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읽는다 -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강상중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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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나한테 "이 책을 왜 '별 둘'만 붙였어요?" 하고 묻는다면, 

"별 하나만 붙이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꾸하리라. 

 

누군가 나한테 "이 책이 어째서 '별 둘'밖에 안 되나요?" 하고 묻는다면, 

"네, 별 셋을 붙이는 대신 '시간도 돈도 아까운 책'에 넣어 드리지요." 하고 대꾸하리라.

 


 책읽는 일본사람, 책 안 읽는 한국사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4] 강상중, 《청춘을 읽는다》


.. 나는 도쿄 역시 ‘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이 상태로 가다가는 그렇게 될 것만 같다 ..  (61쪽)


 저는 서울 또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대로 가다가는 깡그리 무너지고 조각조각 부서지고 끝없이 망가지며 갈가리 쪼개지다가는 폭삭 주저앉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서로 이름값 높이고 이름값 지키며 이름값 부풀리는 데로 치닫는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돈벌이 힘쓰고 돈벌이 매달리며 돈벌이 생각에 가득하다면 부서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도나도 겉치레 밝히고 겉치레 키우고 겉치레 사로잡히다가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가방끈 붙잡고 가방끈 늘리며 가방끈 내세우다가는 쪼개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같이 쇠밥그릇 살찌우고 쇠밥그릇 홀로 차지하며 쇠밥그릇 빼앗으려고 싸우다가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산시로 같은 느긋한 성격의 청년은 멸종되고, 반쯤은 여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모라토리엄을 만끽하는 학생들이 대학 캠퍼스를 활보하고 있었다 … 《산시로》를 읽고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이 청년에게는 땅에 배어 있는 피와 땀의 기억과 같은 것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41, 49쪽)


 해 떨어지고 늦은 저녁,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단단하고 억센 쇠밥그릇을 붙잡고 있는 공무원하고 마주해야 하는 자리가 몹시 낯간지럽고 벅차서, 저녁을 나누는 자리에서 홀로 일어나 밥집 문을 쾅 닫고 나갔습니다.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 ‘민간인’하고 어울리는 자리에서까지 그 티를 버리지 못해야 할까 딱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며 겉치레만을 살피는 매무새로 넉넉히 일삯을 받고 연금을 챙기면 세상 부러울 구석이 없다고 여기지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공무원들은 책을 읽을까요? 이 공무원들도 아이들한테 ‘훌륭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좋은’ 책을 사다 주어 읽힐까요? 이 공무원들은 당신 딸아들한테 어떤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이 공무원들한테 믿음이 있다면 성경이나 불경을 읽을까요? 성경이나 불경을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할까요? 나라안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이원수 어린이문학과 권정생 어린이문학을 당신들 딸아들한테 읽힌 적이 있겠지요? 공무원 당신들은 이원수 권정생 책을 한 권쯤 읽어 보았을까요?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 처음 상경했을 때는 그저 ‘도쿄는 대따 크구나’하고 감탄하기만 했는데, ‘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북적거리는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해 보면, 모두들 얼굴은 있어도 아침 출근길의 러시아워 때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돌변해서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교성이 난무하고, 그런 북적거림 속에서도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 사람들이 부산스레 오가고, 그 뒤로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맹렬한 기세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몸부림치는 그런 세계 속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영원불멸한 것을 생각하려 해도 그런 것은 허황된 거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  (81, 83쪽)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재개발 사업에만 눈이 먼 공무원하고 날마다 마주해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성과 내는 사업에만 몸바치는 공무원하고 늘 부딪혀야 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삶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한테 이런 삶이 주어졌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숱한 공무원하고 부대끼는 동안, 이 공무원이든 저 공무원이든 책을 읽지 않음을 낱낱이 깨닫습니다. 이 공무원이든 저 공무원이든 저마다 붙잡는 책에 담긴 속살이나 알맹이를 옳게 붙잡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맛보지 못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훌륭한 줄거리 담은 책을 훑으면서 훌륭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스스로 훌륭한 삶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재미난 얘기 넘치는 책을 읽으면서 참된 재미를 곰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재미난 사람이 되어 재미나게 일하는 매무새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책은 그저 시간 때우기일까요? 책은 한낱 시간 죽이기일까요? 책은 그냥 책일 뿐이니, 읽는 이하고 쓴 이하고는 동떨어진 삶일까요? 줄거리만 욀 수 있으면 책읽기가 끝일까요? 줄거리를 읊을 수 있으면 책을 잘 읽은 셈일까요? 독후감 숙제를 낼 수 있고, 이 숙제가 100점을 받으면 책을 가장 잘 읽은 셈일까요?


