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기
하루 두 끼니만 먹는 살림이지만, 두 끼니 밥을 하려면 이만저만 품이 들지 않습니다. 저녁나절 두 끼니째 먹은 다음에 설거지를 하고 치운 뒤에는 이튿날 먹을 쌀을 씻어서 불려 놓아야 합니다. 옆지기하고 둘이서 아이를 보며 저녁때가 되면 지쳐 나가떨어질 만큼 되는데, 고단한 몸에 무거운 다리로 부엌에 가서 쌀과 콩을 꺼내어 씻고 불리자면 얼마나 눈꺼풀이 감기는지. 그렇지만 막상 쌀을 씻고 불린 다음 잠자리에 들면 걱정이 사그라듭니다. 몸이 너무 고단하여 도무지 못 일어나겠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만 깜빡 잊고 곯아떨어질 만큼 힘들다든지 하면,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기 앞서 바지런히 씻어서 불려야 합니다. 밥 한 그릇 먹는 일만 해도 참 이렇구나 싶으나, 아이가 날마다 새로 어지르는 방도 쓸고 닦아야지요, 아직 오줌가리기를 못하니 젖은 옷은 빨고 젖은 바닥은 닦아 말리고 젖은 이불 또한 몇 차례 말리다가는 다시 이불 빨래를 해야지요, 또 자전거를 타고 읍내나 면내에 먹을거리를 장만하러 다녀와야지요, 아이를 씻기고 아이랑 놀고 아이랑 마실을 다니고 해야지요, 이러면서 우리 식구 밥벌이가 될 글과 사진을 만져야지요, 잡지 부쳐 달라는 사람 있으면 책을 싸서 부쳐야지요 …….
꼭 열 해쯤 앞서인가, 어느 시골마을에 일손 거들러 찾아갔을 적에 끼니마다 쌀을 빻아서 까부르며 밥을 지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몸이 깨닫는데, 밥을 해 먹자면, 먼저 벼를 절구에 넣어 절구질을 해서 빻아야 합니다. 또, 벼를 얻자면 한 해 농사를 지어 거두어야 합니다. 낫으로 벼를 베어야 하고, 벤 벼는 털어서 알곡을 갈무리해야 합니다. 처음 모를 심어 놓으면 피사리 몇 번 하고 더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논일이라지만, 모심기를 할 때까지, 또 모심기를 하는 동안, 또 모판을 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하는지요. 게다가 이렇게 논일을 하는 사이에도 밥을 먹어야 하니, 날마다 쉴새없이 벼를 찧고 돌과 부스러기를 훑고 쌀을 씻어서 불린 다음 냄비에 넣고 안쳐야지요. 더욱이 밥만 먹을 수 있는가요. 반찬도 먹으려면 반찬으로 삼을 먹을거리도 손수 마련하든 돈을 치르고 사오든 해야 합니다. 또한, 이 반찬감을 아예 통째로 사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나하나 지지고 볶고 무치고 해서 마련해야 합니다.
아이돌보기 하나로도 하루해가 꼴딱꼴딱하지만, 집 치우기로도 하루가 꼴딱꼴딱하고, 밥하기 하나로도 하루해가 빠듯합니다. 집살림하는 분들, 그러니까 살림꾼들한테는 책읽기란 그야말로 꿈꾸기 어려운 일이 되는데, 책읽기뿐 아니라 사진찍기이든 그림그리기이든 더없이 바라기 어려운 일이곤 합니다. 글 좀 쓰고 싶다는 사람, 사진 좀 찍고 싶다는 사람, 만화나 그림 좀 그리고 싶다는 사람, 노래나 춤 좀 하고 싶다는 사람, 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 정치 좀 하고 싶다는 사람, …… 다들, 무엇보다도 애 낳고 애 키우고 밥하고 빨래하고 쓸고닦고 농사짓고 하는 일부터 치르거나 겪거나 몸소 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농사짓기까지는 몹시 힘들다 한다면, 적어도 밥 빨래 청소 애보기 네 가지만이라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지 싶어요. 그만 이 네 가지조차 못하겠다면, 어여쁜 짝꿍하고 사랑놀이할 생각일랑 아예 말아야지 싶어요. (4343.7.25.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