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생쥐 - 2010년 칼데콧 상 수상작 별천지 제리 핑크니
제리 핑크니 글.그림, 윤한구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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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을 읽는 어른과 어린이
 [그림책이 좋다 78] 제리 핑크니, 《사자와 생쥐》



- 책이름 : 사자와 생쥐
- 그린이 : 제리 핑크니
- 옮긴이 : 윤한구
- 펴낸곳 : 별천지 (2010.3.10.)
- 책값 : 9000원



 (1)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이란


 엊그제부터 《이누야사(犬夜叉)》라는 만화책을 읽고 있습니다. 일본 만화쟁이 타카하시 류미코 님이 1996년부터 그린 쉰다섯 권에 이르는 긴 만화인데, 1986년부터 그린 《란마 1/2》보다 훨씬 길고, 이보다 앞서 그린 《1파운드의 복음》이나 《도레미 하우스》보다 훨씬 긴 작품입니다. 《시끌별 녀석들》하고 견주어도 참 깁니다. 쉰 권이 넘는 만화로 예전에 《4번 타자 왕종훈》을 본 적이 있고, 처음 옮길 때 42권까지 나왔다가 뒷이야기로 새로 이어지는 《드래곤볼》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 만화 가운데에는 열 권이 넘어가는 만화가 퍽 드문데, 일본 만화에서는 스무 권은 아주 가벼운 셈이고, 마흔 권이나 쉰 권은 으레 찾아볼 수 있으며 백 권이 넘는 만화 또한 꽤 많습니다.

 일본은 만화나라라 하니 이렇게 긴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일본 못지않은 만화나라요, 만화를 즐기거나 그리는 사람 또한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렇게 짜임새있고 탄탄하며 재미있고 아름답기까지 한 만화는 손가락으로 꼽기 힘듭니다. 더욱이 우리 둘레 여느 삶에서 수수한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알뜰살뜰 만화감으로 잡아채거나 삭여내는 손끝을 만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용구슬 이야기이든 농구 이야기이든 야구 이야기이든, 또 요괴 이야기이든 격투나 무술 이야기이든, 길디길게 이으면서 빈틈이 엿보이지 않도록 그리는 만화결이란 손재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손재주 아닌 훌륭한 솜씨를 바탕으로 그린이부터 스스로 눈물과 웃음으로 젖어들도록 빚어낼 수 있는 생각밭이 있어야 합니다.

 환상이나 판타지 갈래라 해서 오래도록 이어 그릴 수 없습니다. 우리한테 “초원의 집”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큰 숲 작은 집》 같은 문학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난데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빨간머리 앤》 같은 문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우리들 여느 삶에서 흔히 마주하거나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나 스스로 처음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고운 목숨을 고맙게 받아들여 즐거이 살아가면서 뒤돌아본 발자국을 발판 삼아 신나고 멋지고 아름다우며 눈물겨운 이야기를 엮습니다. 하루하루 고단하고 복닥이는 삶을 웃음나는 이야기로 거듭나도록 이끕니다. 나날이 부둥켜안는 사랑스러운 식구와 동무와 이웃 삶자락을 싱그러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도록 북돋웁니다.

 이제 21권째 읽고 있는 《이누야사》 18권 145쪽부터 152쪽으로 이어지는 대목을 다시금 펼쳐 봅니다. “나는 키쿄에게 생명을 걸고 보답해야 해.” “응. 키쿄는 나와 비교할 수 없어. 그건, 난 살아 있으니까. 키쿄의 일도 많이 생각했어. 키쿄와 난 전혀 달라. 내가 키쿄의 환생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그렇다고 해도 난 키쿄가 아니야. 마음은 내 마음이야. 하지만 한 가지만은 키쿄의 마음을 알았어. 나와 같이, 한 번 더 이누야사를 만나고 싶다는. 키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어.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을 거라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누야사를 만나러 왔어.” ‘카고메, 나도 너를 만나고 싶었어. 하지만.’ “나, 이누야사와 같이 있고 싶어. 잊을 수 없어.” ‘카고메, 나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지?’ “이누야사, 한 가지만 물어 볼게.” “응.” “함께 있어도 좋아?”

