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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는 민주주의 - 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 ㅣ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5
손석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뒷걸음치는 지식인과 뒤로 가는 우리 삶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7] 손석춘과 일곱 사람, 《후퇴하는 민주주의》
어제는 아침부터 여러 시간 찬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골목마실을 하느라 손가락과 발가락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일터인 도서관으로 돌아와서도 삼십 분 넘게 손발가락이 안 녹아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아파 했는데, 겨우 손가락을 녹이고 나서도 저녁나절까지 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도 힘들고 고되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아침에는 여느 날보다 두 시간쯤 늦게 일어났습니다.
이리하여 일요일 아침에 골목마다 하얗게 드리운 솜털 같은 눈밭을 뒤늦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제 괜히 실장갑 하나만 끼고 자전거로 마실을 나왔다가 몸을 축낸 탓에 오늘은 좋은 모습을 많이 놓치고 말았는데, 아쉽게 놓친 모습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금 눈발이 솔솔 날리며 이 아쉬움을 씻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몸을 잘 건사하면서 살아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그래도 눈송이가 고이 내려앉은 샛골목을 찾아다니며 두 시간쯤 돌아다닙니다. 아픈 다리를 쉬려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겨울 골목 풍경’을 촬영기에 담는 방송국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어인 일로 방송국 분들이 이렇게 후미진(?) 골목까지 다 찾아왔는지 궁금합니다만,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결에 “저기 김 나오는 모습 찍어.”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들이 골목 한켠에 자리잡고 찍느라, 굳이 이 골목으로 돌아오며 사진으로 담으려던 한 가지 모습을 못 찍고 가야 합니다. 뭐, 저야 모레이고 글피이고 다시 찾아와서 다시 찍으면 되기는 합니다. 늘 다니는 골목길이요, 언제나 하는 골목마실이니까요. 다만, 오늘 이 골목을 찾아온 방송국 분들한테는 바로 오늘 본 이 모습이 당신들 눈에 비칠 뿐 아니라 당신들 가슴에 새겨지는 골목 풍경이 되겠지요. 오래도록 꾸준히 지켜본 눈길이 아닌, 바로 오늘 한 번 와 본 취재길이니까요.
.. 텔레비전 화면에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모습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화려한 집안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의 아들딸은 건방지지만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꼭 가난한 누구와 사랑을 나누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 젖어들어 자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적대감을 해소시켜 가고 있습니다 .. (손석춘/19쪽)
‘로모’ 사진기로 사진을 퍽 오랫동안 즐겨찍는 선배하고 만나 사진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한테서 ‘렘브란트 빛살’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에 더없이 햇빛이 좋을 때를 가리키는 빛살이라고 한다는데, 저 또한 골목마실을 하면서 이러한 빛살을 느낍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철마다 어느 때에 빛살이 더없이 고운 줄 느낍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어느 때에 빛결이 그지없이 맑은 줄 느낍니다. 1일부터 31일까지 날마다 어느 때에 빛무리가 참으로 예쁜 줄 느낍니다.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하루 동안 빛줄기가 어떻게 달라지며 그때그때 어떤 이야기로 나한테 다가오는지를 늘 새롭게 느낍니다.
헌책방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마찬가지인데, 저한테는 ‘빛이 가장 좋은’ 때란 없습니다. ‘빛이 가장 나쁜’ 때도 없습니다. 언제나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가 있기에, 빛이 더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이야기를 엮어 내는 빛’인지를 살필 노릇입니다. 저로서는 ‘어떤 이야기가 깃든 빛’인가를 느낄 노릇입니다.
로모 사진을 찍는 선배는 “종규 씨하고 골목마실을 한 필름을 찾고 보니, ‘사는 사람’이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말을 알겠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날은 빛이 썩 좋지 않을 때였어요. 겨울에는 해가 일찍 떨어지니까 그때에는 사진을 거의 못 찍거든요.” 하고 대꾸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꺼내는 말은 저 스스로 앞뒤가 어긋납니다. 저한테는 빛이 좋고 나쁠 때가 없다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빛이 좋고 나쁠 때가 있다고 했으니까요. 왜냐하면 저는 이 동네에 늘 살면서 늘 모든 이야기를 몸으로 삭이는 사람이고, 선배는 어렵게 한 번 먼 마실을 하면서 돌아다닌 사람이거든요. 어렵게 한 번 찾아왔는데 까르띠에 브레송이 담은 ‘바로 이때’ 같은 빛살을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동지날이 가까와 오는 12월에 접어든 날은 한낮인 한 시에서 세 시 사이에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담아야 빛살이 퍽 곱고 예쁜데, 이때를 놓친 채 골목마실을 했기에 겨울골목 고운 빛줄기를 함께 느끼지 못했거든요.
