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즐기다
이자와 고타로 지음, 고성미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사진을 즐기는 내 삶은 아름답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8] 이자와 고타로, 《사진을 즐기다》



- 책이름 : 사진을 즐기다
- 글 : 이자와 고타로
- 옮긴이 : 고성미
- 펴낸곳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3.15.)
- 책값 : 11000원



 (1) 내 삶에 있는 사진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눈이 둘도 없는 보배입니다. 손목아지가 부러져도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지만, 눈이 감기면 사진도 그림도 영 부질없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노래를 지은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그이한테 눈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 삶에서 눈이란 ‘본다’를 넘어서 ‘산다’를 나타내는 큰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 같은 피사체를 오랜 기간 동안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추어의 특권이다 ..  (127쪽)


 그러나 눈이 감겨서 아무것도 못 본다 하는 삶이라 해서 어둡다고만 느끼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제 눈은 활짝 뜨고 있으니 눈을 감은 나날을 생각조차 못할 뿐인데, 갑작스레 눈이 감기더라도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눈이 감기면 감기는 대로 내 삶을 꾸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눈이 감기고 나면 눈이 감긴 삶으로 새롭게 꾸려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이 감겼어도 저한테는 목숨줄이 있기 때문에 눈보다 아름다운 선물인 목숨줄을 될 수 있는 대로 튼튼하게 붙잡으며 가꾸고 싶습니다. 아픔과 생채기일 뿐이라 하더라도 악착같이 붙들면서 일구고 싶습니다.

 아마, 이렇게 악착스레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느끼겠지요. ‘악착스러움이란 무언가? 왜 난 이렇게 망가지면서까지 더 살아야 하느냐?’ 하고. 이처럼 느끼던 그때에는 ‘한 번 주어져서 즐겁게 누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이 삶인데 악착같이 매달리느라 정작 내가 기쁘게 맞아들일 웃음과 눈물을 놓치지 않았나?’ 하고 뉘우치리라 봅니다. 이와 같이 뉘우친 다음에는 ‘돈이 없을 때에는 돈이 없는 대로 잘 살아왔으니, 눈이 감긴 때에는 눈이 감긴 대로 잘 살아가면 되지 않나?’ 하면서 바야흐로 새 삶길에 눈을 뜨리라 봅니다.

 참말 이렇게 살아가리라 봅니다. 헤아려 봅니다. 생각해 봅니다. 어림해 봅니다. 느껴 봅니다. 이야기해 봅니다.


.. 내 경우만 하더라도 사진전 등에서 “어떤 사진을 살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평소의 평론가의 눈과는 달라진다 ..  (162쪽)


 한석봉 어머님은 캄캄한 방에서 떡을 썰었다고 하는데, 저는 캄캄한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세발이를 쓰지 않고 선 채로, 또는 벽에 기댄 채로, 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또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몇 초 동안 꼼짝을 않고 숨을 멈추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몇 초에 걸쳐 담아낸 사진은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아주 드물게 아무런 떨림이 없는 사진을 얻곤 합니다.세발이를 받치면 걱정없이 더 나은 사진을 더 많이 찍었을 텐데, 저로서는 세발이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세발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괜히 세발이까지 챙겨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깊은 밤에 사진을 찍는데, 떨림 사진이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외려 떨림 사진이 깊은 밤 사진에 걸맞지 않겠습니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사람이 있는 깊은 밤인데, 밤을 잊고 새벽을 열며 신문을 넣고 우유를 넣는 사람이 있는 어두운 골목인데, 떨림 사진이란 스스럼이 없고 살가운 눈길이요 눈맞춤이 아니겠습니까?

 집에서도 몇 초 동안 사진기를 붙들고 있곤 합니다. 때때로. 드물게. 일부러. 아주 깊은 밤 곯아떨어진 옆지기와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3초나 5초쯤 사진기를 무릎에 받치고 찍습니다. 감도를 1600으로 맞춘 다음 두 장쯤 담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두 사람 모습이 사랑스러우니 깊은 밤나절 모습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한두 장쯤 남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뛰노는 아기도 사랑스럽고 칭얼대는 아기도 사랑스러우며 웃는 아기도 사랑스럽습니다. 아파하는 옆지기도 사랑스럽고 아픔을 씻은 옆지기도 사랑스러우며 아파 죽겠다는 옆지기도 사랑스럽습니다. 제 둘레에는 온통 사랑스러움투성이라, 저는 사진을 찍으며 언제나 사랑 한 점 톡 떨어뜨리듯 사진 한 장 찰칵 찍습니다.