.. 어째서 내 부모의 나라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렇듯 비참한 기분에 젖어야 하는 것일까? 왜 … 그러나 보들레르의 비극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무리를 지어 스스로 전위임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리고, 음모를 꾸미듯 정치에 정신이 빠져 있었더라면 아마 이런 작품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 전위가 되려다 결국 피에로로 끝났을 때,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전향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 좋고 나쁘고를 떠나 결국 그들은 소시민적인 안일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근거지를 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  (100, 104, 107, 108쪽)


 책이란 모두 같은 책입니다. 헌책방 헌책과 새책방 새책과 도서관 장서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모두 같은 ‘책’입니다. 겉이 좀 헐어도 책이요 갓 찍어 따끈따끈해도 책이며 도서관 딱지가 붙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책입니다. 오늘 읽혀도 책이요 내일 읽혀도 책이며 글피에 읽혀도 책입니다. 부자가 읽어도 책이고 가난방이가 읽어도 책입니다. 대학교수가 읽어도 책이고 구멍가게 할배가 읽어도 책입니다. 가정주부로 일하는 연변조선족 아줌마가 읽어도 책이며 까맣고 큰 차를 끌고다니는 아줌마가 읽어도 책입니다.

 책이란 모두 다른 책입니다. 내가 읽는 책과 네가 읽는 책이 다릅니다. 똑같다고 하는 책을 읽을지라도 받아들이는 가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책입니다. 지난해에 읽을 때와 올해 읽을 때 깨닫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책입니다. 우리들 하는 일이 모두 다르며 비슷한 일을 하더라도 생각과 느낌과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는다 하여도 마음을 사로잡는 대목이 다르고 눈길을 끄는 글월이 다릅니다. 우리는 다 같은 책을 다 다르게 읽을 뿐 아니라, 다 다른 책을 또한 사뭇 다르게 읽습니다.


.. 1968년에 착공해 1970년 초여름에 완공된 4차선 경부고속도로는 총 길이 425킬로미터, 폭 22.4미터의 대동맥으로, 이 도로에 의해 서울과 부산은 1일생활권이 되었다. 이 대동맥의 완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은 농어촌 근대화와 소득증대를 내걸고 새마을운동을 추진했다. 그것은 ‘근면ㆍ자조ㆍ협동’을 슬로건으로 하여 위로부터의 힘으로 유교적 가족주의와 공동체의식을 파괴하고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는 국민을 양성하려 한 것이었다 … 너무나 무더운 날씨에 어느 마을 사거리에 차를 세우고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작은아버지가 마을 사람 하나와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곁에 앉아 꿈쩍 않고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자넨 일본서 왔는가보이. 여기선 다들 입이 무거워 아무 말도 안 하지만, 파쇼야, 이 나란. 일본인들 있을 때보다 더 심해. 그러니 자네도 경솔한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말게나.” 더듬더듬, 그러나 똑똑히 들려오는 일본어에 깜짝 놀라 절로 몸이 젖혀졌다. 게다가 ‘파쇼’라는 단어가 너무도 뜻밖이어서 얼토당토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 노인이 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가 돌아오자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언론통제와 상호감시가 궁벽한 시골 구석구석까지 눈을 번득이고 있었던 것이다 … 땅바닥을 기는 듯한 하층노동자의 빈곤과, 그들의 머리 위를 달리는 고속도로. 이 두드러진 대조는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  (143∼145, 156쪽)


 사람 숫자만큼 책이 있습니다. 사람 숫자만큼 책이 골고루 있습니다. 사람 숫자만큼 다 다른 삶이 밴 다 다른 이야기가 어우러진 다 다른 책이 있습니다.

