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해서 우리 말글 이야기를 하나 더 걸쳐 놓는다. '말'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이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헤아리리라 믿지 못한다. 말 이야기를 놓고 보면 한국사람은 모조리 엉터리이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통째로 멍텅구리이다. 바탕이 될 생각조차 서 있는 사람은 아예 없다 할 만하다.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963) -의 우려 2 : 카슨의 우려대로

.. (레이첼) 카슨의 우려대로 논은 침묵의 땅이 되었다. 귀 따갑게 울어대던 개구리도 종적을 감추었고 ‘뜸북, 뜸북’ 하며 논에서 울던 뜸부기도 〈오빠 생각〉만큼이나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  《송명규-후투티를 기다리며》(따님,2010) 138쪽

 ‘우려(憂慮)’는 ‘걱정’이나 ‘근심’으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만, 우리 말과 글을 옳게 가누는 분이 나날이 줄어 ‘걱정’이든 ‘근심’이든 ‘끌탕’이든 알뜰살뜰 가누어 내놓은 글을 읽기란 몹시 힘듭니다. “침묵(沈默)의 무엇”이라는 말투는 우리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다운 말투를 헤아려야 합니다. 이 자리에 나오는 ‘침묵의’는 ‘소리를 잃은’이나 ‘소리가 없는’이나 ‘조용한’쯤으로 다듬습니다. ‘종적(?跡)’은 ‘자취’로 손질하고, ‘과거(過去)’는 ‘옛날’이나 ‘지난날’로 손질해 줍니다.

 ┌ 카슨의 우려대로
 │
 │→ 카슨이 걱정한 대로
 │→ 카슨이 근심한 대로
 └ …


 한 번 입에 익거나 몸에 배면 쉽사리 떨치지 못하는 얄궂은 버릇입니다. 예부터 어른들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괜히 하지 않습니다. 손버릇이든 말버릇이든 어릴 적 익은 대로 어른으로 자랍니다.

 오늘 이 나라 삶터를 헤아리면,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 앞에서 말을 알맞고 바르며 옳게 가누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 앞에서 돈벌이 빼고 아름다운 삶을 일구려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돈을 많이 잘 벌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아이들 또한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비손하는 어른이란 찾아볼 길이 없어요. 착하고 참되며 고운 마음결을 건사하면서 아이들 또한 착하고 참되며 고운 마음결을 사랑하도록 돕는 어른이란 만나기 어렵습니다.

 참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이들 말이 엉터리라면 어른들부터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마땅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아무렇게나 망가뜨리며 쓴다면 어른들부터 말을 함부러 망가뜨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그녀’라는 말을 신나게 써대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조차 ‘그녀’라는 말을 쓸 뿐 아니라, 너덧 살짜리 어린이마저 ‘그녀’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과 꾸리는 삶을 송두리째 쏙쏙 잘 빨아들입니다.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으레 좋은 모습을 빨아들이고, 궂은 모습으로 지내는 어른이라면 궂은 모습을 빨아들입니다.

 ┌ 논은 침묵의 땅이 되었다
 │
 │→ 논은 조용한 땅이 되었다
 │→ 논은 고요한 땅이 되었다
 │→ 논은 소리없는 땅이 되었다
 │→ 논은 죽은 땅이 되었다
 └ …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른이라면 누구보다 어른 내 삶을 걱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겠다는 어른이라면 누구보다 어른 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말을 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을 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나누며 살아가는 대로 믿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고운 삶보다 돈있는 삶을 바라니까 농사짓는 이들이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써댈밖에 없어요. 사람들 스스로 좋은 삶보다는 돈되는 삶을 꿈꾸니까 식량자급율이 30%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무늬만 국산’이면서 ‘게다가 아주 싼값으로’ 사먹어야 하는 줄 잘못 압니다.

 아름답지 못한 나라에서 아름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한국사람이기에, 이와 같은 한국사람이 말이나 글을 아름답게 펼치리라고는 바랄 수 없습니다. 정치나 교육이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입방아로는 이루지 못합니다. 오로지 내가 선 자리에서 내 나름대로 내 땀을 흘리는 만큼 이루는 정치요 교육이요 사회요 경제요 문화입니다. (4343.10.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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