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지렁이
음성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가서 돌아오는 길에 나비 한 마리를 칠 뻔했다. 2·7 날에 음성 읍내에서 장날이 열리기에 이날에 맞추어 나들이를 하면서 수박과 무우와 애호박 들을 장만하고 퍽 무거운 가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찻길 구석자리에 앉아 하늘하늘 날갯짓하며 쉬는 나비를 보았는데, 자전거로 달리며 거의 1미터 앞에서 알아챘기 때문에 찻길 구석자리에서 그냥 달렸으면 나비 몸통을 고스란히 짓밟았겠지. 뒷거울로 뒤따르는 차가 있는지 없는지 살필 겨를조차 없이 손잡이를 틀어 아슬아슬 나비 옆 3센티미터를 비꼈다.
그러구러 한숨을 돌리며 저수지 옆길을 달리는데, 어제 이 길을 달리며 지렁이 한 마리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이 떠올랐다. 벌써 죽은 지렁이라 하지만 나까지 주검을 밟고 지나가기는 싫어 살금살금 살피며 달리는데,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지렁이 주검은 아무런 자국이 남아 있지 않다. 지난밤에 비가 잔뜩 퍼붓기도 했지만, 비 때문에 지렁이 주검이 쓸려가지 않았다. 비 때문에 지렁이가 차에 밟히고 거듭 밟혀 묵사발이 된 모습이 많이 씻겼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제만 해도 지렁이가 처음 밟혀서 죽은 모습이 통통하게 살아 있었는데, 오늘은 아예 짓이겨진 자국이 보였기 때문.
가파른 언덕을 낑낑대며 오르는 동안 길가에서 날갯짓하며 쉬는 나비를 한 마리 더 본다. 아까 나비는 자전거가 달리는 찻길 구석자리 흰줄에 앉아 있었고, 이번 나비는 찻길 한복판에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다. 이번 나비는 내가 칠 일이 없으나, 자동차들이 달리며 ‘스스로 친 줄조차 모르는’ 채 치여 죽을까 걱정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그나마 코앞에서 알아채는데,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길가에 사마귀가 있는지 귀뚜라미가 있는지 지렁이가 있는지 나비나 나방 애벌레가 볼볼볼 기고 있는지, 무당벌레나 딱정벌레가 뜀밤질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챌 수 없는 자동차이다. 자전거 아닌 두 다리로 걷는다면 이 모든 작은 목숨을 낱낱이 알아채며 하나하나한테 인사할 수 있겠지. 줄줄줄 기어가는 개미한테도 인사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개미까지 알아채지는 못한다. (4343.7.22.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