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실 혁명 핀란드 교육 시리즈 1
후쿠타 세이지 지음, 박재원.윤지은 옮김 / 비아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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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교실혁명’을 꿈꾸려 한다면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10] 후쿠타 세이지, 《핀란드 교실혁명》



 엊저녁 서울 하계동으로 마실을 갔습니다. 제 둘레 가까운 분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인천부터 가자면 멀고, 아기는 집에서 쉬어야 하니 혼자서 길을 떠납니다. 용산까지는 빠른전철을 타고, 용산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탑니다. 그런데 청량리까지만 가는 전철이 석 대 잇달아 들어옵니다. 청량리를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고달프게 기다립니다. 청량리까지만 가는 전철이 왜 이리 잦은지 모를 노릇이지만, 서울 위쪽에서 달리는 전철 가운데에는 구로까지만 가는 전철도 잦습니다. 그래서 서울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서울에서도 어느 만큼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지루하거나 고달프게 기다려야 합니다.

 먼길 마실이라 숨을 트고 싶어 외대앞역에서 내려 조금 걷습니다. 외대 앞문에서 석계역 쪽으로 가는 길가 언덕마루에 자리한 헌책방 〈신고서점〉에 들러 봅니다. 퍽 오랜만에 찾아왔는데, 이 둘레에도 재개발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이 많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온통 재개발뿐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요즘 서울로 다니는 일터로 들어오는 신문은 꾸준하게 부동산 정보를 다루는데, 엊그제에는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3색 메뉴, 입맛 따라 골라 드세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즈음 아파트는 전국 어디에나 수도 없이 새로 허물고 새로 짓느라 법석입니다. 지구자원은 끝없이 쏟아지지 않는데 아파트 짓기는 용하게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치닫습니다. 더구나 ‘입맛대로 골라’ 먹으라는 아파트를 입맛대로 골라서 먹을 만큼 돈이 넉넉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아마도 오늘날 우리 삶터에는 돈이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사람도 많고 돈이 모자라다 못해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느냐 싶습니다. 골고루 나누고 고르게 즐기며 고루 어깨동무하는 삶터가 아닙니다.

 헌책방은 오랜만에 들를수록 돌아볼 책이 많습니다. 넘겨볼 책이 많고 장만하고픈 책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머니는 가볍습니다. 가벼운 주머니이지만 다문 책 하나라도 더 챙기고프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멈칫멈칫합니다. 그러다가 ‘이코 나라하라(奈良原一高)’라는 일본 사진쟁이 작품 《人間の土地》라는 책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남다른 사진책 이름이라 생각하며 죽 넘기는데 사진이 꽤 괜찮습니다. 책 뒤에 찍힌 책값을 들여다봅니다. 5만 원입니다. 허걱. 꽤나 비싼걸?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새책으로 들여와서 파는 책방에서라면 얼마쯤이었을까 하고. 얼추 8∼10만 원 가까이 하지 않으랴 싶고, 그런 값을 따진다면 몇 만 원 눅게 장만할 수 있는 셈 아닌가 싶습니다. 얌전하게 도로 꽂아 놓았다가 다시 꺼냅니다. 사진을 부지런히 다시 넘깁니다. 못 사더라도 사진만큼은 다 보자고 다짐합니다. 사진을 두 번째 다 넘겨봅니다. 다시 꽂습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뽑아듭니다. 오늘 장례식장에서 낼 부조돈을 반 덜어내자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오늘 상주로 선 분한테 선물로 드리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고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흙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오래도록 모신 어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허전해지는 마음은 아프고 슬프고 가라앉습니다. 어줍잖으나마 이 사진책 하나로 상주 되는 분이 마음을 달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혼자서 꿈을 꿉니다.


.. 핀란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왜일까? 공부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에게 배움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의사만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교재가 치밀하게 개발되어 있다 …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건 당연하죠.” 모든 학생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공부를 하든 말든 선생님한테는 남의 일인 걸요.”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므로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는 교육을 받는 듯했다 ” … (일본에서) 게으르다고 비난받는 젊은이들을 무조건 비난해야 할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공부하도록 키워내지 못한 사회를 비난해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  (38∼39쪽)