 저는 새책방보다 헌책방을 즐겨찾지만, 새책방 또한 곧잘 찾습니다. 새책방에서는 새로 나온 책을 흔히 찾아 읽으려 하지만, 갓 나온 책보다는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거나 촉촉하게 적시는 책을 찾으려 합니다. 헌책방에서는 판이 끊어진 안타까우면서 아름다운 책을 찾아 읽으려 하지만, 굳이 지난날 책을 찾는다기보다는 제 넋을 올바르게 이끌거나 제 얼을 알차게 일굴 수 있는 책을 찾으려 합니다.

 새책방에서 책을 살 때에는 ‘내가 이 책 하나를 사면서 이 좋은 책을 힘껏 펴내 준 출판사한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기쁩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 때에는 ‘내가 이 책을 사면서 이 반가운 책을 애써 캐내고 건져내어 새로 읽힐 수 있도록 손질한 일꾼들한테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구나’ 떠올리면서 즐겁습니다.

 출판사 눈으로 보자면 도서관에서 책을 갖추는 일이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 책은 ‘한 권으로 수십 사람이 읽거나 수백 사람이 읽기’까지 하니까요. 그런데 어떠한 출판사 일꾼도 ‘도서관에서 책을 사들이는 일’을 꺼리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출판사 일꾼은 헌책방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는 일을 몹시 꺼리고 싫어합니다. ‘헌책방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기 때문에 새책이 하나 덜 팔린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따지면, 헌책방에서 팔린 책은 한 권이요 고작 한 사람이 읽을 뿐이고, 도서관에서 사들인 책은 하나 갖고 수많은 사람이 읽으니, 도서관에서 책을 사들일 때야말로 ‘출판사 매출에 손해’일 테지만, 이렇게 낱낱이 따지고 살피는 출판사 일꾼은 아직까지 없는 줄 압니다.


..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절제와 근면과 노동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일한다 해도 돈을 벌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돈벌이가 뭐가 나쁘냐’라는 탐욕이 당당하게 행세하게 된다 … 이치로나 마쓰이 히데키 선수는 야구 배트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100만 엔을 벌어들이지만, 나는 1년 동안 일해도 200만 엔밖에 벌지 못한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면 지역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해 준다. 나는 거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  (226, 230∼231쪽)


 재일조선인이요 재일지식인인 강상중 님이 쓴 《청춘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당신이 젊은 날 읽으며 가슴에 알알이 맺히거나 새겨진 책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이 책만큼은 읽어 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은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 강상중 님은 일본에서 일본말을 쓰면서 살기에 마땅히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을 쓸 텐데, 《청춘을 읽는다》라는 책에서도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턱턱 막힙니다. 지난 2004년에 나온 《소년의 눈물》이라는 책에서도 ‘자이니치’라는 일본말은 몹시 껄끄러웠습니다. 일본에서 일본말을 하며 살아갈 때에는 마땅히 ‘자이니치’일 테지만,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며 살아가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때에는 마땅히 ‘재일’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나라 이름은 ‘한국’이지 ‘코리아’가 아니며, 나라밖 사람이야 우리를 가리켜 ‘코리아’라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가리켜 ‘코리아’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청춘을 읽는다》를 펴낸 출판사와 옮긴이는 굳이 ‘자이니치’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이 낱말 하나 때문에 책을 못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낱말 하나쯤이야 살며시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얼마든지 지나쳐도 됩니다. 또한, ‘자이니치’란 일본말을 곰곰이 곱씹으면서 우리 터전을 돌이켜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에는 아쉬움이 여러 가득입니다. 한 가득이나 두 가득조차 아닌 여러 가득입니다. 강상중 님 당신한테 젊음을 빛내 준 책 몇 가지라고 하나, 우리가 굳이 이 책들을 같이 읽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깜냥껏 우리 터전에 따라 우리 마음을 빛낼 책을 찾아야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다 다른 우리들은 다 다른 책으로 우리 젊음을 뽐내고 즐기고 누리고 나누며 어깨동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강상중 님이나 《청춘을 읽는다》를 펴낸 출판사나 ‘꼭 이 몇 가지 책을 읽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 《청춘을 읽는다》는 이 나라 젊은이가 또다른 새로운 책으로 저마다 다른 젊음을 다 다른 모양새로 가꾸고 일구라는 쪽으로는 줄거리를 펼치지 않았습니다. 강상중 님 젊음을 흔든 책 몇 가지에만 눈길을 맞추면서 이 책이야말로 ‘젊음을 흔드는 책’이라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되풀이했습니다.

