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보듬는 마음


 지난 열흘 동안 애 아빠는 다른 어디로 혼자 볼일 보러 먼길을 나서지 않습니다. 아이랑 옆지기랑 꼭 붙어서 지냅니다. 옆지기는 몸이 많이 아프고 힘들기에 아이랑 노는 몫은 으레 아빠가 맡습니다. 아빠한테는 할 일이 멧더미 같으나 멧더미 같은 일거리는 흔히 뒤로 젖혀 놓습니다. 다만, 날마다 쓸 글은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아이가 잠이 깰 무렵까지 신나게 써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단하지만 고단하다는 티를 되도록 안 내려고 용을 쓰면서 아이랑 놉니다. 이러면서 이렇게 잠도 안 자는 아이랑 하루 내내 부대끼자면 얼마나 힘이 많이 드는가를 새삼스레 깨닫고, 옳게 ‘아이를 맡아 가르치는 이’들이 얼마나 힘겨운 노릇이며 이들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뼛속 깊이 헤아립니다.

 아이 아빠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먼저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이를 부릅니다. 그림책을 하나 꺼냅니다. 하나 더 꺼내고 또 하나 더 꺼냅니다. 드러누워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이도 함께 보자고 부릅니다. 아이가 와서 “누워! 누워?” 하면서 엉덩이를 들이밉니다. 그림책은 배에 얹고 아이를 두 손으로 안아 얌전히 눕힙니다. 팔베개를 할까 말까 하다가 아기 베개에 머리를 놓습니다. 그림책을 듭니다. 여느 때라면 누워서 책을 든다고 팔이 아플 까닭이 없지만, 아침부터 갖은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랑 놀다 보면 누구나 팔이 저립니다. 그래도 꾹 참고 그림책을 넘깁니다. 새로운 그림책을 보고도 싶지만, 아주 재미나다고 느끼는 그림책만 보고 또 보고 다시 봅니다. 팔이 저리고 졸리며 고단할 때에도 언제나 새롭게 보고 즐길 만한 아주 훌륭하다 싶은 그림책이 아니면 아이를 재우면서 읽힐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지식책이 아니에요. 그림책이란 삶책이요 사랑책입니다.

 세 권을 내리 읽으니 참말로 팔이 후들후들. 아이보고 이제 “벼리도 코 자야지. 토끼도 코 자고 고양이도 코 자는데, 코 자자.” 하고 말합니다. “토끼 코 자? 고양이 코 자?” 하면서 도무지 곱게 잠들어 줄 낌새가 아닙니다. “응, 아빠도 코 잘게. 드르렁! 드르렁!” 일부러 코고는 소리를 내다가 실눈을 뜹니다. 아이는 잘 생각을 않으며 조그마한 손으로 살며시 아빠 얼굴을 쓰다듬습니다. 아빠가 가여워 보였을까요. 아빠가 힘들어 보였을까요. 아니면 아빠를 사랑해 주려는 마음일까요. 엄마나 아빠가 저를 그렇게 살며시 쓰다듬어 주곤 하니까, 이런 손길을 떠올리며 아빠한테 돌려주는 셈일까요.

 부드러이 보듬는 살결이 얼마나 고마우며 사랑스러운가를 살 떨리도록 느낍니다. 부드러이 보듬는 살결이란, 나도 좋고 당신도 좋습니다. 부드러이 보듬는 글이란, 나도 좋고 당신도 좋겠지요. 인문책이란 지식책이 아니랍니다. 인문책이란 사랑책이며 삶책입니다.

 지식을 주워담아서는 그림책이든 인문책이든 될 수 없으나, 책조차 되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꽉꽉 들어찬 낱말을 엮어 지식을 꽃피우는 놀라운 얼거리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림책이나 인문책이 될 턱이 없어요. 이런 책은 모두 부질없는 자랑책이자 돈책이 되고 맙니다. 참으로 책다운 책이고자 한다면 눈물책이거나 웃음책이어야 합니다. 땀방울책만으로는 책이 되지 못합니다. 차근차근 살림책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살림책이 되려면 땀방울은 밑바탕으로 깔아 놓으니 땀방울책만으로는 모자랍니다. 햇살책 달빛책 별빛책 구름책 하늘책 흙책 배추책 보리책 바람책 냇물책 바다책 멧새책 무지개책 들이 고루고루 어우러지면서 바야흐로 살림책이 되고, 이 살림책 가운데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인문책이든 가지를 칩니다. (4343.10.26.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