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책 읽히기 2


 아이한테 책을 읽힙니다. 책을 읽어 주다가 그만 숨이 막힙니다. 글 몇 줄이 고작인 그림책에 적힌 글월이 하나같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어쩜 이 한두 줄조차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마구 써갈기는지 궁금합니다. 창작이든 번역이든 골이 아픕니다. 낱말 하나 이렇게 못 고르는지 슬픕니다. 말투 하나 이렇게 못 가다듬는지 괴롭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며 책에 적힌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읽습니다. 책에 적힌 글을 그때그때 다듬거나 고쳐서 새로 읽습니다. 엉터리 말투는 바로잡고 얄궂은 낱말은 손질해서 읽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마저도 고달파 아예 글은 집어치웁니다. 그림만 놓고 새 이야기를 짜서 들려줍니다. 이럴 바에는 한글로 된 그림책이 아닌 외국말로 된 그림책을 읽힐 때가 차라리 낫습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히다가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아이한테 읽힐 만한 괜찮다 싶은 그림책은 하나같이 ‘나라밖 좋은 그림책 번역’이기 일쑤입니다. ‘나라안 좋은 그림책 창작’은 몇 가지 손꼽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무슨무슨 모임에서 손꼽는 괜찮다 싶은 책일지라도 그림결이라든지 줄거리라든지 말마디라든지 티와 모자람과 아쉬움이 자꾸자꾸 보입니다. 나라밖 좋은 그림책처럼 부드러우면서 따사로운 얼과 넉넉하면서 사랑스러운 넋을 나라안 창작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할까 망설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한테 책을 읽히기 어렵지 않나 싶어 근심스럽습니다. 문득, 아이 엄마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아이한테는 좋은 ‘책 읽히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골로 옮겨서 지내는 살림집은 씻는방이 너무 작아 아이랑 함께 들어가서 빨래를 하지 못합니다. 조금 넉넉하게 크다면 아빠가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는 곁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빨래하기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에서 지낼 때에는 씻는방이 꽤 넓어 아이는 언제나 아빠 곁에서 빨래하기를 보고 배우며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아이는 아빠하고 엄마랑 헌책방마실을 함께하면서 책읽기를 스스로 익히고, 아빠하고 엄마랑 골목마실을 함께하면서 사진찍기를 저절로 배웁니다. 집에서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닦는 동안 아이는 빗자루와 걸레로 쓸고닦기를 익힙니다. 집에서 엄마하고 아빠랑 밥을 하면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며 배우고 싶어 합니다.

 아이한테는 책을 읽힌다기보다 삶을 읽힌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처음 낳을 때부터 아이가 스물일곱 달을 지나는 요즈막까지, 아이한테는 ‘책 읽히기’가 아닌 ‘삶 읽히기’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인 저로서는 ‘책읽기’가 아닌 ‘삶읽기’라고 느낍니다. 삶이 있어야 죽이든 밥이든 있습니다. (4343.1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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