 얼마 앞서 유시민 님도 《청춘의 독서》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청소년책이 몹시 드물며, 청소년책을 꾸준히 내는 출판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주 적습니다. 처음 출판사를 열 때부터 오늘까지 한결같이 청소년책을 내는 외곬로 내는 출판사로는 ㅇ 한 곳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ㅇ이라는 출판사는 아직 ‘청소년이든 젊은이이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책’은 한 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푸름이나 젊은이한테는 ‘이 책을 읽자’고 하는 말보다 ‘이런 책이 있고 저런 책이 있으니, 저마다 눈길과 입맛과 마음에 맞는 책을 하나쯤 살피면서 저마다 다 다른 우리 삶을 생각하고 붙잡자’고 하는 몸짓으로 숱한 이야기책을 내놓을 뿐입니다.


.. 우리는 햇살 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는 건전한 청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남녀는 병적일 만큼 수척하고 뒤틀리고 문드러진 나체의 소유자들뿐이다 ..  (96쪽)


 강상중 님 책이나 유시민 님 책이나 똑같이 ‘젊음을 빛내고 일깨운 책은 이러저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분이 손꼽은 책들은 모두 ‘고전’이라 일컬을 만한 책입니다. 가벼운 책이 없습니다. 가볍게 손에 쥐고 읽을 책이 없습니다. 무거운 책입니다. 무거워 손이 덜덜 떨리는 책만 들추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강상중 님이나 유시민 님 삶이나 눈높이에서 젊은이한테 《원피스》를 읽으라 하거나 《꽃보다 남자》를 들추라 하지는 못하겠지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나 《현시연》을 펼치라 하지도 못할 테고요.

 다시 한 번 책을 펼쳐서 읽어 봅니다. 책을 살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밑줄을 그었던 대목 말고는 왜인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니다. 밑줄을 그었던 대목도 한 번 더 돌아볼 만할 뿐, 가슴을 콩쾅쿵쾅 뛰도록 하지 않습니다.

 거듭 책을 덮고 생각합니다. 우리 젊은이한테 ‘자, 젊은이들아 책을 읽자!’ 하고 이야기를 하겠다면, 젊은이들 가슴을 쾅쾅 울리거나 소복소복 적시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젊은이들한테 ‘이 책만큼은 젊을 때 반드시 읽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내 젊을 때 이 책들로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오늘을 사는 젊은이한테는 어떤 책이 가슴이 울렁거릴까요? 저마다 다 달리 가슴을 울렁이도록 하는 책을 다 다른 삶자리에서 찾아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하는 이야기로는 말문을 열 수 없었을까 궁금합니다.

 책읽기는 경력이나 권위나 학력이나 자랑이 아니거든요. 어떤 책을 먼저 빨리 읽었다고 더 빼어나거나 훌륭하지 않거든요. 어느 책을 못 읽었다 해서 바보이거나 멍텅구리가 아닙니다. 어떠한 책을 수없이 되풀이 읽었다 해서 슬기롭거나 똑똑하지 않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이야기하려면, 책에 앞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내놓으려면, 책과 함께 삶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내밀겠다 하면, 책 둘레에 얽힌 발자국과 손자국을 나란히 읽어야 합니다. (4342.11.14.흙.ㅎㄲㅅㄱ)


 ┌ 《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 글 : 강상중 / 옮긴이 : 이목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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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09-11-16 16:56   좋아요 0 | URL
(돌베개 편집자께서 댓글을 두 가지 더 달다가 지우셨군요. 제 편지에 몇 조각이 남아 옮겨붙어 본다면)

