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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읽는다 -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강상중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평점 :
누군가 나한테 "이 책을 왜 '별 둘'만 붙였어요?" 하고 묻는다면,
"별 하나만 붙이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꾸하리라.
누군가 나한테 "이 책이 어째서 '별 둘'밖에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면,
"네, 별 셋을 붙이는 대신 '시간도 돈도 아까운 책'에 넣어 드리지요." 하고 대꾸하리라.
책읽는 일본사람, 책 안 읽는 한국사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4] 강상중, 《청춘을 읽는다》
.. 나는 도쿄 역시 ‘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이 상태로 가다가는 그렇게 될 것만 같다 .. (61쪽)
저는 서울 또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대로 가다가는 깡그리 무너지고 조각조각 부서지고 끝없이 망가지며 갈가리 쪼개지다가는 폭삭 주저앉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서로 이름값 높이고 이름값 지키며 이름값 부풀리는 데로 치닫는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돈벌이 힘쓰고 돈벌이 매달리며 돈벌이 생각에 가득하다면 부서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도나도 겉치레 밝히고 겉치레 키우고 겉치레 사로잡히다가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가방끈 붙잡고 가방끈 늘리며 가방끈 내세우다가는 쪼개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같이 쇠밥그릇 살찌우고 쇠밥그릇 홀로 차지하며 쇠밥그릇 빼앗으려고 싸우다가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산시로 같은 느긋한 성격의 청년은 멸종되고, 반쯤은 여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모라토리엄을 만끽하는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고 있었다 … 《산시로》를 읽고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이 청년에게는 땅에 배어 있는 피와 땀의 기억과 같은 것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41, 49쪽)
해 떨어지고 늦은 저녁,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단단하고 억센 쇠밥그릇을 붙잡고 있는 공무원하고 마주해야 하는 자리가 몹시 낯간지럽고 벅차서, 저녁을 나누는 자리에서 홀로 일어나 밥집 문을 쾅 닫고 나갔습니다.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 ‘민간인’하고 어울리는 자리에서까지 그 티를 버리지 못해야 할까 딱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며 겉치레만을 살피는 매무새로 넉넉히 일삯을 받고 연금을 챙기면 세상 부러울 구석이 없다고 여기지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공무원들은 책을 읽을까요? 이 공무원들도 아이들한테 ‘훌륭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좋은’ 책을 사다 주어 읽힐까요? 이 공무원들은 당신 딸아들한테 어떤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이 공무원들한테 믿음이 있다면 성경이나 불경을 읽을까요? 성경이나 불경을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나라안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이원수 어린이문학과 권정생 어린이문학을 당신들 딸아들한테 읽힌 적이 있겠지요? 공무원 당신들은 이원수 권정생 책을 한 권쯤 읽어 보았을까요?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 처음 상경했을 때는 그저 ‘도쿄는 대따 크구나’하고 감탄하기만 했는데, ‘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해 보면, 모두들 얼굴은 있어도 아침 출근길의 러시아워 때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돌변해서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교성이 난무하고, 그런 북적거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 사람들이 부산스레 오가고, 그 뒤로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맹렬한 기세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몸부림치는 그런 세계 속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영원불멸한 것을 생각하려 해도 그런 것은 허황된 거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 (81, 83쪽)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재개발 사업에만 눈이 먼 공무원하고 날마다 마주해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성과 내는 사업에만 몸바치는 공무원하고 늘 부딪혀야 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삶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한테 이런 삶이 주어졌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숱한 공무원하고 부대끼는 동안, 이 공무원이든 저 공무원이든 책을 읽지 않음을 낱낱이 깨닫습니다. 이 공무원이든 저 공무원이든 저마다 붙잡는 책에 담긴 속살이나 알맹이를 옳게 붙잡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훌륭한 줄거리 담은 책을 훑으면서 훌륭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스로 훌륭한 삶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재미난 얘기 넘치는 책을 읽으면서 참된 재미를 곰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재미난 사람이 되어 재미나게 일하는 매무새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책은 그저 시간 때우기일까요? 책은 한낱 시간 죽이기일까요?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니, 읽는 이하고 쓴 이하고는 동떨어진 삶일까요? 줄거리만 욀 수 있으면 책읽기가 끝일까요? 줄거리를 읊을 수 있으면 책을 잘 읽은 셈일까요? 독후감 숙제를 낼 수 있고, 이 숙제가 100점을 받으면 책을 가장 잘 읽은 셈일까요?
