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책읽기 3


 사진을 찾으러 인천으로 온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역 사진쟁이한테서 작품을 사는 미술은행을 연다고 하기에 나도 작품을 내놓아 보았다. 작품과 함께 ‘포트폴리오’라는 녀석을 A3크기 파일에 담아서 내라고 했기에, 골목 사진 가운데 80점을 추려 두 권을 만들어 냈다. 이제 이 사진첩을 도로 가져가야 하는 터라 모처럼 인천 마실을 한다. 문화재단에서 착불 택배로 돌려주면 좋으련만, 이곳 사람들은 할 일이 많으니까 작품을 낼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내도록 하고, 작품을 돌려받을 때에도 몸소 찾아가서 받도록 한다.

 공모에 붙었다면 인천마실이 한결 홀가분했을 테지. 공모에 붙지 않았으니 무거운 사진첩을 돌려받으러 가는 길이 마뜩하지 않다. 그러나 내 사진 80점을 그냥 둘 수 없는 노릇이다. A3 크기로 사진을 80점 만들자면 돈이 얼마인데. 생각해 보면, 작품을 산다 할 때에 문화재단에서 먼저 나서서 작품을 살 테니 몇 점 내놓으시오 하고 말해야 옳지 않나 싶다. 사진쟁이 스스로 ‘나는 이런저런 작품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하고 보여주기 앞서 문화재단 일꾼이 알아보고 찾아와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다. 참말 지역 작가를 돕고 싶다면, 지역 작가를 문화재단이 꼼꼼히 알아보고 살피면서 돕는 길을 헤아려야 할 노릇이라고 느낀다.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 때에 돈이 얼마인데. 품이 얼마인데. 땀이 얼마인데.

 그러나 내가 섣불리 헛꿈을 꾸었으니까, 배부른 김치국을 마셨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런 말이나 하는 셈일는지 모른다. 그래, 내가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 땀을 들여 찍은 사진을 내가 고이 여기며 사랑하고 싶어, 이 사진을 돌려받으려고 인천으로 마실을 나왔고, 마실을 나오는 김에 가을녘 골목 삶터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 쪼들리는 살림에 보태려는 헛마음을 품지 말자. 나 스스로 좋은 내 사진을 즐겁게 찍기만 하자. 이런저런 공모에 어설피 내놓지 말자. 내 골목 사진을 좋아하는 골목 이웃한테 거저로 나누어 주는 일을 다시금 조용히 이어가자.

 어제 낮에 부랴부랴 서울로 오고, 서울에서 헌책방 두 군데와 만화가게 한 군데를 들렀다. 책값으로 30만 원을 알뜰히 썼고, 가방이 미어터져 헌책방 일꾼한테 택배를 한 상자 맡기고 밤 전철을 타고 인천에 와서 여관에 묵는다. 고단한 하루인 터라 전철에서 내내 서서 오는 동안 더 고단한데, 만화책 한 권을 꺼내어 읽으며 고단함을 잊는다.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로 내놓은 만화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0) 1권을 읽는다. 오자와 마리 님 새 작품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PONG PONG》 세 권 다음으로 《민들레 솜털》이 나왔는데, 《민들레 솜털》은 2권까지 번역된 뒤로 3권이 아직 번역이 안 되었다. 어쩌면 일본에서도 3권이 아직 안 나왔으니 번역을 안 할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오자와 마리 님 만화는 썩 사랑받지 못한다. 찾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고 느낀다.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전철에서 구석에 서서 홀로 싱긋빙긋 웃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고단함을 잊고 시끄러움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다리가 아픈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고, 시골집에서 아이랑 아이 엄마랑 힘겨이 복닥이는 줄 잊으며 만화책을 읽는다. 내 가방에는 시골집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이 잔뜩 들었다. 헌책방에서 택배를 맡길 때에 딸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은 하나도 안 넣었다. 그림책은 모조리 내 가방에 넣어 질끈 짊어지고 돌아갈 생각이다. 아빠를 기다리는 딸아이한테 곧바로 보여주고 싶어, 어깨가 무겁고 등허리가 휘지만 열 몇 권 장만한 그림책은 기꺼이 짊어지고 돌아가려 한다. 그러니까 골목마실을 하는 동안에도 이 책은 고스란히 짊어질 노릇이다. 종아리와 허벅지에는 알이 배기면서 딸아이와 함께 즐길 그림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무거운 가방을 들쳐메고 골목을 몇 시간 걷자면 참 힘들겠지. 그렇지만 뭐 어떠랴. 어깨를 누르는 무게를 기쁘게 느끼면서 사뿐사뿐 거닐고 나긋나긋 사진을 찍어야지. 시골로 돌아가는 길에는 고속버스가 아닌 무궁화 기차를 타고 싶다. (4343.10.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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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0-29 08:31   좋아요 0 | URL
인천사는 분이야 왔다갔다 할수 있지만 지방 사는 분한테는 좀 너무한 처사군요.문화재단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인가 보지요.마치 공무원 같네요 ㅜ.ㅜ

숲노래 2010-10-29 08:59   좋아요 0 | URL
'인천 출신 작가'도 문화재단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천 무대를 소재로 하는 작가'도 지원을 받는데, 이런저런 '마음씀'이란 따로 없답니다 ^^;;;

어차피 공무원이니까요... 어쩌면 '공평'한 노릇이라 할는지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