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는 마음


 하루하루 고단합니다. 괴롭다고까지 느낍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내어 새로운 하루하루 맞이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단할 줄 알았으면 이렇게 살아가려 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하루 고단하기 때문에 괴로우면서 고맙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밤마다 새벽마다 몇 차례 깨어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도, 속으로 ‘힘들다, 힘들구나, 힘드네.’ 하고 노래하면서도, 참 이 고달픈 나날을 잇습니다. 왜냐하면 이토록 고단하여 지치는 나날을 보내며 늘 어머니가 떠오르거든요. 예전에는 머리로 뭉뚱그리는 어머니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몸으로, 아니 뼈로 사무치는 어머니 생각입니다.

 어머니하고 깊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하고 두루 이야기를 나누어 본 일 또한 없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 아들하고 느긋하게 이야기꽃을 피워 보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예순 나이를 넘었고 어머니는 어느새 예순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예순을 맞이하여 예순잔치를 치러 주어야 하는 줄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조차 까맣게 잊으며 아이랑 부대끼는 하루하루를 마감하던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어머니 나이 서른여섯’에 ‘어머니 나이 서른’에 ‘어머니 나이 스물다섯’에 어떤 마음 어떤 삶이었을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낳아 기른 어머니인, 나한테는 할머니인 분이 서른여섯이고 서른이고 스물다섯이었을 적에는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아마 1920년대였을까요. 아버지 쪽 할머니 얼굴은 알지만 어머니 쪽 할머니 얼굴은 모릅니다. 뵌 일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쪽 어머인 내 할머니 1920년대 무렵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무렵 할머니들이 넉넉한 살림이었든 가난한 살림이었든 어떻게 지내며 꽃답고 푸른 날을 보내셨을는지 궁금합니다.

 나한테 할머니인 분을 낳아 기른 어머니라면 1800년대 삶이겠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할머니들, 그러니까 그때로서는 여느 어머니요 여느 색시인 분들 삶을 헤아리며 내 오늘 삶을 돌아봅니다. 나로서는 힘들다 여기지만 참말 나는 내 삶이 힘들다 여길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참으로 나는 내 삶을 힘들다고 생각할 만큼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슬픈지 깨달아야 합니다.

 엊저녁 책 하나 몇 줄이나마 읽으려다가 그만둡니다. 도무지 힘에 겨워 책을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사 놓고 못 읽으며 책상맡에 쌓아 둔 책들이 상자로 몇이나 됩니다. 흔히 ‘아기다리고기다리’라 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야일야》(동서문화사) 1960년대 번역책을 드디어 지난 9월에 장만했습니다. 책꽂이를 꾸민다든지 나중에 비싼값에 되팔려는 속셈으로 산 책이 아닙니다. 저는 장사할 마음으로 옛책을 사 모으지 않습니다. 옛책이든 새책이든 읽으려고 살 뿐입니다. 《천야일야(千夜一夜)》 또한 요즈음 번역(1992년 범우사 판)으로 읽어 보았는데(고등학생 때), 1960년대에 갓 옮겨진 책에는 어떠한 말씨와 말느낌으로 되어 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파 애타게 찾았어요. 그러나 1960년대 ‘첫 완역’이라 할 《천야일야》인 탓에 한 질을 모두 갖추자면 꽤 큰 목돈을 들여야 합니다. 가난한 글쟁이 살림돈으로는 도무지 장만하기 힘들겠다고 느끼며 두 손을 들며 지냈는데, 뜻밖에 몹시 싸게 파는 헌책방이 있어, 이곳 일꾼이 부르던 2만 원에 2만 원을 더 얹어서 장만했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한 권에 2만 원씩 팔기도 하지만, 속싸개 종이까지 아주 정갈하게 남아 있을 때에 2만 원이고, 속싸개가 없고 첫판이 아니면 1만 원이나 밑으로 파니까, 나로서는 적어도 한 권에 5천 원씩은 쳐야 내 마음이 받아들여 주니 여덟 권을 이만 원에 가져갈 수는 없고 4만 원은 치러야겠습니다.’ 하는 말씀을 건네며 사들였어요. 그러나 이 고맙고 애틋한 《천야일야》는 아직 건드리지조차 못하고 쌓여 있습니다.

 그나마 어제부터 《초원의 집》 1권을 읽습니다. 올 2010년 3월 23일에 아홉 권 한 질을 마련했으면서 10월이 될 때까지 1권 한 쪽조차 못 넘기며 살았습니다. 다른 읽을거리가 많다는 소리는 핑계이고, 인천에서 꾸리던 도서관을 시골로 옮기려고 책을 싸느니 집을 알아보느니 뭐를 하느니 하는 소리 또한 핑계입니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없어요. 바쁘고 힘들더라도 읽어야 할 아름다운 책은 읽어야 합니다. 바쁘고 힘들더라도 사랑스러운 살붙이하고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아야 할 노릇입니다.

 모든 책은 밥입니다. 모든 글은 삶입니다. 모든 일은 눈물입니다. 모든 삶은 꽃입니다. 지난겨울에 고마운 벗님한테서 《도둑고양이 연구》라는 그림책 하나 선물로 받았습니다. 2008년에 나왔는데 벌써 판이 끊어진 이 그림책을 기쁘게 선물받은 저는 《PONG PONG》이라는 세 권짜리 만화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만화책 《PONG PONG》은 지지난주까지 열 질쯤 사서 선물했습니다. 나 스스로 읽으며 아주 좋았던 작품인데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터라, 언제나 아주 기꺼이 이 만화책 세 권 한 질을 한꺼번에 사서 선물하곤 합니다. 이 만화책을 내놓은 출판사가 판을 끊지 않는다면 저는 앞으로도 한 질을 통째로 장만하여 선물하는 일을 이을 테고, 앞으로 열 해쯤 이 만화책이 살아남는다면 아마 백 질쯤 더 사서 선물하는 책으로 제 가슴에 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새 만화책은 다 비닐로 싸여 있어 속을 다시 들여다볼 수는 없는데, 만화책 《PONG PONG》을 새로 살 때면 늘 이 만화에 깃든 그림을 하나하나 되돌이킵니다. 어느 대목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무슨 이야기에는 어떤 삶이 깃들었으며, 어떤 삶에는 뭔 눈물이나 웃음이 서렸는지 생각합니다. 책값을 치르고 비닐봉지 한 장 얻어 살포시 담아 가슴에 살짝 안아 본 다음 고마운 분한테 “자, 선물이에요. 즐겁게 읽어 주셔요.” 하고 내어 드릴 때에는 내 가슴에 잠자고 있던 작달만한 씨앗 하나 한들한들 옮겨 간다고 느낍니다.

 글을 읽습니다. 날마다 아이랑 치르는 고단한 삶에서 어머니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고 곱씹는 글을 읽습니다. 책을 손에 쥘 기운마저 없어 그예 폭삭 자빠져 잠들어 버리는 밤나절 내가 이날까지 걸어온 길은 무언가 하고 되새기는 글을 읽습니다. 새벽에 아이 오줌 기저귀를 갈아 대야에 담가 놓고 이듬날 빨래할 생각을 하며 깨어나 글 몇 줄 끄적이면서 오늘 아이랑 함께 읽을 그림책이며, 살짝이나마 아빠 가난한 마음을 일깨울 좋은 글책에 담겨 있을 알맹이란 무엇인가 기다리는 글을 읽습니다. (4343.10.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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