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문학이 있는 삶자리
: 박상률,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책이름 :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글쓴이 : 박상률
- 펴낸곳 : 사계절 (2006.4.15.)
- 책값 : 8500원
(1) 배추값
한 해 두 해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아니, 굳이 알아야 할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누리에서 시끌벅쩍 떠드는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느는 한편, 이웃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늘어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는 동안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거나 인터넷을 뒤적일 일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돌아볼 겨를이란 없고, 산골자락 바깥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굳이 눈길을 둘 틈을 마련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식구들 살아가는 일산집에 모처럼 마실을 가서 함께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 텔레비전은 스물네 시간 내내 쉴 겨를을 주지 않고 볼거리를 베풉니다. 그야말로 스물네 시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합니다. 옆에 앉은 사람하고 말을 섞을 일이 없고, 밥술을 뜨면서 이 밥술에 얹힌 밥이나 반찬을 마련하고자 어머님이 얼마나 애쓰고 품을 들였는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저 화면에 눈이 꽂힐 뿐입니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개혁이든 수구이든 무어이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갖가지 지식과 정보가 넘실넘실합니다. 사람들 입맛에 맞추어 재미나게 이야기하자면 연속극이나 영화나 운동경기 이야기를 들어 빗댈 노릇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통령 자리에 앉은 분이 ‘배추값이 비싸면 양배추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대목을 꼬투리 잡으며 겨우 ‘푸성귀 값이 올랐음’을 들먹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농사짓는 사람한테는 ‘껑충 오른 푸성귀 값에 걸맞게 땅을 부치며 땀을 흘린 보람을 얻었는지 못 얻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푸성귀 값이 쌌을 때이든 비쌀 때이든 농사꾼 살림살이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값이 쌀 때에는 싼 대로 등허리가 휘고, 값이 오를 때에는 오르는 대로 힘겹습니다. 왜냐하면 푸성귀 값이 오를 때에는 어디에서나 농사가 엉망이 되었을 때이니 값이 제아무리 올랐다 한들 얼마나 내다 팔 수 있겠습니까. 값이 쌀 때이든 비쌀 때이든 노상 ‘샛장수’ 노릇을 하는 농협이나 할인매장에서만 돈을 법니다.
배추값 얘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은 조금도 비싸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배추씨를 심어 길러 보면 배추 한 포기 값으로 얼마를 쳐야 하는가를 어렵잖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소담스레 자라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이동안 얼마만 한 땅에 배추를 심으며 물과 거름은 어떻게 주고 벌레는 언제 잡으며 김은 어느 만큼 매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심은 배추씨가 모두 싹이 트는지를 헤아려야 하고, 농사짓는 동안 들인 품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애호박 하나에 1800원도 하고 2500원도 하며 3000원도 합니다. 얼마 앞서까지는 애호박 셋에 1000원도 했습니다. 참 오르락내리락입니다. 그런데 2000년에는 애호박 값이 얼마였나요. 1990년과 1980년에는 또 애호박 값이 얼마였지요. 배추는 2000년에 얼마였고 1990년과 1980년에 얼마였을까요. 1980년과 1990년과 2000년에 버스삯은 얼마에서 얼마로 올랐고, 여느 일터 일꾼 일삯은 이동안 어느 만큼 올랐는지요. 기름값은 얼마에서 얼마가 되었고, 자동차 한 대 값은 얼마에서 얼마나 되었습니까. 전세집이든 달삯집이든 얼마를 치러야 네 식구 살림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요. 지난 스무 해에 걸쳐 쌀값은 어떠한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파 한 묶음 값, 무 한 뿌리 값, 양파 한 알 값이란 지난 스무 해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 너는 난리통에 변을 당했다. 난리통, 난리통이었다. 8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 거대한 도시가 열흘 간이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고, 전쟁도 아닌데 군인들이 완전무장한 장갑차를 앞세워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칼로 쑤시고 곤봉으로 내리쳤다면 분명 난리통은 난리통이었다 … 그것도 햇살 좋고 바람 좋고 하늘 빛깔까지 고운 5월에 .. (52∼53쪽)
초등학교를 다니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건, 오늘날 한국땅에서 도시에 살거나 시골에 살거나 농사일을 어느 만큼 거든다거나 헤아리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 어버이가 농사를 짓더라도 농사일에 눈길이나 마음길을 쏟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몹시 드뭅니다. 농사일을 못 거든다 하여도 농사를 해서 얻는 곡식과 푸성귀 값이 얼마쯤 하는가를 살피는 어린이나 푸름이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은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교과서와 제도권교육과 인터넷과 방송과 대학입시 들로 쏟아부으니까요. 아이들 스스로 제 넋을 차릴 수 없게끔 머리속을 갖가지 지식과 정보로 꽉꽉 채워 넣으니까요. 숱한 지식과 정보에 가로막혀 내 삶과 내 이웃 삶과 내 동무 삶을 돌아볼 줄 모르니까요.