.. 어째서 내 부모의 나라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렇듯 비참한 기분에 젖어야 하는 것일까? 왜 … 그러나 보들레르의 비극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무리를 지어 스스로 전위임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리고, 음모를 꾸미듯 정치에 정신이 빠져 있었더라면 아마 이런 작품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 전위가 되려다 결국 피에로로 끝났을 때,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전향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국 그들은 소시민적인 안일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근거지를 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 (100, 104, 107, 108쪽)
책이란 모두 같은 책입니다. 헌책방 헌책과 새책방 새책과 도서관 장서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모두 같은 ‘책’입니다. 겉이 좀 헐어도 책이요 갓 찍어 따끈따끈해도 책이며 도서관 딱지가 붙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책입니다. 오늘 읽혀도 책이요 내일 읽혀도 책이며 글피에 읽혀도 책입니다. 부자가 읽어도 책이고 가난방이가 읽어도 책입니다. 대학교수가 읽어도 책이고 구멍가게 할배가 읽어도 책입니다. 가정주부로 일하는 연변조선족 아줌마가 읽어도 책이며 까맣고 큰 차를 끌고다니는 아줌마가 읽어도 책입니다.
책이란 모두 다른 책입니다. 내가 읽는 책과 네가 읽는 책이 다릅니다. 똑같다고 하는 책을 읽을지라도 받아들이는 가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책입니다. 지난해에 읽을 때와 올해 읽을 때 깨닫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책입니다. 우리들 하는 일이 모두 다르며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생각과 느낌과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는다 하여도 마음을 사로잡는 대목이 다르고 눈길을 끄는 글월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 같은 책을 다 다르게 읽을 뿐 아니라, 다 다른 책을 또한 사뭇 다르게 읽습니다.
.. 1968년에 착공해 1970년 초여름에 완공된 4차선 경부고속도로는 총 길이 425킬로미터, 폭 22.4미터의 대동맥으로, 이 도로에 의해 서울과 부산은 1일생활권이 되었다. 이 대동맥의 완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은 농어촌 근대화와 소득증대를 내걸고 새마을운동을 추진했다. 그것은 ‘근면ㆍ자조ㆍ협동’을 슬로건으로 하여 위로부터의 힘으로 유교적 가족주의와 공동체의식을 파괴하고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는 국민을 양성하려 한 것이었다 … 너무나 무더운 날씨에 어느 마을 사거리에 차를 세우고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작은아버지가 마을 사람 하나와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곁에 앉아 꿈쩍 않고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자넨 일본서 왔는가보이. 여기선 다들 입이 무거워 아무 말도 안 하지만, 파쇼야, 이 나란. 일본인들 있을 때보다 더 심해. 그러니 자네도 경솔한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말게나.” 더듬더듬, 그러나 똑똑히 들려오는 일본어에 깜짝 놀라 절로 몸이 젖혀졌다. 게다가 ‘파쇼’라는 단어가 너무도 뜻밖이어서 얼토당토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 노인이 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돌아오자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언론통제와 상호감시가 궁벽한 시골 구석구석까지 눈을 번득이고 있었던 것이다 … 땅바닥을 기는 듯한 하층노동자의 빈곤과, 그들의 머리 위를 달리는 고속도로. 이 두드러진 대조는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 (143∼145, 156쪽)
사람 숫자만큼 책이 있습니다. 사람 숫자만큼 책이 골고루 있습니다. 사람 숫자만큼 다 다른 삶이 밴 다 다른 이야기가 어우러진 다 다른 책이 있습니다.
