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
편해문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노는 아이들’을 찍은 ‘노는 어른’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5] 편해문, 《소꿉》



- 책이름 : 소꿉
- 글ㆍ사진 : 편해문
- 펴낸곳 : 고래가그랬어 (2009.7.1.)
- 책값 : 3만 원



 (1) ‘노는 아이들’을 찍는 ‘노는 어른’ 편해문


 ‘편해문’이라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저는 편해문 님(1969년에 태어남)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도 편해문 님은 젊은이입니다. 당신 또한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편해문 님은 ‘우리 나라 어린이 놀이와 노래’를 찾아서 갈무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이는 1998년에 첫 책을 하나 내놓았는데, 이이가 내놓은 첫 책은 큰상 하나를 받았을 뿐 아니라(‘좋은 어린이책’이라는 이름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꾸준히 잘 팔리기까지 합니다. 어린이문화나 어린이문학을 즐기거나 살피는 분이라면 모르는 이가 드물며 안 읽은 이가 적은 《가자 가자 감나무》와 《동무 동무 씨동무》라고 하는 책이 이때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어린이노래와 어린이놀이를 다룬 책을 띄엄띄엄 썼고, ‘어린이와 어버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 아닌 학술책으로 《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박이정,2002)하고 《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민속원,2005)를 냈습니다. 기운이 빠졌기 때문일까요, 깊이있게 학문을 파고들면서 우리 문화와 삶과 교육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어린이노래와 어린이놀이를 ‘학문’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2008넌에 다시금 낸 《문경의 어른과 아이들 노래를 찾아서》(민속원)를 생각해 본다면, 편해문 님은 틀림없이 뒤쪽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나라는 우리 노래와 놀이를 학문으로 살피지 않으며 다루지 못합니다. 한편, 학문으로 ‘국어’는 있되 옳고 바르게 가누거나 가다듬을 ‘우리 말’은 없으나, 놀이와 노래는 학문으로는 없어도 삶으로는 오래도록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놀이와 노래마저 사그라듭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계집아이는 씨가 말랐습니다. 딱지를 접을 줄 아는 사내아이라든지 운동화 끝으로 흙땅(또는 흙운동장)에 금을 그어 갖가지 금긋기놀이나 잡기놀이를 할 줄 아는 어린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를 주워 새총을 만들거나 헌 나무젓가락을 모아 고무줄총을 엮는 어린이는 몇이나 될까요. 하다못해 공기놀이나 소꿉놀이를 돌멩이를 그러모아 할 줄 아는 어린이는 있기나 할까요. 말꼬리 잡는 놀이라든지 맨손으로 하는 놀이를 열 가지쯤 할 줄 아는 어린이는 얼마나 될까요. 아니, 아이들한테 이러쿵저러쿵 따지기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이 같은 놀이를 잊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동생들한테 우리 놀이와 노래를 물려주지 못하거나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가 되면서 아이들을 닦달하고 들볶으며 갖은 지식을 머리속에 일찌감치 쑤셔박는 데에만 마음을 씁니다. 아이들이 또래 동무를 찾아다니면서 얼굴과 무릎이 까지고 깨지고 멍들고 찢어지고 하는 꼴을 보아주지 못합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옷이 흙범벅이 되도록 뛰어놀도록 풀어 놓지 못할 뿐 아니라, 풀어 놓을 놀이터나 골목길이 없습니다. 골목길이 겨우 남았어도 우리 어른들이 장만한 자가용이 버티고 앉아 있으니 놀 수 없습니다. 골목길에서 빵빵대는 자가용은 이웃집 자가용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몰고 있는 자가용입니다.


.. (어른한테서) 버려진 것이 소꿉놀이에서는 주인공입니다 ..  (19쪽)


 한동안 조용하던(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책을 내지 않아) 편해문 님은 2006년에 이르러 비로소 《산나물아 어딨노?》(소나무)를 내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이듬해 2007년에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소나무)를 내고, 다음해 2008년에는 《께롱께롱 놀이노래》(보리)를 내놓습니다. 2009년을 코앞에 둔 2008년 11월에는 거듭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소나무)를 써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책으로 우리 어린이문화를 북돋우고자 하면서 ‘내가 죽은 줄 아쇼?’ 하고 목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올 2009년 7월, 사진쟁이도 아닌 주제(?)에 당차게 사진책 《소꿉》을 떡하니 내놓습니다.