 헌책방이 왜 꾀죄죄함입니까? 헌책방이 왜 칙칙함입니까?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는 왜 헌책방을 ‘낡아빠진 사라지는 곳’으로만 여깁니까? 도무지 언제까지 이런 고리타분하고 낡아빠진 생각으로 헌책방을 마주합니까?

 왜냐하면, 기자나 작가라는 이름을 걸친 이들은 헌책방 한 곳부터 이렇게 엉터리로 바라보기 때문에 정작 다른 자리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네들 속내와 속알맹이와 속살과 속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다루든 경제를 다루든 운동경기를 다루든, 이들 속에 깊이 또아리를 튼 고갱이를 확 끄집어내야지요. 뽀얀 속살이든 때에 절은 속살이든 꾸밈없이 느끼고 받아들이고 삭여내어 당신들 슬기로움으로 보듬으며 우리 앞에 내놓아 주어야지요.

 우리는 사진 찍는 기계가 아닙니다. 자판기처럼 척척 찍어 대는 기계가 아닙니다. 쇠돈 한 닢 넣으면 좔좔좔 쏟아 놓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멋지구려 사진’을 판박이처럼 따라하는 못난이가 아닙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찾아야 할 우리가 아닙니다. ‘잘 꾸리는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나부터 좋아할 사진 한 장’을 찾아야 합니다.

 사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나한테 있습니다. 사진이란 사진기를 손에 쥔 다름아닌 나한테 있습니다. 나한테 있는 사진인데 나를 못 보고 있는 탓에 자꾸만 대학교를 떠돌고 사진교실을 떠돌며 인터넷을 떠돌다가 비싸구려 장비에 몸을 팔고 마음을 빼앗기며 바보 멍텅구리 얼간이 같은 사진기계로 굴러떨어집니다.


 (2) 무얼 즐기라는 《사진을 즐기다》일까?


 일본 사진평론가 이자와 고타로 님이 쓴 《사진을 즐기다》를 읽습니다. 얇은 책이기는 한데, 30분 만에 읽고 책을 덮습니다. 고작 30분 만에 다 읽어낸 다음 ‘내가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책을 펼치지만 더 읽을 만한 건더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 눈이 삐었나? 내가 잘난 체를 하자고 이 책을 얕보는 셈인가?’ 하고 뉘우치면서 다시금 책장을 넘기지만, 207쪽짜리 이 책에서 밑줄을 그을 만한 대목을 열 줄쯤 찾기조차 힘이 듭니다. 더욱이 207쪽짜리 책이라 하지만, 부록과 찾아보기 따위가 꽤 길게 차지하며 빈자리가 많아서, 속알맹이는 160쪽을 조금 넘는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지난주에 읽은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하고 견줍니다. 이 책은 이 책대로 좋고 저 책은 저 책대로 좋습니다만, 알맹이가 없어 되읽지 못하도록 하는 사진 이야기라 한다면, 이 같은 사진책은 누구한테 이바지를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밭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한테? 사진밭에 발을 디딘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사진을 제대로 못 즐기고 있는 사람들한테? 사진밭에 오래 몸담고 있으나 잘난 척하고 젠 체하는 사진쟁이한테?


.. 사진전을 권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사진가들의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물론 많은 경우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어쩌면 사진가는 그 우연마저 불러들이는 능력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  (16, 124쪽)


 《사진을 즐기다》라는 책이 허술하거나 모자라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책한테는 “사진을 즐기다”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 책한테는 “사진을 즐기고 싶은 이한테”라든지 “사진나라에 들어오고 싶은 분한테”라든지 “사진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한테” 같은 이름이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새내기도 즐길 수 있는 사진이요 헌내기 또한 즐길 수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즐기다”라는 이름을 내걸며 얼마든지 당신 깜냥껏 ‘사진 즐김’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까닭 때문에 궁금합니다. 사진평론이라는 길을 서른 해 넘게 걸어왔다는 글쓴이는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즐기다”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가벼운 입문서’를 내놓았을까요? 더욱이, ‘일본땅 사진 입문자 길잡이책’으로 나온 이 책을 한국말로 옮겨 한국 사진쟁이 앞에 선 보인 출판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사진을 즐기다”가 아닌 “사진 평론을 즐기다”인 글쓴이 이자와 고타로 님입니다. ‘사진 평론 즐기기’도 어김없이 “사진을 즐기는 또 다른 길”이라 할 텐데, ‘사진 평론 즐기기’를 수많은 사진쟁이한테 선물처럼 내어주면서 “여러분도 이렇게 사진을 같이 즐겨 보아요” 하고 손짓을 할 수 있을 텐데,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쪽이 시큰하고 책을 덮은 뒤로 가슴 한켠이 쓰라립니다.