 장례를 치르는 곳에서 밤을 샙니다. 상주를 서는 분이 생태환경책을 펴내는 출판사 사장인 까닭에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이 제법 모이고, 홍성 풀무학교 식구들도 찾아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모두들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장례집에서 쓰는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그릇과 나무젓가락’이 마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병원이나 업체에서는 이런 물건만 쓰니까요. 참말, 환경운동 모임에서 ‘장례 치르는 일’을 다루는 회사를 하나 차려야 할 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님들 발길이 끊긴 깊은 밤까지 남은 네 사람은 저마다 방석을 깔개 삼아 한동안 눈을 붙이기로 합니다. 몇 시간이나마 몸을 쉽니다.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전철역으로 찾아갑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자전거 타고 오가는 사람을 꽤 여럿 스칩니다. 이 동네에서는 자전거 출퇴근이나 통학을 꽤 하는군요. 그렇지만 자가용이 훨씬 더 많습니다. 기름값이 비싸다느니 무어라느니 하면서도 자가용을 버리거나 떠나보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으레 ‘자가용 더 몰고 더 바지런히 일하면서 기름값 더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더 일하고 더 돈을 벌어 더 기름값을 댈 수 있다 한다면, 그만큼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아끼는 데에 들일 짬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우리 식구를 살피거나 보듬을 겨를 또한 줄어들며, 우리가 발디딘 이 터전을 보살피거나 지키는 데에는 힘을 못 쏟거나 덜 쏟지 않을까요?


.. 핀란드식 교육제도의 특징을 정리하면 밑바닥을 끌어올리되 위쪽은 제한 없이 개방하는 것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핀란드의 학교는 잘못하는 아이들을 끌어가긴 하지만 잘하는 아이들은 그냥 둡니다. 왜냐하면 잘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자율적으로 배우도록 키우면 아이들은 교사나 어른을 뛰어넘어 뻗어나간다 … 핀란드에서 교과서란 지식을 집대성한 단 하나의 교재가 아니라 하나의 질 좋은 자료로 취급받는다. 따라서 교과서는 공권력에 의한 검정 없이 자유롭게 채택된다. 또 교과서를 사용하여 배우는 일은 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교과서를 외우게 하는 일은 없다. 교사도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주입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방면의 지식이 없다고 해서 결함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지식은 불충분하다. 그러니까 계속 배우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다. 즐겁게 배우면 지식은 정착된다 ..  (54, 71, 112쪽)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 하나를 붙잡습니다. 《핀란드 교실혁명》이라는 조금 도톰한 책입니다. 얼핏 보기에 부피가 있는 듯하지만 282쪽짜리 책이고, 글자가 크며 빈자리 많고 줄사이가 넓어서 속알맹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사람이 쓴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덜어낸 알맹이가 많은데다가, 일본사람이 쓴 줄거리에 한국사람이 달아 놓은 보탬말이 거의 같은 이야기라서 금세 읽어치울 수 있습니다. ‘좀더 가볍고 작고 단출하게 엮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좀더 값싸면서 야무지게 꾸밀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아쉽습니다. 1만 5천 원짜리 282쪽짜리 책이 아니라 1만 원짜리 220쪽짜리 책으로 꾸밀 수 있었고, 손바닥으로 쥘 만한 작은 판으로 엮어 종이를 한결 아끼면서 8천 원짜리 책으로도 여밀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름이 말하듯이 《핀란드 교실혁명》이라 한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서 나누려는 우리들부터 ‘책 만들기 혁명’을 살필 수 있어야 한결 알맞거나 슬기롭거나 반가웠을 테니까요.

 한편, 한국사람이 보탬말을 붙인 대목은 적잖이 거추장스럽습니다. 굳이 보탬말을 붙이지 않아도 일본사람이 처음 적은 글만으로 ‘핀란드는 이렇게 가르치고 배운다’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이렇게 알아듣는 동안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어느 대목에서 모자라거나 안타깝거나 못났거나 슬프다’는 이야기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탬말을 달아 놓을 자리에 ‘핀란드 교육 이야기와 학교제도’를 좀더 실어 놓았다면 이 책이 더욱 알차고 아름다웠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힘든 노릇일까요? 우리한테는? 제도권 입시지옥을 스스로 뜯어고칠 줄 모르는 우리들은 조금 더 낮은 자리를 헤아리면서 마음밥 하나 튼튼하게 나누는 일을 하기가 더없이 어려울까요? 우리로서는?