.. 놀다 보면 웃습니다. 웃다 보면 행복하지요. 논다는 것은 행복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  (53쪽)


 저는 편해문 님을 1999년부터 만났습니다. 해수로 치면 퍽 깁니다. 다만,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만난 횟수는 열 차례쯤 될까 말까 할 뿐입니다. 열 해에 걸쳐 열 차례 안팎 만나는 동안, 편해문 님 어깨나 손에 ‘사진기 들린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에만 해도 사진이 꽤 많이 실렸습니다. 이 책을 펴낸 책마을 일꾼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여쭈었더니, 책에 못 넣은 ‘좋은(그러니까 애틋하고 눈물겹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아주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며 머잖아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만으로 책을 하나 낼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로서는 띄엄띄엄 만났으며, 만나는 자리 또한 ‘(편해문 님이 사진감으로 삼은 어린이) 사진을 찍을 만한 자리가 아니었’으니, 편해문 님 어깨에 사진기가 걸린 모습을 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지요. 제 사진감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굳이 사진기를 꺼낼 까닭이 있겠습니까. 저는 제 사진감이 없는 자리에서도 어깨에 사진기를 걸쳐 놓고 있습니다만, 사진기를 어깨에 걸쳐 놓고 있어도 제 사진감이 없으면 그냥 걸치기만 할 뿐 사진기를 들지 않습니다. 편해문 님은 ‘사진쟁이도 아닌’데,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니기를 바랄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우리 둘레 이 나라 아이들은 놀이터와 쉴 곳이 마땅하지 않은 탓에, 찻길에서도 놀고 제 엄마아빠 일터인 구멍가게나 약국이나 부동산에서도 놉니다. 밥집에서도 놀고 학교 골마루에서도 놉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편해문 님은 이런저런 ‘아이들 노는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을 테며, 이런저런 ‘오늘날 도시문명사회 어린이들 노는 모습’을 두 눈과 사진기 눈으로 골고루 담아내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도를 비롯한 (퍽 가난한) 아시아 나라 아이들이 꾸밈없이 놀고 어울리고 복닥이는 모습을 담은 사진책 《소꿉》을 엮은 힘과 손길로, 우리 나라 어린이들 놀이 문화를 담은 사진책을 새롭게 펴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요사이 아이들이 싱그러움을 잃거나 아름다움을 놓치거나 재미남과 신남을 모른다 할지라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요. 잃어버린 아이들은 잃어버린 아이들대로 우리가 사랑하고 보듬고 껴안아야 할 테니까요. 잃어버린 아이들이면서도 이 가운데에도 빛줄기를 품은 모습을 찾을 수 있고, 놀이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이 사라진 모습에서도 깨알만 한 빛깔을 잡아채면서 고이 가꿀 수 있을 테니까요.
 





 (2) 놀이가 없으니 일이 없고


 여느 날이라면 낮 두어 시쯤 지나고부터 골목길에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서너 시쯤부터라면 웬만큼 많이 보이고 네다섯 시라면 꽤 많이 보입니다. 제가 사는 인천에는 대안학교가 꼭 한 군데 있기는 하지만, 인천에서 제도권학교를 안 다니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으며, 학교를 아예 안 다니고 집에서 배우는 어린이도 거의 없다 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길과 골목에 아이들이 물결을 칩니다.

 물결을 치는 아이들은 아이들 깜냥껏 놀이를 합니다. 학원가방을 한손에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돌을 차면서 걸어가는(이 또한 놀이입니다) 아이가 있고,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며 뒤엉키는(가장 자주 봅니다) 아이가 있으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라든지 술래잡기를 하는(아주 드물게 봅니다) 아이가 있습니다. 연장을 쓰는 놀이라면 혼자서 하는 줄넘기하고 배드민턴쯤입니다. 어쩔 수 없겠으나 줄넘기줄을 길게 이어서 종아리에 감아 고무줄을 하는 아이는 볼 수 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골목에 나와 볕바라기를 하거나 이웃하고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가운데 아이들한테 놀이를 가르쳐 주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팽이를 친달지 연을 날린달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달지 흙놀이를 한달지 하는 모습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뽑기나 ‘과자에 딸린’ 선물이나 카드패 같은 녀석으로 빼앗기 놀이를 하는 모습은 드문드문 봅니다. 엄마를 따라 훌라후프를 하는 아이도 제법 됩니다. 그러나 이 훌라후프로 굴렁쇠를 놀거나 뛰기놀이를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돌치기(비석치기, 비사치기, 망까기) 놀이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는데, 동네에서 돌치기를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네에 ‘돌’이 어디 있겠어요? 요사이는 골목길에도 ‘돌’은 없습니다. ‘흙’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놀이가 꽁꽁 틀어막혀 있습니다. 놀이가 살아남아서 고이 이어올 구멍이 없습니다.


.. 놀이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일입니다. 만약 놀지 않으면 추억도 없을지 모릅니다 ..  (70쪽)


 제 고향동네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분들은 으레 ‘웃는 할머니’나 ‘찌푸린 할머니’나 ‘웃는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곤 합니다. 저는 동네 할머니이든 어린이이든 섣불리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그림으로 좋아 보인다 해서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지 않습니다. 이 어르신과 아이들은 ‘그림’이 아니라 ‘삶’이거든요. 그리고 이 어르신과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한테 삶을 빼앗긴 채 자꾸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거든요.