.. 사실 일본의 사진 상황을 보면, 이 부분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을 위한 도구와 기술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무엇을 어덯게 표현하고자 사진을 찍는가라는 중요한 핵심이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 굳이 비싼 1안 리플렉스 카메라를 장만할 필요도 없이 휴대용 카메라로도 충분하다.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만나는 장면들을 담아 그대로 셔터를 누르면 된다 ..  (103, 109쪽)


 사진은 틀림없이 우리 삶에 있습니다. 저한테는 제 삶에 걸맞게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을 즐기다》를 펴낸 이자와 고타로 님한테도 당신 삶에 알맞게 사진이 있습니다. 배병우 님 같은 분은 배병우 님 나름대로 사진이 있고, 노순택 님 같은 이는 노순택 님 깜냥대로 사진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저 마음그릇대로 사진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즐기는 사진그릇이 더 낫다 할 수 없으며 더 부끄럽다 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즐기는 사진그릇이 더 나쁘다 할 수 없으며 더 훌륭하다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즐기다》라는 사진책은 ‘사진을 즐기려면 우리가 우리 마음과 눈길과 몸을 어떻게 다스리면 더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틈틈이 들려줍니다. 곰곰이 생각할 만하고 깊이 돌아볼 만하며 차분히 되새길 만합니다.

 다만, 생각할 만한 이야기는 담겼되, 가슴을 적실 만한 넋은 담기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되짚을 만한 이야기는 실렸되, 가슴을 울릴 만한 얼은 실리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 늘 신선한 기분으로 촬영에 임하라. 그런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건강하게 전해진다 … 세월이 흐른 뒤 (내가) 사진가가 될 수 없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새겨 보면서 결과적으로 사진가가 되기 위한 자질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부터 서술할 ‘매케니즘을 활용하는 능력’, ‘분위기를 컨트롤하는 능력’, ‘지속적으로 촬영하는 정열’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다 ..  (104, 122쪽)


 사진 한 장으로도 웃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진 한 장으로도 울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진 이야기 한 줄로도 웃을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진 이야기 한 줄로도 울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즐기다》는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주는 책일는지요. 이 책을 읽은 사진쟁이는 당신들 가슴을 어떻게 다독이거나 추스르거나 다스릴 수 있는지요.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쓴 일본 사진평론가 이자와 고타로 님은 얼마나 뿌듯하고 기쁘고 보람차고 즐거운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같은 피사체를 똑같이 촬영하면 지겨울 뿐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의 묘미는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된다. 언뜻 보기에는 같은 피사체이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  (125쪽)


 저는 ‘사진은 내 삶’이라고 느낍니다. 내 삶이라고 느끼는 사진은 아름답다고 받아들입니다. 내 삶을 아름답게 일구고 싶으며 제 모자란 깜냥과 재주껏 아름답게 갈고닦고 있으니, 내 사진이 이럭저럭 어줍잖거나 어설프지만 이러면서도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사진작가로 이름을 내거는 분들 작품을 보면서 이분들 이름 때문에 사진이 더 우러러보이지 않다고 느끼며, 사진작가 이름이 없는 분들 작품을 보면서 이분들 이름 때문에 사진이 더 낮아 보이지 않다고 느낍니다. 사진작가 작품 가운데 허접한 녀석이 퍽 넘치고 있으며, 사진작가 아닌 이들 작품 가운데 눈물젖게 하는 님이 꽤 많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즐기다》라는 책 하나는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수수하게 당신들 삶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에 이 이름, “사진을 즐기다”를 쓰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걸림돌은 아니지만 징검다리 노릇은 힘들다고 느낍니다. 안쓰럽습니다. (4342.11.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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