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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람 -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을 만나다
이명원 지음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지식인들 수다는 왜 재미없을까
[책읽기 삶읽기 13] 이명원, 《말과 사람》
문학평론을 하는 이명원 님이 지식인이라 할 만한 여섯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책 하나로 묶었다. 이문열, 조정래, 백낙청, 김민수, 김상봉, 김종철, 이렇게 여섯 사람이다. 여섯 사람 발자취를 곰곰이 더듬는다면 틀림없이 이 여섯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따로 한 권씩 책으로 낼 만하다. 모두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며, 늘 숱한 말을 내어놓는 사람이다. 이들이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또는 어중간하게 있든 대수롭지 않다. 어느 쪽에 있거나 스스로 줏대 단단히 세우며 살아가면 된다. 어느 쪽에서 무얼 하든 옳고 바르며 참된 넋으로 착하고 사랑스러우며 곱게 살아간다면 된다.
이명원 님은 문학평론을 하기 때문에 《말과 사람》이라는 책에 실린 여섯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주 마땅하다. 이명원 님으로서는 헌책방 일꾼이라든지, 분식집 아줌마라든지, 시골버스 기사라든지, 농사짓는 할배라든지, 이주노동자 아무개 씨라든지, 제도권 학교를 일찌감치 떠난 아이라든지 만나기 어렵다. 아니, 만날 수야 있으나 이들한테서 깊고 너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거나 고맙게 얻어 듣기는 힘들다.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를 책으로 바지런히 엮는 지승호 님이 있다. 이이는 ‘사람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꽤 여러 권을 엮었다. 참 마땅한 일이다만, 이 나라에는 이와 같은 책이 퍽 드물다. 모든 책이란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인 만큼, 저마다 다 달리 살아왔으나 따로 스스로 내 삶을 글로 쓸 겨를을 못 내는 사람한테서 몇 시간이나 며칠쯤 이야기를 듣는다면 책 한 권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당신 이야기를 책으로 알뜰히 묶지 못해서 그렇지, 어떤 사람이든 당신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놓고 보면 몹시 재미나다. 이름난 사람 이야기이건, 이름 안 난 사람 이야기이건 매한가지이다. 온누리에 이름값을 떨친 적이 없을 뿐더러 이름값 떨칠 일조차 없던 우리 할머니 삶이든 옆집 아줌마 삶이든, 이분들은 하루하루를 견디거나 즐기거나 받아들이면서 눈물과 웃음으로 살아냈다. 이분들이 살아낸 삶이 바로 책이며 ‘감동’이다. 다만, 지승호 님이라든지 이명원 님이 내놓은 책은 제법 이름있거나 꽤 널리 알려진 사람들 삶자락에서 맴돈다.
《말과 사람》이라는 책은 꽤 재미있다. 먼저, 소설쓰는 이문열 님 이야기를 맨 앞에 실어 더욱 재미있다. 《말과 사람》에 실린 이문열 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분이 오롯이 소설쓰기에 온마음 바칠 수 있었다면 노벨상을 노릴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다만, 노릴 수는 있으나 탈 수는 없겠지. 왜냐하면 소설쓰기에만 온마음을 바친다면 소설에 깃드는 글월을 한껏 빛내거나 훨씬 잘 매만질 수야 있다만, 소설이라는 문학에 담는 줄거리에서 밑바탕이 될 ‘글쓴이 삶’은 한껏 북돋우거나 훨씬 아름다이 여밀 수 없으니까. 글만 잘 쓴다 해서 소설이 아니다. 글솜씨 빼어나고 짜임새 대단하며 줄거리 돋보인다 해서 문학이 아니다.
그런데, 《말과 사람》이라는 책이 더 재미있으려면 어슷비슷한(?) 사람들을 여섯 만나기보다, 아주 다른 자리에서 사뭇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을 여섯 만났어야 하지 않느냐 싶다. 아니면, 아예 한 갈래 지식인들만 만나든지.