 만화책 《이누야사》를 이루는 두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카고메는 중학교 3학년 아이입니다. 카고메는 1990년대 일본 도쿄에서 고입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면서 집안에 있는 오래된 우물을 거쳐 일본 옛 전국시대를 드나드는 동안 새로운 사람과 삶을 만나며 새로운 넋과 몸으로 거듭납니다. 이러는 사이 차근차근 무르익는 마음밭은 ‘나는 이누야사와 살아가고 싶어. 즐거운 일이 있어도 좋아. 맘껏 웃고 싶어. 나에게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계속 옆에 있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누야사 손을 꼬옥 잡습니다. 언뜻 생각하기로는 중학생 주제에 무슨 사랑을 하느냐고 바라볼 만합니다. 열여섯 나이에 무슨 사랑을 아느냐고 비웃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풋사랑이든 깊이 익은 사랑이든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어린 사랑이든 늙은 사랑이든 똑같은 사랑입니다. 열여섯 나이에도 사랑이고 여든여섯 나이에도 사랑입니다. 스물여섯이나 서른여섯이 되어야 사랑을 알까요. 아니, 스물여섯이나 서른여섯이면서 사랑을 모르는 우리들은 아닌지요.

 노래패 한스밴드는 중학생 나이에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며 노래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노래하는 한스밴드 세 사람으로서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을 터이나, 이들 노래를 듣는 사람은 중학생이 부르는 노래에 놀라워 했습니다. 한스밴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노래를 좋아하면 열너덧 살에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쉰너덧이나 예순너덧에도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열너덧에도 사랑노래를 부를 수 있고 예순너덧에도 사랑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열너덧에도 사회를 나무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예순너덧에서 사회를 꾸짖는 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대목은 얼마나 참되고 착하며 아름다운가입니다. 우리가 만화책 하나를 넘기며 헤아릴 대목은 얼마나 참된 이야기가 착한 얼거리로 아름답게 엮이어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노래 하나를 귀기울여 들으며 살필 대목은 얼마나 참된 이야기가 착한 목소리를 타고 아름다운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입니다. 고갱이는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입니다. 사람마다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맞아들이는 테두리와 깊이는 다를 텐데, 우리는 우리가 선 자리에 따라 얼마나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가를 느끼면서 어루만져야 합니다.

 스물한 달째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는 어버이 노릇을 하는 동안 날마다 같은 그림책을 아이한테 수없이 되풀이하며 읽히고 보이고 쥐어 줍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같은 그림책을 날마다 수없이 되읽고 또 넘기고 새로 쥐어들곤 합니다. 인형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놀잇감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새로 만지고 새로 늘어놓으며 새로 쌓아 놓습니다.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며 만나는 엄마 아빠하고 날마다 새롭게 하루를 맞이하듯, 날마다 같은 책 하나를 놓고도 새로운 느낌과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어버이 된 저나 옆지기 또한 아이를 날마다 새로운 눈길과 손길로 마주합니다. 아이한테 책을 읽힐 때에도 날마다 다른 목소리와 매무새로 읽힙니다. 날마다 해서 먹이는 밥이든 날마다 빨래해서 입히는 옷이든 겉보기로는 똑같은 흐름이요 물건이며 살림새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똑같은 살림새라 할지라도 이 살림새를 다루는 어버이 마음은 늘 똑같지는 않습니다. 늘 새로운 하루에 발맞추어 새로운 마음이요,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결 하나만큼은 늘 똑같을 뿐입니다.

 아이와 읽을 책이든 어른 혼자 스스로 읽을 책이든, 날마다 새롭게 쥐어들어 새 넋과 얼을 키울 만한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알차야 비로소 좋은 책 하나라고 느낍니다. 아니 좋고 나쁘고를 떠나 책이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우리 스스로 날마다 쥐어들 만해야 하며, 날마다 다시금 쥐어들면서 새삼스럽고 새로운 느낌을 선물받을 만한 얼거리야 한다고 느낍니다.
 