제 생각이 너무 짧아 그런지, 된장 님이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네요.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 나서 "이 책은 그야말로 읽을 값어치가 없구나" 생각하셨다니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좋다, 싫다 단정을 할 때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고 '책'에서 배웠습니다. 친절하게는 아니더라도 왜 제 생각이 너무 짧은지, 이 책에 5점이라는…

"제가 이런 글을 왜 썼는지, 편집자님께서는 하나도 알아채고 있지 않으십니다." 네, 전혀 모르겠습니다. "편집자님 생각이 너무 짧구나 싶습니다." 죄송하실 것은 없습니다만, 좀 무책임하신 듯합니다. 저는 편집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된장 님께서 이 책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신 부분이 있는 듯하여 제 생각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물론, 이 책이…

숲노래 2009-11-16 17:03   좋아요 0 | URL
편집자께서는

(1) '돌베개 편집자'로 이 책을 생각하는지
(2) '돌베개 책만 읽는 독자'로 이 책을 바라보는지
(3) '출판노동자'라는 편집자로 이 책을 생각하는지
(4) '모든 책을 고루 사랑하는' 독자로 이 책을 바라보는지

'겸연'하게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도 '남이 쓴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댓글을 달아 놓는 일은 '제가 알음알이로 아는 출판사 책이라고 별 다섯을 붙이는 일 없이, 모든 책에 모두 공정하게 평가를 하며 별과 비평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짜증스럽고 딱합니다. 책을 그런 매무새로 만듭니까? 당신이 만든 책에 평점이 낮아 기분이 나쁩니까?

어떤 작가는 제가 별 둘을 붙이고 비평도 몹시 안 좋게 했지만, 옳게 읽어내 주었다면서 고마워 했습니다. 그 작가 스스로도 책이 나온 뒤로 좀더 야무지게 글을 여미지 못했음을 느꼈다며 부끄러워 했고, 앞으로 새 책을 쓸 때에는 모두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모든 책에서 모든 알맹이를 다 집어낸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거짓말을 하는 책에서는 거짓말을 느낍니다. 돈맛에 들린 책에서는 돈맛을 읽습니다. 사랑을 말하는 책에서는 사랑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는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습니다.

강상중 님 책에서는, 아쉽게도, 겉치레와 조금 우쭐해 하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되었던 줄거리였으며, 재일조선임임을 들먹이려 했다면, 아직 제가 소개글은 안 썼지만, '고사명'이라는 분이 쓴 <산다는 것의 의미>라고 하는 아주 놀라운 책이 있습니다. 재일조선인 젊은이한테든 일본 젊은이한테든 한국 젊은이한테든 '젊음을 불태우는 삶과 책'을 말하려 한다면,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 "발가락 때만큼이라도 글에 온힘을 바치고 불태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100점 만점에 5점조차도 섣불리 붙일 수 없습니다. 그나마 강상중 님 책에서는 '참된 마음'이 어느 만큼 드러났다고 느껴서 0점이 아닌 5점입니다.

부디, 돌베개라는 출판사 편집자인 당신께서, 이 책 <청춘을 읽는다>가 얼마나 "청춘을 못 읽고 안 읽고 엉뚱하게 읽은" 책인지를 깨닫고, 앞으로 '돌베개' 이름을 내걸고 나오는 책이 뜬금없거나 쓸개빠진 쪽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돌베개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붙인 댓글은 그동안 '돌베개'에서 나온 숱한 아름다운 책에 먹을 바르는 슬픈 몸짓입니다.

지나가다 2009-11-24 10: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건 뭐 시비를 걸자고 작정하고 비뚤어지게 자기 주관을 마구 읊어대는 전형적인 글이군요. 꼬인 마음과 잘난척하는 유치함, 무조건 소수 의견으로 강요해대는 관성 같은 것들이 글에 지독하게 배어 있는 느낌입니다. 출판사 직원분이 호의로서 좋은 댓글을 달았으나 악바친 시비걸기 글에 그 의미가 사라지는 모습을 봅니다. 자기가 책에 대해 평하는 것이야 자유겠으나 이 글은 자유로운 서평보다는 흠집내기를 즐기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숲노래 2009-11-24 14:25   좋아요 0 | URL
시비걸기로만 읽으셨다니 죄송합니다.