.. 진짜 행복을 가지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뽑힌 이유는 참 더러운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뭔가 짭짤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이명박을 뽑은 것이지요 … 지금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인 것처럼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이명박, 작은 이건희인 우리에게 성찰 없는 분노는 카타르시스죠 … 남보다 잘살고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불편해하는, 같이 가고 연대하는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혁명입니다 .. (김규항/46, 52, 56, 60쪽)
사진 선배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문득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수첩에 몇 글자 끄적입니다. 선배는 ‘지식인들이 왜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쓸까?’ 하고 묻는데, 제 깜냥으로 오늘날 우리 지식인을 돌아볼 때에 ‘지식인다운 밥그릇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생각있는 대학생들이 졸업논문을 쓸 때에 쉽고 바르고 깨끗한 말을 쓰고 싶어 하지만, 이렇게 ‘쉽고 바르고 깨끗한 우리 말로 논문을 쓰면 논문심사에서 떨어진다’면서, 교수들이 바라는 대로 어렵고 딱딱하고 얄궂고 뒤틀린 한자말이 가득가득한 논문을 쓰곤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생각있다는 대학생들이 이처럼 논문을 쓰는 일은 논문 하나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논문을 쓰는 동안 생각있던 대학생들은 ‘어렵고 딱딱하고 얄궂고 뒤틀린’ 말로 마음밭을 다스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다스린 마음밭에 따라 동무나 식구나 이웃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으레 ‘어렵고 딱딱하고 얄궂고 뒤틀린’ 말이 튀어나옵니다.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애써 털어내거나 씻어내려고 해도 좀처럼 털어내지 못하며 도무지 씻기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도권교육은 이 같은 길들이기를 노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 맑고 쉽고 바르고 알맞춤한 말을 쓰면서 맑고 쉽고 바르고 알맞춤한 생각을 가꾸다가는 맑고 쉽고 바르고 알맞춤한 삶을 꾸리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는 속셈인지 모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아니, 대학교에 들어간 머리 좀 똑똑하다는 이들이야말로 제도권에 확 틀어박히도록 길들어 놓고자 이러한 길을 걷는지 모릅니다. 지난날 실학자 가운데 몇몇 사람만 겨우 ‘한글’로 함께 글을 썼지만, 거의 모든 지식인은 양반 사대부끼리 알아먹는 한문으로만 글을 썼습니다. 농사꾼은 한글도 잘 몰랐다고 할 테지만, 이 나라 낮은자리 여느 사람하고 주고받을 만한 글을 쓴 지식인은 지난날에 1%가 안 됩니다. 이 흐름은 일제강점기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방을 맞이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고, 독재정권이 짓누르고 있던 때에도 썩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이라고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10년을 앞두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쉽고 바르고 깨끗하며 싱그럽고 알차고 알맞춤한 우리 말’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책을 내놓는 지식인을 몇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까. 저잣거리 일꾼이 알아먹을 책을 인문사회과학책으로 써내는 지식인이 몇 사람이 됩니까? 이마트 일꾼뿐 아니라 골목동네 작은 가게 일꾼들이 즐겁게 받아 읽을 문화예술책을 써내는 지식인이 몇 사람 있습니까? 아이 키우느라 바쁘고 고된 어버이한테 손쉽고 신나게 읽힐 교육책이나 정치책이나 경제책을 써내는 지식인이 몇 사람 있습니까?
.. 집이 몇 채건, 갖고 있는 집 가격을 합쳐서 7억 5천만 원이 넘는 사람이 38만 가구입니다 … 집값이 7억 5천만 원은 안 되지만 그래도 집을 한 채 이상 갖고 있는 ‘집은 있는 놈’이 두 번째 계급이에요. 이런 분들은 836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54퍼센트 정도 돼요 … 500만 가구 가까이, 전체 국민의 3분의 1정도 되는 분들은 전월세 보증금이 5천만 원도 안 돼서 집값이 설령 반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자기 집을 장만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분들이에요. 이들이 5계급이에요 .. (손낙구/99∼101쪽)
잡지 ‘작은책’ 강의를 그러모은 책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읽습니다. 강사로 나온 분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외칩니다. 우리 나라 민주주의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고. 뭐, 말장난이 아니라 참말 우리네 민주주의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 할 만한데, 강의에 나선 분들 가운데 ‘뒷걸음’을 말하는 분은 없습니다. 모두 ‘후퇴(後退)’를 들먹입니다. 따지고 보면, 책이름부터 ‘후퇴하는’이지 ‘뒷걸음치는’이나 ‘뒤로 가는’이 아닙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잡지 〈작은책〉은 “일하는 사람이 손쉽게 사서 손쉽게 들고 다니며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도 먹물깨나 드신 분들이 이 잡지에 쓰는 글은 ‘손쉽지’ 않았습니다만, 손쉽게 읽히고 손쉽게 글쓰기를 나누고자 무척 애써 왔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잡지 하나가 이토록 애쓰고 몸부림치는 동안 이 나라 지식인들은 어느 자리에서 얼마나 애쓰거나 몸부림을 치고 있었을까요. 이 나라 민주주의가 뒤로 가고 있는 동안 이 나라 지식인들은 얼마나 몸을 바치고 마음을 쏟고 있었을까요. 민주주의를 이루는 뿌리나 바탕이나 알맹이가 뒤로 가지 않도록 이 나라 지식인들은 얼마나 땀을 쏟았을까요.