수학능력시험 문제로 안 나오는 과목은 아예 안 배워도 괜찮다고 여기도록 이끄는 교육 행정입니다. 정치권력은 정치권력대로 아이들을 더 바보가 되도록 닦달하고, 머리통만 굵은 멍청이가 되도록 내몹니다. 스스로 진보라 밝히든 보수라 밝히든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아가도록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밥하기 한 번 시키는 어버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 스스로 마땅히 개도록 가르치거나 몸소 보여주는 어버이란 만나기 어려우며, 아이들이 먹는 온갖 먹을거리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고 손질하여 밥상에 오르는지를 들려주는 어버이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배추 한 포기는 값이 얼마여야 알맞을까?’를 생각하도록 이끌지 못하면서, 아이들 또한 바보스러운 어른과 마찬가지로 ‘배추값이 너무 비싸!’ 하고 생각하도록 내몰고 맙니다.
(2) 사람값
볼일을 보러 읍내로 자전거나 시골버스를 타고 찾아가 보면, 읍내 중고등학교 아이들 치마가 참 짧습니다. 인천에 살던 때에는 인천 아이들 치마는 엉덩이와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도록 하며 그리 짧지 않고, 서울 아이들은 살짝 나폴거리며 짧았는데 시골 아이들 치마는 서울 아이들보다 훨씬 짧습니다. 인천이나 서울이나 시골 사내아이 바지나 웃도리는 제 눈으로는 퍽 우스꽝스럽습니다. 키 훤칠하고 얼굴 갸름하며 뚱뚱한 몸집 거의 없이 좀 마르다 싶은 아이들한테 걸맞을 옷을 제대로 입은 아이들을 만나기 참 힘듭니다.
똑같이 맞춰서 입히는 학교옷이기에 다 다른 아이들 몸에 알맞도록 입히는 옷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제 몸이 어떠한가를 옳게 헤아리지 못하며, 제 몸에 알맞을 옷을 옳게 가누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푸름이들이 얼굴차림하고 옷차림에 눈길을 많이 둘밖에 없는데에도 이렇습니다. 학교옷이란 하나같이 칙칙한 빛깔에 우중충한 느낌이요, 한껏 푸르게 피어날 넋을 고우며 맑게 어루만지지 못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이와 같기 때문일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생각하고 힘껏 뛰놀며 재주껏 꿈을 키우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이들을 ‘제복과 머리길이 굴레’에 가두어 놓고는 이 굴레에서 부처님 손바닥 손오공처럼만 바둥거리도록 붙잡기 때문인지요.
.. 가서 보니 학생이 가르쳐 준 곳은 대학 본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에게 야간대학, 아니 이부대학 건물을 물었다. 젊은이는 월산댁을 한 번 훑어보더니 이부대학이 어디 있는지 일러 주었다. 월산댁은 젊은이가 훑어보는 게 마땅찮았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옷은 매끄롬하게 차려입었음시롱, 젊은것이 버르장머리는 디럽게 없네잉. 뭐 잠 물어 보면 보드랍게 갈쳐 주면 안 되는 것이여?’ .. (83쪽)
중학교는 왜 중학교이고 고등학교는 왜 고등학교인지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갈라 놓는 까닭을 알 길이 없습니다. 교과서를 엮으며 학교에 몸담으며 교과서를 가르치는 어른은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과 사귀거나 어울리는지 궁금합니다. 바깥에는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데,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시멘트 교실에 왜 아이들을 잔뜩 몰아넣고는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대놓고 책상에 엎어져 자도록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볕 좋은 날 골목마실을 하면서 언제나 느낍니다. 이 좋은 볕을 듬뿍 받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우는 동네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볕이 좋든 말든 동네 푸름이들은 후미진 골목을 찾아 담배 피우기에 바쁩니다. 아이들로서는 후미진 골목일 테지만, 저 같은 사람으로서는 골목 할매와 할배가 어여삐 꽃그릇 마련하거나 텃밭을 일구며 푸른빛이 살아숨쉬도록 마련한 쉼터입니다. 아이들은 꽃을 보면서 꽃이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예쁘다거나 남다르게 생겼다거나 이름이 궁금하다거나 느끼지 않습니다. 꽃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꽃이 몇 송이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깨닫지 않습니다.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 태우는 푸름이들 얘기를 했습니다만, 푸름이들만 이와 같지 않습니다. 어른도 매한가지입니다. 틀림없이 어른들 매무새 그대로 푸름이들이 따릅니다. 어김없이 어른들 몸짓 그대로 푸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은 한길에서 담배 뻑뻑 피우며 걷다가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담배 빡빡 피우며 구시렁거리다가 할매 할배가 아리땁게 가꾼 꽃그릇이나 텃밭에 아무렇지 않게 꽁초를 버립니다.