저는 새책방보다 헌책방을 즐겨찾지만, 새책방 또한 곧잘 찾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흔히 찾아 읽으려 하지만, 갓 나온 책보다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거나 촉촉하게 적시는 책을 찾으려 합니다. 헌책방에서는 판이 끊어진 안타까우면서 아름다운 책을 찾아 읽으려 하지만, 굳이 지난날 책을 찾는다기보다는 제 넋을 올바르게 이끌거나 제 얼을 알차게 일굴 수 있는 책을 찾으려 합니다.
새책방에서 책을 살 때에는 ‘내가 이 책 하나를 사면서 이 좋은 책을 힘껏 펴내 준 출판사한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기쁩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 때에는 ‘내가 이 책을 사면서 이 반가운 책을 애써 캐내고 건져내어 새로 읽힐 수 있도록 손질한 일꾼들한테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구나’ 떠올리면서 즐겁습니다.
출판사 눈으로 보자면 도서관에서 책을 갖추는 일이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 책은 ‘한 권으로 수십 사람이 읽거나 수백 사람이 읽기’까지 하니까요. 그런데 어떠한 출판사 일꾼도 ‘도서관에서 책을 사들이는 일’을 꺼리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출판사 일꾼은 헌책방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는 일을 몹시 꺼리고 싫어합니다. ‘헌책방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기 때문에 새책이 하나 덜 팔린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헌책방에서 팔린 책은 한 권이요 고작 한 사람이 읽을 뿐이고, 도서관에서 사들인 책은 하나 갖고 수많은 사람이 읽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사들일 때야말로 ‘출판사 매출에 손해’일 테지만, 이렇게 낱낱이 따지고 살피는 출판사 일꾼은 아직까지 없는 줄 압니다.
..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절제와 근면과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일한다 해도 돈을 벌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돈벌이가 뭐가 나쁘냐’라는 탐욕이 당당하게 행세하게 된다 … 이치로나 마쓰이 히데키 선수는 야구 배트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100만 엔을 벌어들이지만, 나는 1년 동안 일해도 200만 엔밖에 벌지 못한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면 지역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해 준다. 나는 거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 (226, 230∼231쪽)
재일조선인이요 재일지식인인 강상중 님이 쓴 《청춘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당신이 젊은 날 읽으며 가슴에 알알이 맺히거나 새겨진 책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이 책만큼은 읽어 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은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 강상중 님은 일본에서 일본말을 쓰면서 살기에 마땅히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을 쓸 텐데, 《청춘을 읽는다》라는 책에서도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턱턱 막힙니다. 지난 2004년에 나온 《소년의 눈물》이라는 책에서도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은 몹시 껄끄러웠습니다. 일본에서 일본말을 하며 살아갈 때에는 마땅히 ‘자이니치’일 테지만,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며 살아가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때에는 마땅히 ‘재일’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나라 이름은 ‘한국’이지 ‘코리아’가 아니며, 나라밖 사람이야 우리를 가리켜 ‘코리아’라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가리켜 ‘코리아’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청춘을 읽는다》를 펴낸 출판사와 옮긴이는 굳이 ‘자이니치’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이 낱말 하나 때문에 책을 못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낱말 하나쯤이야 살며시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얼마든지 지나쳐도 됩니다. 또한, ‘자이니치’란 일본말을 곰곰이 곱씹으면서 우리 터전을 돌이켜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에는 아쉬움이 여러 가득입니다. 한 가득이나 두 가득조차 아닌 여러 가득입니다. 강상중 님 당신한테 젊음을 빛내 준 책 몇 가지라고 하나, 우리가 굳이 이 책들을 같이 읽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터전에 따라 우리 마음을 빛낼 책을 찾아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다 다른 우리들은 다 다른 책으로 우리 젊음을 뽐내고 즐기고 누리고 나누며 어깨동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강상중 님이나 《청춘을 읽는다》를 펴낸 출판사나 ‘꼭 이 몇 가지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 《청춘을 읽는다》는 이 나라 젊은이가 또다른 새로운 책으로 저마다 다른 젊음을 다 다른 모양새로 가꾸고 일구라는 쪽으로는 줄거리를 펼치지 않았습니다. 강상중 님 젊음을 흔든 책 몇 가지에만 눈길을 맞추면서 이 책이야말로 ‘젊음을 흔드는 책’이라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되풀이했습니다.