 우리 옆지기가 아이를 낳기 앞서인 2007년에 동네 꼬마들한테 고무줄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고무줄은 전통놀이 아니에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텔레비전 만화영화 〈검정고무신〉에나 나오는 놀이이며, 저희들이 놀 만한 놀이가 아니라, ‘전통이니 민속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며 박물관에서 찾아보거나 교과서에 적히는 숙제거리쯤으로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그래, 처음에는 낯설어 하고 그리 재미없는 듯 여기더니, 며칠 뒤부터는 퍽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러나 고무줄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하나도 모르고, 어떻게 다음 차례로 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어찌어찌 넘어가는지 모를 뿐 아니라, 어떻게 즐기면 좋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새 길을 찾으며 푹 빠져들지 않는다면, 이 동네 아이들로서는 한두 해 뒤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옛적 전통놀이’로만 남을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어울려 놀아야 서로 다름을 배웁니다 ..  (80쪽)


 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어른들 또한 놀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지 못하고 놀 겨를이 없으며 놀 동무를 찾기 힘듭니다. 어른들 또한 놀지 않으며 놀 돈이 없다 투정인 가운데 놀 겨를에 돈벌이를 걱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서로 놀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합니다. 서로서로 내 몸과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이런 모습이 하루하루 이어집니다. 우리 손으로 일구는 문화란 어느 결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이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아먹듯 구경만 하는 문화만 자리잡습니다. 돈을 들여 마을잔치나 큰잔치를 벌여야만 놀이가 이루어지는 듯 생각하고 맙니다. 스스로 조촐하게 즐기며 나누던 잔치와 놀이는 새롭게 움을 트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동네 골목길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놀이가 없는 아이들을,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을, 놀이를 모르거나 잊은 아이들을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넋과 얼을 듬뿍 보여주는 아이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골목길 아이들을 찍어야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해맑은 마음과 꿈을 가득 드러내는 아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골목동네 아이들을 담아야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만든 것은 언제나 놀이였습니다 ..  (111쪽)


 편해문 님 사진책 《소꿉》은 우리 나라에서 우리 어른들이 내버리거나 내팽개친 ‘놀이’와 ‘사람’과 ‘삶’이 골고루 어우러져 있습니다. 놀이하는 사람과 놀이하는 삶이,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 있는 놀이가 고루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 찍는 솜씨’나 ‘사진 멋지게 나오도록 하는 재주’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이런 솜씨나 재주를 부린다면 사진맛은 아주 망가져 버립니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어린이 눈길과 눈높이와 눈썰미가 되어야 하며, 찍는 내가 찍히는 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을 찍을 때에도 그러하고, 바다를 찍을 때에도 그러합니다. 모델을 찍든 먹을거리를 찍든 다르지 않습니다. 찍는 나를 잊거나 잃지 않으면서 ‘찍고 찍히는’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과 손길이 만나야 합니다. 편해문 님 사진에서는 이 ‘길’들이 곱고 부드럽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눈길로는 참 가난해서 못나고 모자라다’고 여기는 이 아시아 나라들 어린이들은 ‘그나마 한국에서 놀이를 좋아하는 어른 한 사람이 사진으로 남겨 주어’서 뒷날 이 아이들 삶자락을 찾아보려고 할 때에 좋은 이야기로 남을 수 있겠다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아이들 놀이는 누가 담지? 누가 담았지? 누가 얼마나 담았지?’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 놀이를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을 둘러싼 여느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틀림없이 우리 나라에서도 ‘어린이 놀이와 삶’을 다룬 사진책이 몇 가지 나왔습니다. 이름있고 이름없는 숱한 사람들 작품에 ‘어린이 놀이와 삶’이 드문드문 섞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뿐입니다. 무언가 살가운 새길을 찾아보지 않습니다. 어딘가 새롭고 즐거운 새길을 걸어가지 않습니다. 고여 있거나 묶여 있거나 멈추어 있습니다. 다른 일에 너무 바쁘고, 돈벌이에 지나치게 매이며, 예술만 말하는 예술로만 뻗어 갑니다.


.. 어른들은 가짜 놀이로 아이들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  (160쪽)


 앞으로 열 해쯤 뒤에? 아니면 다섯 해쯤 뒤에? 또는 스무 해쯤 뒤에? 누구보다도 편해문 님 살림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가 뛰노는 모습이 담긴 ‘이 나라 어린이 놀이 모습 사진’이 《소꿉》에 이어 《고무줄》로, 또 《돌》로, 또 《줄》로, 또 《구슬》로 차근차근 거듭나고 새로워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이리하여, 마지막에는 더도 덜도 아닌 《놀이》로, 또는 《어린이 놀이》로 똑부러지게 빛나는 사진책 하나 우리 아이들한테 신나는 선물로 내어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봅니다. (4342.10.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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