아이들 서넛쯤일 때에는 골목마실을 하는 저를 슬금슬금 곁눈질을 하며 다른 데로 내뺍니다. 대여섯쯤이거나 예닐곱을 넘으면 버젓이 드러내고 담배공장을 차립니다. 끼리끼리 놀 뿐 아니라 힘여린 이를 무리지어 괴롭히는 어른들 슬픈 얼굴을 아이들 몸가짐에서 낱낱이 느낍니다. 이 아이들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머리길이를 짧게 다그치고 물을 못 들이도록 하며 수염은 하얗게 밀도록 닦달하면서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못 피우게 꽁꽁 옥죄어 놓는들, 기껏 열여덟이나 열아홉까지입니다. 열아홉이 되고 스물이 되면 그야말로 깽판이며 막놀이판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고, ‘공부를 조금 더 했다’는 아이들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간다는데, 대학생들 술담배 사랑놀이 하며 노는 짓과 이름있다는 대학교 앞 술집거리 엉망진창 꼬락서니를 보면 이 나라 제도권 교육이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해대는지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을 사람답게 가르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사람다운 길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아이들한테 사람답고 아름다운 삶을 깨닫도록 안 하는 안타까운 곳을 가리켜 배움터라 할 수는 없다고 늘 느낍니다.
(3) 아이들한테 역사를 보여주는 문학
어린이문학을 하는 박상률 님이 쓴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을 읽습니다. 어른문학에서는 곧잘 다루지만 어린이문학에서는 좀처럼 못 다루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낸 책입니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1980년 5월 광주를 들려주는데, 피가 튀거나 곤봉이 춤추는 이야기는 하나도 깃들지 않으나 눈에 그리듯 이와 같은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법 읽거나 아는 어른으로서 ‘눈에 그리듯 떠올릴’ 뿐입니다.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모르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아로새길 수 있을는지요. 책을 덮으며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정해천 씀,일과놀이 펴냄,1994)이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아직 《달맞이 언덕에 뜨는 달》처럼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풀어낸 고운 책을 찾기란 어렵지만, 1980년 5월 광주뿐 아니라 숱한 다른 이 나라 삶자락 이야기를 이 책만큼 알뜰히 다룬 책 또한 찾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또한 옳게 풀어내지 못하며, 1970년 11월 청계천 이야기도 참다이 풀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2002년 미선이와 효순이 이야기를 살뜰히 풀어내지 못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밖에서 나라밖 역사를 알뜰살뜰 풀어낸 이야기책은 신나게 옮기기는 하는데, 나라안에서 나라안 역사를 한 올 두 올 다잡거나 다스리는 이야기책은 열 해에 한 권조차 못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 “근데 대통령은 할아버지가 다 되어 가지고도 배우고 가수고 맘에 드는 여자 있으면 불러다가 같이 술 마시고 데리고 놀아도 되는 거야? 우리 같은 젊은 청춘들은 여학생하고 어울려 극장에도 못 가게 하면서?” “히! 그런다고 네가 여학생하고 극장 안 갔냐? 몰래 할 건 다 했으면서 뭘 그래.” .. (97쪽)
어린이하고든 푸름이하고든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비롯해 이 나라 여느 자리 여느 삶터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기란 퍽 어렵습니다. 고속철도 여승무원 이야기라든지 천성산과 낙동강 지율 스님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오붓이 나눌 수 있는가요. 골목동네를 허물며 아파트만 올려대면서 ‘가난하다지만 가난하다 여기지 않고 알뜰살뜰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오늘날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얼마나 살가이 주고받을 수 있는지요.
다시금 생각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랑 푸름이하고만 못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여느 어른하고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교장선생님들은, 구청장님들은, 시의원님들은, 산부인과 의사님이나 국정 변호사님들은 …… 우리 둘레 낮은 자리 낮은 사람들 삶을 어느 만큼 가까이 다가서거나 어깨동무하면서 마주하고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기자님들은, 작가님들은, 학자님들은, 교수님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님들은 …… 얼마나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사랑하며 가난한 사람들하고 손을 맞잡으며 울고 웃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하나만을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터전이 한결 아름다울 때라야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또한 한결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한국땅 사람들 삶이 한껏 아름다이 거듭날 때라야 1980년 5월 광주를 비롯하여 이 땅 아픔과 생채기와 눈물과 얼룩을 살포시 담아낼 빛나는 문학이 태어납니다.
문학은 대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을 뿐더러 어떤 글쟁이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문학은 바로 우리 삶터에서 여느 어버이들이 여느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으며, 여느 살림집에서 여느 아이가 여느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4343.10.5.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