 조촐함하고 등지며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나 믿음을 맛볼 수 없어요.
니코 어린이는 엄마랑 아빠랑 니코랑 셋이 조촐히 나들이를 하는 삶을 누리고 싶어 했습니다. 케이 언니는? 케이 언니는 어떤 삶을 누리고 싶어 하나요. 아마, 케이 언니는 니코 어린이를 만나지 못했으면 좁은 도시에서 좁다란 속알맹이로 좁다란 돈을 벌면서 좁다란 집에서 좁다란 삶을 좋다란 나날에 허덕이며 좁다란 줄 모르고 좁다랗게 숨을 거두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케이 언니는 니코 어린이를 만나 ‘거짓 엄마’라는 허울이 아닌 ‘참 엄마’라는 삶을 누립니다. 케이 언니 삶을 참다웁고 아름다이 일구는 길을 넉넉히 맞아들입니다. 조촐함을 즐기는 삶을 새롭게 느끼며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케이 언니가 품는 꿈이란? ‘니코 어린이 가슴에 더는 생채기가 안 생기도록 지키는’ 일이 아니라 ‘니코 어린이와 케이 언니 두 사람 가슴에 사랑을 심도록 서로서로 좋아하는’ 삶입니다. (4343.11.4.나무.ㅎㄲㅅㄱ)
― 니코니코 일기 (2) (오자와 마리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옮김,2002.9.30./판 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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