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알리야 모건스턴 지음, 최윤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딸도 바보 엄마도 바보, 그런데 삶이 온통 바보
[책읽기 삶읽기 2] 수지 모르겐스턴+알리야 모르겐스턴,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웅진지식하우스,1997)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를 읽다. 1997년에 처음 나온 책이 2010년에 새 옷을 입고 다시 나왔다. 나는 1997년 판으로 읽었다.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긴 이는 프랑스 어린이책을 우리 말로 무척 많이 옮긴 분. 이분이 옮긴 어린이책에서도 번역이 썩 정갈하다거나 알맞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에서도 번역은 그리 내키지 않는다. 딸 말투와 어머니 말투를 잘 살렸다고 느끼지 못한다. 더욱이 어머니와 딸이 그때그때 쉴새없이 바뀌는 마음자리를 나타낸다거나 줄줄줄 늘어뜨리는 마음앓이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말투로 담아내지 못한다. 더 따스하면서 한결 부드러이 적바림하는 번역을 만나는 일이란 한낱 꿈일까.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를 처음 집을 때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이름은 반편이일밖에 없다고 느낀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되지만, 엄마 또한 딸이었다. 책이름은 엄마가 바라보는 딸 모습이지, 딸이 바라보는 엄마 모습이 아니다. 새로 나온 이 책 겉에 붙은 띠종이에는 “울어 봤어? 엄마 때문에…”라는 말이 적혀 있고 “세상 모든 소녀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울어 봤니? 딸 때문에.’라든지 ‘온누리 모든 어머니가 어버이가 되자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말은 붙지 않는다. 굳이 안 붙여도 될는지 모른다만, 딸을 낳은 어머니라는 이 땅 사람들은 처음 딸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오롯한 한 사람으로 크도록 옳고 바르며 참다이 삶을 배운 적이 거의 없음을 살펴야 한다. 어머니 된 사람이 딸 마음을 읽지 못할 뿐 아니라 당신 딸이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까닭은 딸한테도 당신한테도 아쉬움이 있을 텐데, 이보다 어머니 된 당신이 어린 나날부터 당신 어버이한테서 제대로 삶을 배우며 느긋하며 넉넉하고 따사롭게 살 수 있도록 너그러운 삶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슬프고 아픈 굴레를 당신 스스로 당신 딸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은 “식구들과 얼굴 맞대고 얘기를 나눌 시간도 없다(22쪽).”, “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26쪽).”,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31쪽).”, “나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서러워서 운다(57쪽).”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어머니이고 딸이고 이와 같이 막혀 있는 집안 삶을 풀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참 바쁘다. 무엇 때문인지 알 겨를이 없으나, 모두들 그지없이 바쁘다.
“집이고 학교고 다 정해진 리듬에 의해서 돌아간다. 모든 게 의무적이다(41쪽).” 같은 딸아이 외침을 읽을 무렵에는 이 책을 굳이 끝까지 들출 까닭이 없다고 깨닫는다. 어쩌면 풀이법은 바로 이 대목에 나와 있으니까. 그래도 구태여 끝까지 책을 읽고는 이 책을 집어던진다. 어머니이든 딸이든 서로가 서로를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으면서 기껏 하는 말이란 “그래도 난 이 세상 딸들을 다 준다 해도 어떤 딸과도 내 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173쪽).”하고 “우리는 계속 말다툼을 해댈 것이며,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부딪칠 것이다(177쪽).” 같은 이야기이다. 책 한 권을 통틀어 서로가 서로를 마음읽기 한 적이 없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말을 맨 마지막에 ‘가르침(교훈)’처럼 집어넣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흔하디흔한 연속극하고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토록 흔하디흔하다는 연속극을 보는 사람이란 대단히 많다. 줄거리가 뻔하며 마무리 또한 뻔한 줄 안다지만 연속극을 보는 사람은 몹시 많으며, 뻔한 연속극을 보며 으레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터뜨린다.
오늘날 도시사람들로서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뻔하다’ 외고 또 외더라도 연속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으로 가득해 버린 이 나라에서는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같은 책이 널리 받아들여지며 읽힐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모두들 ‘참으로 바쁘게 살며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끼리 오붓하고 넉넉하게 이야기꽃 피우는 삶’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살붙이끼리 마음읽기를 하는 이야기꽃 한마당을 마련하지 못하는데 어떡하겠는가. 제아무리 아름답다 하거나 놀랍다 하는 영화나 책보다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끼리 주고받는 이야기꽃 한마당처럼 아름답거나 놀라울 수 없다. 제아무리 많은 돈과 높은 이름과 대단한 힘이라 할지라도 참답고 착하며 고운 사랑과 믿음보다 반가울 수 없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살거나 도시 둘레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은 돈을 더 많이 더욱 빨리 벌어야 한다. 자가용을 더 빨리 몰아야 하고 기차이든 버스이든 건널목 신호쯤이야 쉽게 어기며 훨씬 빨리 달려야 하고 산에도 굴을 내고 냇물에는 다리를 놓으며 마구마구 달려야 한다. 들꽃을 사랑하거나 들새를 아끼거나 들숲을 건사한다는 마음을 품을 틈이 없는 도시 터전이다.
고3 딸아이가 시험성적이나 대학교에 목매달지 않고 딸아이 꿈을 소롯이 간직할 수 있다거나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가 함께 회사일+성공+명성에 발목잡히지 않으며 ‘돈을 왜 벌어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말문이 열리며 마음문을 스스로 연다. 그예 슬픈 얼굴이 담긴 책을 슬픈 줄 모르며 읽는 사람들이 슬프다. (4343.9.21.불.ㅎㄲㅅㄱ)
―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르겐스턴+알리야 모르겐스턴 글,최윤정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펴냄,1997.3.10./9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