말은 지식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책은 지식으로 엮을 수 없습니다. 사진은 지식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말은 삶으로 나눕니다. 책은 삶으로 엮습니다. 사진은 삶으로 찍어 이룹니다.
우리 식구들한테 곱고 따순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밥을 하기에 집밥이 맛있습니다. 집밥을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밥집은 집밥을 먹듯 맛있어 맛집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우리 식구들하고 똑바르고 올바로 생각을 나누고 싶으며 글을 쓰기에 살림글(생활글)이 싱그럽고 재미있고 눈물겹고 웃음이 묻어납니다. 살림글을 쓰는 매무새로 학문을 하고 철학을 펼치며 문화와 문학을 이루고자 힘쓰기에 이 같은 손품이 담긴 책은 오래도록 꾸준히 읽힙니다. 우리 식구들부터 좋아할 수 있도록 찍기에 사진 한 장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디에 내보이거나 공무전에 붙으려는 작품이기 앞서, 나한테 가장 살가운 사람부터 반길 수 있도록 찍는 사진이라면 사진잔치를 안 열고 사진책으로 묶지 않아도 널리널리 아름다움을 퍼뜨리며 함께합니다.
.. 어디 가서 나하고 같은 학교 나온 사람 만나면 그때부터 말 놓고, 그냥 완전히 집에서 하듯이 퍼집니다. 그리고 아닌 사람들 만나면 괜히 이질감 느끼고, 위화감 느끼고. 이 때문에 공공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겁니다 … 대학 와서 전공 학문을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는데 어떻게 대학 교육이 정상적일 수 있습니까? 작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서울대 출신 가운데 법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 (김상봉/136, 142쪽)
여덟 사람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펼친 《후퇴하는 민주주의》는 우리 삶터가 어느 길을 따라서 흐르는가를 잘 짚고 다룹니다. 여덟 사람이 다 다른 자리에서 당신들 깜냥껏 애쓰고 힘쓰는 모양새가 책 갈피마다 잘 스며 있습니다. 내세우는 책이 아니라 나누는 책임을 이 조그마한 책은 알뜰히 보여줍니다.
참 야무지다 할 만합니다. 퍽 쏠쏠하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가슴 한켠이 싸합니다. 어딘가 허전합니다. 목소리는 다 옳고 맞구나 싶은데 활활 타오르는 심장 한복판을 찌르는 말마디는 찾기가 어려워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하나같이 알차고 다부지구나 싶은데 뜨겁게 샘솟는 눈물방울을 느낄 만한 글줄은 보이지 않아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겨울을 더욱 춥게 느끼면서 이 추운 겨울날 몹시 추위를 타면서 지낼 이웃이 누구인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020년에도 이 책 《후퇴하는 민주주의》하고 똑같은 이야기가 ‘통계 숫자’만 달라진 채 다시금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네 지식인들이 뒷걸음을 친다고는 느끼지 않으나, 아니 우리네 훌륭한 지식인들이 뒷걸음을 친다고는 보이지 않으나, 아무래도 앞걸음을 꿋꿋하게 걸어가면서 스스로 한 가지 허울 두 가지 껍데기 세 가지 얼굴 네 가지 탈 다섯 가지 이름조각 여섯 가지 지갑 일곱 가지 자동차 여덟 가지 아파트 아홉 가지 가방끈을 내려놓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 가지 굳은살 두 가지 손품 세 가지 다리품 네 가지 자전거 다섯 가지 작은 보금자리 여섯 가지 낮은 어깨동무 일곱 가지 품앗이 여덟 가지 함께살기 아홉 가지 눈물웃음을 얼마나 붙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마침 그무렵 김문수 씨와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어서 나름대로 설명을 했어요. 그런 사람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런 사람이 아마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논리와 세계관을 이렇게 합리화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설명을 했더니 그 노동자가 “아휴, 난 뭐 단순하고 무식해서 그렇게 복잡한 이야긴 잘 이해가 안 되고요. 솔직히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십니까? 배운 놈은 다 똑같다, 그런 생각밖에 안 납니다. 여기 구로동에 있는 운동 공간들 가 보세요. 그게 다 학생운동 출신들이 와서 만든 공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학생운동 출신들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지 보세요. 노동자들만 남아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을 몇 번 겪었어요. 그러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인식하기 전에 ‘똑같지 않은 놈이 한 놈 정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하종강/207쪽)
우리가 아름답게 설 수 있는 길을 이야기로만이 아닌 몸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참다운 지식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민주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스럽게 손잡을 수 있는 길을 말로만이 아닌 삶으로 들려줄 때 바야흐로 참된 지식이요 슬기이며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고운 몸짓과 맑은 눈길로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글쪼가리 아닌 꾸덕살로 펼쳐 낼 때 시나브로 참말이고 참앎이며 왼날개와 오른날개가 다 다르게 빛나는 민주주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4342.12.20.해.ㅎㄲㅅㄱ)
┌ 《후퇴하는 민주주의》(철수와영희,2009)
├ 글 :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하종강, 서경석
└ 책값 : 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