얼마 앞서 유시민 님도 《청춘의 독서》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청소년책이 몹시 드물며, 청소년책을 꾸준히 내는 출판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주 적습니다. 처음 출판사를 열 때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청소년책을 내는 외곬로 내는 출판사로는 ㅇ 한 곳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ㅇ이라는 출판사는 아직 ‘청소년이든 젊은이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책’은 한 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푸름이나 젊은이한테는 ‘이 책을 읽자’고 하는 말보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이 있으니, 저마다 눈길과 입맛과 마음에 맞는 책을 하나쯤 살피면서 저마다 다 다른 우리 삶을 생각하고 붙잡자’고 하는 몸짓으로 숱한 이야기책을 내놓을 뿐입니다.
.. 우리는 햇살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는 건전한 청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남녀는 병적일 만큼 수척하고 뒤틀리고 문드러진 나체의 소유자들뿐이다 .. (96쪽)
강상중 님 책이나 유시민 님 책이나 똑같이 ‘젊음을 빛내고 일깨운 책은 이러저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분이 손꼽은 책들은 모두 ‘고전’이라 일컬을 만한 책입니다. 가벼운 책이 없습니다. 가볍게 손에 쥐고 읽을 책이 없습니다. 무거운 책입니다. 무거워 손이 덜덜 떨리는 책만 들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강상중 님이나 유시민 님 삶이나 눈높이에서 젊은이한테 《원피스》를 읽으라 하거나 《꽃보다 남자》를 들추라 하지는 못하겠지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나 《현시연》을 펼치라 하지도 못할 테고요.
다시 한 번 책을 펼쳐서 읽어 봅니다. 책을 살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밑줄을 그었던 대목 말고는 왜인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니다. 밑줄을 그었던 대목도 한 번 더 돌아볼 만할 뿐, 가슴을 콩쾅쿵쾅 뛰도록 하지 않습니다.
거듭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우리 젊은이한테 ‘자, 젊은이들아 책을 읽자!’ 하고 이야기를 하겠다면, 젊은이들 가슴을 쾅쾅 울리거나 소복소복 적시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은이들한테 ‘이 책만큼은 젊을 때 반드시 읽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내 젊을 때 이 책들로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오늘을 사는 젊은이한테는 어떤 책이 가슴이 울렁거릴까요? 저마다 다 달리 가슴을 울렁이도록 하는 책을 다 다른 삶자리에서 찾아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하는 이야기로는 말문을 열 수 없었을까 궁금합니다.
책읽기는 경력이나 권위나 학력이나 자랑이 아니거든요. 어떤 책을 먼저 빨리 읽었다고 더 빼어나거나 훌륭하지 않거든요. 어느 책을 못 읽었다 해서 바보이거나 멍텅구리가 아닙니다. 어떠한 책을 수없이 되풀이 읽었다 해서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이야기하려면, 책에 앞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내놓으려면, 책과 함께 삶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내밀겠다 하면, 책 둘레에 얽힌 발자국과 손자국을 나란히 읽어야 합니다. (4342.11.14.흙.ㅎㄲㅅㄱ)
┌ 《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 글 : 강상중 / 옮긴이 : 이목
└ 책값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