그러나, 시비걸기로만 읽으신 지나가다 님 마음씀이 슬픕니다.

저 또한 이러한 책을 '좋은 뜻'에서 비평을 하고 비판을 하지,
아예 쓰레기 같은 책이라면 사지도 않고 읽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지나가다 2인 2009-11-29 00: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책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니 참 흥미롭습니다. 그렇기에 된장 님께서 위에 쓰신 그야말로 '책이란 다 다른 책'인 거겠죠.

허나...님께서 이 책에 대해 비판하신 부분에 대해 제가 '전혀' 공감할 수 없음은 단순히 다 다른 책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그리고 오히려 이 책의 편집자님께서 조목조목 달아주신 답변들에 대해 죄송하게도 거의 100% 공감하게 됨은 또 왜일꺄요.

저는 책을 복잡하게 읽지도 못하며 또 복잡한 책은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는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그게 흔히 얘기하는 소통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된장 님께서도 댓글에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이 책 '청춘을 읽는다'는 방금 막 완독했구요, 책을 읽고 나서 강상중 님에 대해 여러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 서핑을 하다 우연히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은...'꽤 괜찮다'입니다. 예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던 대목을 저자께서 다시금 되새겨주셔서 반갑기도 했고 제가 잘 몰랐던 일본에 대해서 아주 작게 나마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편집자 님께서 올려주셨던 것처럼 저자가 읽었던 책 중에 어떤 건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건...흠...별로겠어...라고 쉽게 넘겨버렸습니다. 전혀 '이 책이야말로'라는 강제성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잘못된 건가요?

그리고...된장 님께서 답해주신 내용 가운데

'제가 이런 글을 왜 썼는지, 편집자님께서는 하나도 알아채고 있지 않으십니다.

편집자님 글을 읽은 느낌은, "이 책은 그야말로 읽을 값어치가 없구나"일 뿐입니다. 아쉽지만, 편집자님 생각이 너무 짧구나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말입니다. 솔직히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한 번 꼬인 걸 놓고 상대방이 마음 터놓고 풀어보려했는데 너무도 처참하게 무안주며 "야~ 너 진짜 못 알아듣는구나 너 그 수준밖에 안되니 우리 서로 말 섞지 말자"라고 하는 걸로 밖에 안보입니다.

아, 그리고 이건 또 뭔가요?

(1) '돌베개 편집자'로 이 책을 생각하는지
(2) '돌베개 책만 읽는 독자'로 이 책을 바라보는지
(3) '출판노동자'라는 편집자로 이 책을 생각하는지
(4) '모든 책을 고루 사랑하는' 독자로 이 책을 바라보는지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된장 님께서는 (4)번의 입장에서 편집자 님이 댓글을 다시길 원했던 건가요. 글쎄요. 저는 위의 어느 입장이든 상관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자신의 위치에서 진실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거 계속 얘기가 길어지는데요. 안하고 지나가면 안될 것 같아 이어봅니다.

'그렇게도 '남이 쓴 글'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댓글을 달아 놓는 일은 '제가 알음알이로 아는 출판사 책이라고 별 다섯을 붙이는 일 없이, 모든 책에 모두 공정하게 평가를 하며 별과 비평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짜증스럽고 딱합니다. 책을 그런 매무새로 만듭니까? 당신이 만든 책에 평점이 낮아 기분이 나쁩니까?'