 (2) 이야기하는 그림책 《사자와 생쥐》


 그림책 《사자와 생쥐》를 읽습니다. 말 한 마디 나오지 않고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 《사자와 생쥐》를 읽습니다. 서울 혜화동 〈책방 이음〉 나들이를 하던 이달 첫머리에 옆지기가 이 그림책을 장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서 장만하여 읽습니다. 이 책은 비닐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속그림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속그림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장만했다가 ‘이런, 겉과 속이 다르잖아?’ 하면서 짜증스러웠던 책이 꽤 있던 만큼 못내 걱정스러웠으나, 책 겉장을 이룬 사자 그림과 생쥐 그림으로도 ‘이만한 책이라면 속그림이 우리를 짜증스레 하지는 않으리라’ 여겼습니다.

 먼저 책방에서 책값을 셈한 다음 곧장 비닐을 뜯어 책을 펼칩니다. 겉장을 이룬 그림만큼 속을 채운 그림이 어여쁩니다.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사자가 사람이 친 그물에 걸려 버둥거릴 때에 생쥐가 이빨로 그물을 갉아서 살려내는 줄거리란 그림으로만 보여줄 때에 한결 걸맞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에 말로 이야기를 넣었다면 재미나 즐거움이 크게 줄었겠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훤히 알 만한 옛이야기이기에 굳이 글을 안 넣었다기보다, 이 옛이야기란 따로 글 없이 그림으로 넉넉히 보여줄 만합니다.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글을 써서 이야기를 읽힌다 할 때에는 그림이나 사진 하나 없이 이 옛이야기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도록 할 노릇이요, 그림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할 때에는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느끼도록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린이로서는 생각힘을 한껏 북돋우면서 펼치는 그림책이고, 읽는이로서는 생각힘을 찬찬히 가다듬으면서 즐기는 그림책입니다.


.. 고전을 읽기 책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이 드물어진 이후, 고전을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아직까지도 이처럼 매력적인 고전의 등장인물들이 가족과 설정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해 주고 나로 하여금 이야기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도록 하니까 ..  (그린이 말)


 《사자와 생쥐》를 그린 제리 핑크니 님은 동물원 둘레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제리 핑크니 님이 살아가는 동물원이란 쇠창살 우리에 짐승을 가두어 놓는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 동물원’입니다. 쇠가시울타리나 쇠창살이 있지 않은 자연 동물원 둘레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레 살아가는 짐승을 늘 바라보고 부대끼는 느낌 그대로 그림을 즐긴다고 합니다.

 책끝에 붙은 그린이 소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날 우리 터전을 돌아보면,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연으로 스며들면서 자연 이야기를 쓰는 분은 드물고, 도시에 뿌리를 내리거나 한 다리를 걸치거나 온몸을 내맡기면서 자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에서는 자연다운 자연을 자연스럽게 건사하기 어렵습니다. 국립공원에 하늘차(케이블차)를 버젓이 놓는가 하면, 국립공원을 꿰뚫는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를 아무렇지 않게 뚫습니다. 국립공원에서 고기잡이 밥장사 술장사 번듯하게 이루어지며, 국립공원 아닌 데에서는 아주 막 나갑니다. 시골 논밭을 갈아엎으며 아파트를 세우거나 공장을 짓습니다. 시골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거나 공장을 들입니다. 갯벌을 메워 아파트를 올리거나 공장을 키웁니다. 자연이 자연다울 수 없고, 자연이 자연스러울 수 없습니다. 자연이 조금도 자연다움을 보듬지 못하도록 나동그라지는 곳에서 자연을 싱그럽고 아름다이 펼치는 이야기를 엮기란 몹시 힘듭니다. 자연을 하나도 자연스럽게 바라보지 않는 우리들 터전에서 자연을 사랑스럽고 알차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태환경 그림책을 그리기 힘듭니다. 우리 스스로 생태환경을 받아들이는 마음그릇 채우며 나라밖 그림책을 옮기기 어렵습니다. 좋은 생태환경 그림책이 있어도 지식으로 삼을 뿐입니다. 훌륭한 자연 그림책 하나 옮겼어도 초등학교 낮은학년 때까지만 읽히지, 초등학교 높은학년이나 중고등학교 때에는 읽히지 않습니다. 길이길이 이어갈 자연을 굽어살피지 않고, 오래오래 사랑할 자연을 껴안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즐긴다는 초등학교 낮은학년이라지만, 이때에도 영어와 한자와 갖가지 지식과 학원 교육에 휘둘립니다.

