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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 : 에드워드 슈타이켄
최봉림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사진과 사람과 삶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찾아 읽는 사진책 1] 최봉림,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디자인하우스,2000)
사진길을 걸었던 에드워드 슈타이켄(에드워드 스타이겐) 님 이야기를 ‘마치 에드워드 슈타이켄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기라도 하는 듯 꾸며’서 엮은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를 읽습니다. 나라안 출판사에서 에드워드 슈타이켄 님 책을 펴낸 적은 딱 한 번입니다. 다만, 이 책은 해적판으로 《인간가족》을 몰래 펴낸 판으로, 그나마 1986년에 월간사진사에서 한 번 나오고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해적판이면서도 제대로 낼 만하지만, 해적판이면서 제대로 내지 못한 책이기에, ‘인간가족’이라는 사진잔치를 마련하여 도록을 엮은 슈타이켄 님 삶이나 넋을 고이 싣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한글로 된 자료라든지 책으로는 슈타이켄 님이 어떤 사진길을 걸으며 어떠한 사진밭을 일구었는가 헤아리기 몹시 어려워요.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라는 책은 2000년에 나옵니다. 슈타이켄 님 작품이라든지 슈타이켄 님이 마련한 사진잔치 모습이라든지 슈타이켄 님이 사진길을 걸을 무렵 둘레에서 이룬 남다른 사진 작품 들이 이 조그마한 책(128쪽)에 찬찬히 실립니다. 도판은 퍽 깔끔합니다. 그러나 슈타이켄 님이 이루었거나 일구었다 할 만한 작품세계를 차분하게 살필 만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살짝 엿볼 만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오직 생각날개로) 책을 쓴 최봉림 님은 “회화주의의 역사적 소임은 사진적 재현이 기계적 복제술이 아니라, 회화처럼 인간의 지성과 감수성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이라는 것을 예술계와 사회에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45쪽).”라든지 “선생님의 전시회는 인류의 희망과 화해를 기원하고 손짓했지만, 실제로 ‘인간 가족’이라는 이상적 개념은 오히려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를 호도하고 가리는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될 수도 있었습니다(97쪽).”라든지 하면서, 말이 좀 많습니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틀이라 한다면 이처럼 말이 좀 많을 수도 있다 할 만하지만, 이 작은 책은 최봉림 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서 읽을 책이 아닙니다. 최봉림 님이 이토록 온갖 말을 당신 입으로 더 드러내어 밝히고자 했다면 ‘마주이야기 틀’이 아닌 ‘비평 틀’로 책을 엮어야 옳다고 느낍니다.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를 읽는 내내 ‘슈타이켄 님 목소리’로 나오는 이야기가 참말 슈타이켄 님이 했던 말인지, 또는 당신이 손수 쓴 글에 적힌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따로 붙임말을 달아 어느 자료 몇째 줄에 실린 글에서 따서 적었다고 밝히지 않으니까요. 최봉림 님이 생각해 내어 적은 ‘슈타이켄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하는 말인지, 최봉림 님이 ‘슈타이켄 증언 자료를 이리저리 깁고 새로 엮으면서 묻는 말을 새로 만들었’는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곧이곧대로 믿으며 읽어야 할 뿐입니다.
슈타이켄 님 목소리로 “점, 선, 면과 흑과 백의 계조도가 만들어 내는 항공사진의 추상적 형태미는 오직 사진이라는 매체만이 실현할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55쪽).”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라든지 “아름다움이 미술관과 살롱의 전유물로 갇혀 있기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술 운동의 한 결실인 셈이었죠(79쪽).”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와 아울러 자잘하게 묻고 대꾸하는 안부인사가 꽤 깁니다. 아마, 이런 안부인사란 ‘마주이야기 틀’로 엮은 책임을 또렷이 드러내면서 감칠맛나는 짜임새를 보여주는 구실을 한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200쪽이나 300쪽짜리 책이 아닙니다. 사진 자료까지 곁들여 128쪽으로 자그맣게 엮은 책입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서 한결 속내를 캐내는 이야기를 뽑아 올려야 하는데, 그만 허울을 좋게 꾸미려 하면서 알맹이를 다루는 자리가 아주 줄어들고 맙니다. 이러면서 슈타이켄 목소리보다 최봉림 목소리가 더 높습니다.
이를테면, 슈타이켄이 바라보는 사진과 사진길과 사진쟁이와 사진누리 들을 날카롭게 잡아채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슈타이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이렇게 말했다’ 하는 마주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아 몹시 아쉽습니다. ‘슈타이켄은 사진쟁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이와 같이 말했다’ 하는 마주이야기 또한 나타나지 않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스티글리츠의 ‘사진 분리파’가 성취하려 했던 것은 ‘사진 작가’에 의한 ‘예술 사진’, ‘예술 사진’을 위한 ‘사진 작가’, 사진작가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사진이었습니다(31쪽).” 하는 이야기처럼, 슈타이켄 이야기보다 스티글리츠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차지합니다. 이런 마주이야기라면 아흔네 살까지 잘 살았다는 안부인사가 아니라, 슈타이켄 어린 나날 이야기를 여쭙고, 어린 나날 어떠한 터전에서 무엇을 누리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마음을 살찌웠는가 귀기울여 들으며, 사진과 삶과 문화와 사람을 슈타이켄 님 나름대로 어떻게 배우며 받아들였는가를 아로새겨 주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주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최봉림 님은 굳이 슈타이켄 님 입을 빌어 “만족했지요. 돈, 명예, 그리고 권력은 언제나 내 편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사진가’는 아니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진가라고 말하는 것이 옳았을 겁니다(103쪽).” 하는 말을 끄집어 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끄집어 내면서도 책을 통틀어 ‘왜 슈타이켄이 온누리에서 널리 우러르는 사진쟁이’인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도 끄집어 내지 못했습니다. 128쪽짜리 책에서 103쪽까지 이루어진 마주이야기 내내 ‘슈타이켄이 이룬 열매’와 ‘슈타이켄 발자취와 이 발자취 비평’을 이야기하는 데에 쏠립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마주이야기를 이토록 따분하게 엮으면서 온갖 지식과 정보만을 담으려 한다면, 차라리 마주이야기가 아닌 ‘슈타이켄 사진론 비평’이라는 이름을 붙여 정식으로 사진비평책을 낼 노릇이라고. 평전을 쓰든 비평책을 내든 ‘주관이 아닌 객관’이라는 자리에 튼튼히 서면서 더욱 낱낱이 따지거나 파헤치는 비평책을 써야 한다고. 슈타이켄 님이 일군 사진을 1부에 넣고 슈타이켄 님이 빚은 사진잔치를 2부에 넣으며 슈타이켄 님이 가르친 사진쟁이 이야기를 3부에 넣은 다음 슈타이켄 님과 스티글리츠 님이 맺은 사진삶을 4부에 넣으면서 5부에 이르러 ‘슈타이켄 종합 비평’을 하는 정식 이론책을 내놓아야 비로소 읽을 만한 사진책 하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라는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국도 밥도 죽도 아닙니다. 게다가 책이름에 적바림한 “성공신화의 셔터”라는 이야기조차 풀어내지 못합니다. 왜, 얼마나, 무엇을, 어떻게 ‘성공하여 신화를 이루었는지’ 밝히지 못합니다. (4343.10.26.불.ㅎㄲㅅㄱ)
- 에드워드 슈타이켄, 성공신화의 셔터를 누르다 (최봉림 글,디자인하우스,2000.6.15./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