왜 함부로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왜 함부로 평점이 낮아 기분이 나빴냐고 지래짐작하십니까? 이상하죠. 오히려 '제대로 읽지 않은 분'은 된장 님인 것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된장 님의 글에 대한 반박(?)은 이미 편집자 님께서 충분히, 그리고 속시원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덧붙인다면 그야말로 사족일 수 밖에 없을 듯 싶습니다. 아, 끝으로... 지나가다 님께서 써주셨듯이 '시비걸기'로 읽혀지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않으셨으면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한 번은 우연일지라도 두 세번 반복되면 그건 어떤 이유가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숲노래 2009-11-29 08:44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이든 그 사람이 지내온 삶에 따라 '읽기'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 삶에 따라 '좋게' 받아들일 수 있고 '아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강상중 님은 겉멋이나 겉치레로 살아온 분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강상중 님 책이 더없이 부질없거나 안타깝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어느 만큼 '독자를 얻을' 수 있겠으나 더 깊은 골을 찬찬히 짚지는 않았다고 느낍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쓴 <보도사진가>라든지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쓴 <슬픈 미나마타>라든지 얼마 앞서 유선진 할머니가 쓴 <사람 참 따뜻하다>라든지, 또는 팔리 모왓 님이 쓴 <잊혀진 미래>라든지 시모무라 고진 님이 쓴 <지로 이야기> 같은 책을 '가슴으로 새기며' 읽을 수 있으면 <청춘을 읽는다>에서 "청춘"과 "읽는다"가 제대로 삭여지지 못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쓴 글을 '시비걸기'로 느끼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시비걸기로 느끼는 분은 언제까지나 시비걸기로만 여기며 그 테두리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글에 '시비 거는' 사람이 '시비만 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뜻으로든 궂은 뜻으로든 '이야기 걸기'일 테니까요. 제가 보지 못한 대목을 짚으며 시비를 건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눈길로 그예 트집잡기에 지나지 않으면 웃습니다 :)

지나가다 2인 2009-11-29 00: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그리고 된장 님께서 추천해주신 '산다는 것의 의미'는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넣어놓겠습니다.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숲노래 2009-11-29 08:4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을 읽는 분들이 '사람 삶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땀흘린 책을 알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저는 <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같은 만화책 또한 퍽 좋아하는데, 우리 옆지기는 <마법사에게 소중한 것>이나 아다치 미츠루 만화는 좀 시큰둥하게 보더군요... <단순하고 소박한 삶> 같은 책은 4/5까지는 괜찮았는데 끄트머리 1/5에서 영... 어긋나 버려서...

지나가다3인 2009-12-02 17:5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타깝습니다. '슬픈 미나마타'의 리뷰를 보고 된장님 블로그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요. 윗분도 지적해주셨다시피 모든 일이 한 번은 우연일지라도 두 세번 반복되면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편집자분이 지나가다가 몇 가지 정중하게 의문을 표한 글에 된장님이 다신 댓글은 근거와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적어도 정성스럽게 책을 편집한 사람이 직접 남긴 댓글이니만큼, '편집자님의 생각이 너무 짧구나 싶습니다'라는 말로 그 글을 깔아뭉개는 것만은 하지 않으셨다면 좋았을텐데요. 물론 솔직한 생각을 표시하는 것이 나쁜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만큼 상대방 입장도 고려했으면 더 나았을뻔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 세상은 뒤틀리고 비틀리며 엉터리로 가고만 있습니다'라는 말도, 편집자의 댓글 몇 개만으로 결론 내리기엔 무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


숲노래 2009-12-02 20:45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저는 제가 늘 가장 바르고 곧은 눈길로 사람과 세상과 삶을 들여다본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그날그날 살아가는 대로 적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요즈음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출퇴근하는 고달픈 고리'에 매여 있다 보니, 이런 댓글을 좀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번 <청춘을 읽는다> 같은 책은 굳이 서평을 달 만한 무게나 값이 없었다고 느낀 그대로 아예 글을 안 썼다면 더 나았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아주 나쁜 책'이 아니라 '무언가 놓친 지점이 많은 책'이기에 그 대목을 넌지시 이야기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띄운 곽아람 님 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와 같은 책이 '문제라거나 못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글쓴이와 편집자 모두 느끼거나 잡아채지 못하는 아쉬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무엇인가를 나중에라도 깨우쳐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님 말씀처럼 세상 모든 말과 생각은 '댓글 몇 개만으로 결론 내리기' 어렵습니다. 또한 결론은 함부로 내려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는 웬만한 댓글에는 아예 대꾸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느낍니다.

지나가다2인 2009-12-03 01:0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에 글을 올렸던 지나가다2인입니다.^^;;

제가 달았던 글에 된장 님께서 어떤 답변을 다셨는지 궁금해서 들어와봤는데 얘기들이 좀 엉뚱하게('당신'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말 논쟁) 흘러가고 있었네요.