 애틋한 그림책 《사자와 생쥐》라지만, 이 그림책 하나에 얼마나 애틋함이 묻어 있는지를 느낄 가슴이 자라날 겨를이 없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입니다. 살가운 그림책 《사자와 생쥐》라고 느낍니다만, 이 그림책 하나를 기쁘게 장만하여 넉넉히 나눌 품이 없는 오늘날 우리 어른들입니다.

 한 번 보고 덮는 그림책이 아니라 날마다 여러 차례 되읽으면서 한 해에 걸쳐 천 번 넘게 살피는 그림책임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입니다. 가끔 한 번 넘기면 될 그림책이 아니라, 책꽂이에 꽂힐 겨를이 없이 손길을 타면서 닳고 때가 타야 할 그림책임을 돌아보지 못하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입니다. 우리 나라 아이들 손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닳고 낡으며, 우리 나라 아이들 손에는 좋은 그림책이나 고운 그림책이나 멋들어진 그림책이 닳고 낡지 못합니다. 그림책은 처음 이 책을 쥐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를 낳아 기를 때까지 이어가는 책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희 아이가 다시 어른이 되어 저희 아이를 낳을 때에도 물려주는 책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 나는 자연보호구역 바로 옆에 살면서 주변의 숲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다람쥐들의 합창 소리에 매료되었다. 특히 다람쥐들의 합창 소리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만들려면 동물들의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과 함께 서사를 끌어가는 그림들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  (그린이 말)


 스물한 달을 살아낸 우리 아이한테는 《사자와 생쥐》가 아직 재미난 이야기책이 되기는 힘듭니다. 아이 스스로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있고, 엄마나 아빠가 아이 한손을 쥐어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생쥐!” “사자!” “밧줄!” “꽃!” “나무!” “새끼 쥐!” 하면 하나하나 알아듣습니다만, 이 그림책을 자주 펼쳐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 또한 스스로 이 그림책을 펼치는 일은 드뭅니다. 다만, 사자나 생쥐 꼬리를 가리키며 “꼬리!”라 할 때에는 잘 알아듣고, 요 며칠 사이 아이한테는 ‘꼬리’라는 낱말이 재미있는지 이 낱말을 곧잘 읊습니다.

 아이가 제 삶터에서 사자나 생쥐를 만나기란 힘들고, 나중에 시골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쥐 한 마리 만나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 흔하던 쥐마저 요즈음은 퍽 드문 목숨으로 바뀌었습니다. 귀엽다며 따로 키우는 몇 가지 개나 고양이를 빼놓고 여느 짐승을 도시나 시골 삶터에서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생태환경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좋은 생태환경 그림책에 담긴 이야기를 넉넉히 나눌 만하지 않고, 우리 자연 벗님을 살가이 담은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자연 벗님 살림살이와 한살이를 꾸밈없이 헤아릴 만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도시 물질만능 문명 사회인 탓에 지식을 다루는 이야기책과 그림책만 넘치는지 모릅니다. 사람 또한 자연임을 느끼지 않는 사회인 까닭에 자연을 옳고 바르게 풀어내는 이야기책과 그림책이 제대로 사랑받기 힘드는지 모릅니다. 어른책뿐 아니라 어린이책에서까지 처세를 다루고 경영을 밝히고 돈벌이를 말해야 팔립니다. 아름다운 삶과 착한 사람과 참된 넋을 다루거나 밝히거나 말하는 책인 시시하거나 지루하다고 여깁니다.

 애 엄마와 애 아빠가 이야기를 그때그때 새로 짜내어 읽어 줄 그림책 《사자와 생쥐》란 오늘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읽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그때그때 늘 새롭게 읽어야 할 그림책 《사자와 생쥐》란 오늘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읽힐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2020년이 되고 2030년이 되어도 제리 핑크니 님 《사자와 생쥐》는 고이 목숨을 이을 수 있을는지, 우리 나라에서 이 그림책 넋을 깊이 되새기며 우리 땅과 사람한테 발맞춘 새로운 그림책 하나 그릴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4343.4.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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