《말과 사람》에 실린 여섯 사람 삶을 헤아려 본다. 이분들 삶은 그리 안 다르다 할 수 있다. 한통속으로(?) 묶을 만하니 이렇게 여섯 사람 이야기를 그러모을 수 있다. 또한, 엮은이 이명원 님 삶이 이 여섯 사람하고 비슷하게 흐르니까 이들 여섯 사람을 만날밖에 없기도 하다. 잡지 〈녹색평론〉을 내는 김종철 님은 ‘한국땅에서 변두리라는(?) 대구’를 떠나 아예 서울로 옮겼는데, 이 책을 낼 무렵에는 아직 대구를 송두리째 버리지는 않고 서울에서 오래 머물며 책을 만들었다. 이명원 님은 김종철 님 같은 사람이라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갔음직한데 외려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오니 아리송하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이다. 김종철 님은 “몸이 편안해지자 자기도 모르게 생각들도 작아지고, 왜소해지는 것이다 … 우리 문학을 보면 결국 땅에서 멀어지니까 야생의 정신이랄까 하는 게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다(218, 219쪽).” 하고 말한다. 김종철 님은 다른 지식인을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으나, 나로서는 김종철 님 당신 삶이 이와 같다는 소리가 아닌가 하고 느낀다. 왜 김종철 님 같은 분이 스스로 땅하고 더 가까와지고자 하지 않는가. 왜 이 땅에 두 다리 튼튼하게 박으려 하지 못할까.
교수 자리에서 쫓겨난 김민수 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이명원 님은 “해직이 되고 보니 그동안 피상적으로 사회를 읽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121쪽).”고 말한다. 이는 김민수 님도 매한가지이다. 교수 자리에서 쫓겨나 강단이라는 울타리가 아닌 ‘수수한 여느 사람들 자리’를 밟으며 돌아다닐 겨를이 나면서(강의를 할 수 없어 생긴 말미) 이 나라를 더 깊이 보거나 더 널리 살필 수 있었단다. 다만, 김민수 님이나 이명원 님이나 ‘겉훑기로 이 나라를 보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뉘우치기까지는 하지 못한다. 부끄러워 하거나 남우세스럽다 여기지 못한다.
조금 더 시금털털할 수는 없는가. 조정래 님은 “보수 세력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무능 때문에 기득권을 회복하고 있다(48쪽).”고 말한다. 맞는 말이며 옳은 소리이다. 진보 세력이든 개혁 세력이든, 또는 열린 마음이나 깨친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든, 나 스스로 참다웁고 착하며 고운 삶을 일구어야 한다. 참다웁고 착하며 곱게 살아가며 이러한 삶을 글로 담고 책으로 엮을 노릇이다. 처세와 돈굴리기를 다룬 책이 참말 잘 팔리는 흐름을 슬퍼하기 앞서, 사람들이 즐거이 읽을 글을 담은 책을 내놓을 일이다. 이명원 님은 여섯 지식인과 만나서 들은 이야기로 당신 깜냥을 가다듬거나 북돋았구나 싶은데, 이렇게 주워듣기로만 책을 엮어서는 널리 읽자고 건넬 만큼 깊거나 너른 책이 되기는 힘들다.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나를 더 낮추거나 더 드러내야 한다. 내 목소리를 아예 지우거나 내 목소리를 훨씬 키워야 한다. 스승한테서 배운다는 매무새로 이야기를 듣거나, 동네 깡패한테 뜨거운 맛 좀 보여주겠다는 몸가짐으로 타일러야 한다. 여러모로 재미있다 싶을 짜임새이며 이야기책이 될 만한 《말과 사람》이지만 적잖이 어중간한 자리에서 머물고 만다. 아직 이명원 님한테는 ‘글읽기’가 익숙하고 ‘삶읽기’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지식인이 끄적여 내놓는 글은 읽더라도 지식인이 살아가며 몸으로 보여주는 삶은 읽지 못하는 탓인지 모른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어차피 이렇게 우리 사회 지식인 생각을 귀담아듣는 이야기책을 엮으려 했다면 ‘남자 지식인’ 여섯을 따로 하나, ‘여자 지식인’ 여섯을 따로 하나 묶으면 어떠했으랴 싶다. 그런데, 지식인이라 하면 남자이든 여자이든 엇비슷할는지 모르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지식인이라는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않으니까. 나는 지식인보다는 ‘살림꾼(생활인)’이 좋은데, 살림꾼을 만나 이야기를 즐거이 들으며 찬찬히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기는 몹시 어렵다. 이를테면 만화쟁이 장차현실 님 같은 분하고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남다르며 재미날까. 애를 둘 키운 공선옥 님 같은 분하고 만나 삶을 나누었다면 얼마나 새삼스러우며 맛깔스러웠을까. (4343.10.19.불.ㅎㄲㅅㄱ)
― 말과 사람 (이명원 엮음,이매진 펴냄,2008.11.24./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