다른 건 그냥 그렇다 치고, 일단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된장 님께서 '당신'의 용도가 다양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맞습니다. '당신'은 3인칭 극존칭으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거 '3인칭'입니다. 1인칭이나 2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쓸 때 극존칭이 되는 것이죠. 된장님의 예문도 3인칭인 경우의 문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신'이 2인칭이 될 때는 부부끼리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곤 존칭보다는 상대를 낮잡아 부르거나 편하게 부르는 용도가 되는 게 상식입니다. 된장 님께서 엠제이비 님을 호칭하실 때는 2인칭으로 '당신'을 사용하셨을테니 답은 어느정도 나온 것 같군요. 설령 된장 님께서 상대방을 높이는 용도로 '당신'을 사용하셨다고 해도 그건 전혀 일반적인 용법이 아닙니다. 백이면 백, 상대방이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그리고...쓰다만 글을 상대방 동의 없이 올린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보입니다. 엠제이비 님께서 사과를 요구하셨으나 무시하신 거 맞죠? 흠...

끝으로 '앞으로 웬만한 댓글에는 아예 대꾸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느낍니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악플을 단 것도 아니고 상식적인 수준의 댓글에 대해서 이렇게 반응하시면 블로그는 왜 하시는 건지 모르겟네요. 그냥 자기 컴퓨터 하드에 일기쓰듯 기록하시고 혼자 보고 싶으실 때 보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인터넷은 공공의 공간입니다. 검색하면 된장 님께서 쓰신 글들이 쫙 뜨는 거 아시잖아요. 그 공공의 공간에 글을 쓴다면 그 글을 통해 영향받을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책임감은 다양한 비판에 대한 겸허한 반응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된장 님께는 그런 면이 안보입니다. 아쉽네요.

숲노래 2009-12-03 05:59   좋아요 0 | URL
오늘날 우리들이 '당신'을 엉터리로 쓰고 있는데, 국어사전에서 이 흐름을 받아들여 '당신'을 '낮춤말'처럼 다루고 있습니다만, '너'나 '자네'나 낮춤말처럼 쓰는 낱말이고 '당신'은 예의를 갖추어 하는 말입니다. 또는 '싸움을 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엉터리로 쓰기 때문에 때때로 '님'이라는 낱말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쓰는 말을 옳고 알맞게 가누려는 마음이 없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자면 '님'이라는 낱말을 쓰는 일이 나을는지 모릅니다.

..

엠제이군 님은 '쓰다 만 글'이 아니라, 일부러 제 마음을 들쑤시려고 저만 보도록 해 놓은 악플을 그렇게 해 놓은 뒤 지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악플은 저한테 돌아오는 화살이 아닌, 바로 그런 악플을 쓰는 님한테 고스란히 돌아가는 글임을 알려드리려고 달아 놓았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른다면 이렇게 붙여놓는 일은 잘못입니다. 법에 따라서 사과하라고 한다면 잘못한 일이므로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삶을 돌아본다면,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을 그분이 느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왜 싸워야 하는가요?

책 하나를 놓고 어떤 이는 이런 마음을 느껴서 이런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데, 왜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가요? '느낌글' 하나를 놓고는 '동의나 반대'가 아닌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가 있을 뿐입니다.

..

말 그대로 웬만한 댓글에는 대꾸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 글에는 댓글이 안 달려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웬만하면 댓글을 안 달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댓글을 다는 분들 스스로 '이야기(소통)'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면, 서로한테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말이 좋아 인터넷이 '공공 공간'이지, 제대로 '공공 공간' 노릇을 안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저라고 하는 사람은 '공공인'이 아니라,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는 한 사람이지만, 저는 제 모습이 다 드러나도록 되어 있고, 다른 이들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댓글을 남깁니다.

님 말씀처럼 '다양한 비판'에는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양함'이라는 옷을 입고 '다양하지 않게 헐뜯는' 말에는 그리 달가이 받아들일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헐뜯기라 하여도 저한테는 밥이 되는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