.. 평가는 모두 힘을 합쳐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서열을 매겨 학부모가 학교를 고르게 하려는 의도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이 아니라 생각하는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분명했다 … 교사는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말을 거는 것이다 … “일본이라면 one부터 ten까지를 한 단원으로 묶고, white, red 등 10가지 색을 한 단원으로 묶어서 단원별로 단어를 외우게 했을 거예요. 그리고 시험을 계속 치르겠죠. 그런데 여기는 어떤가요?” “학급의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개인의 진도는 다릅니다. 똑같은 것을 배우는 데도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리는 아이가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반복시켜서 억지로 외우게 하지 않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모든 아이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목표를 부과할 수 없습니다.” ..  (83, 103, 107, 110쪽)


 똑같은 옷과 똑같은 연속극과 똑같은 스포츠와 똑같은 회사일과 똑같은 사랑놀이뿐 아니라, 똑같은 학교와 똑같은 아파트와 똑같은 도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리들은 《핀란드 교실혁명》 같은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만큼 달라지거나 새로워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저 지식조각으로 읽는 책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 삶과 교육과 문화와 마을을 뜯어고치거나 바로잡자고 하는 길잡이로 삼는 책이 될까요. 그예 심심풀이땅콩처럼 한 번 읽고 치워 버리는 책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 넋과 얼을 추스르고 가다듬으면서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도록 이끄는 책이 될까요.


.. 양호교실 보조교사가 말했다. “경계를 만들기 때문에 차별이 생깁니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아이들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뿐인데 말이죠. 뒤떨어졌다든지 특수하다든지 하는 구별은 하지 않아요.” … “아이들은 제각각이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죠. 핀란드에서는 아무 말 없는 아이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떠드는 아이는 답을 찾아낸 것이라고 여깁니다. 쉽게 생각해서 먼저 답을 찾아내는 아이도 있고 복잡하게 생각해서 시간이 걸리는 아이도 있겠죠. 그러니까 수업을 할 때도 기다리는 시간이 깁니다. 대개 기다리다 보면 어떤 학생이든 꽤 좋은 답을 만들어냅니다. 반응이 느린 아이가 할 수 없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수업 중에는 학생에게 멋대로 떠들지 못하게 하고, 답을 알면 손을 들게 합니다 … 잘하는 아이에게만 맞추면 수업은 빨리 진행될지 모르지만, 못하는 아이가 의욕을 잃어버리죠. 아! 일본은 한 반이 40명이라고요? 20명이면 기다릴 수 있지만 40명은 기다리기 힘들겠네요. 음, 20명 이상은 무리예요.” ..  (159, 212∼213쪽)


 종각역에서 내려 광화문 신문로 쪽으로 걷습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똑같이 숱한 양복쟁이들 숲을 헤치면서 걸어갑니다. 숱한 양복쟁이들은 저마다 몸담은 건물로 들어가고, 저 또한 숱한 건물들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제 일터가 있는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갑니다. 5층밖에 안 되는 건물이지만, 3층이나 4층을 다닐 때 계단을 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10층짜리 건물이라면 3층과 4층뿐 아니라 8층과 9층도 으레 승강기를 타겠지요. 10층까지 계단을 타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20층 아파트에서 18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고향동무들과 만나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걸어갈게. 잘들 들어가라.” 하고 인사했더니 모두들 손사래를 쳤습니다. “야, 너네 집이 어딘데 걸어가?” “걸어가도 한 시간 조금 더 걸릴 뿐인데, 뭐.” “어떻게 그런 거리를 걸어다니냐?” “옛날엔 다 걸어다녔잖아. 난 지금도 그 길을 그냥 걸을 뿐이야.”

 고향동무들 가운데 자가용 안 모는 사람은 저 혼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향동무가 아닌 책마을 선후배 가운데 자가용 없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몇 안 됩니다. 어제 장례집에 자가용 몰고 온 분이 있기에, “집도 바로 옆이라면서 이런 자리에는 택시를 타고 오시지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가 택시만 타고 돌아다녀도 자가용 몰 때보다 훨씬 적은 돈이 들 터이며 차댈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보험값이니 뭐니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만큼 지구와 우리 삶터를 더욱 사랑하는 길이 됩니다. 일이 있으면 빌리면(렌트카) 되고요.

 어쩌는 수 없는 어줍잖은 생각입니다만, 우리 스스로 운전면허증을 가위로 싹뚝 잘라서 버리는 매무새까지 가 닿지 않는다면 《핀란드 교실혁명》이 수십만 권이 팔리더라도 우리 교육 얼거리는 늘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에 그치리라 봅니다. 저마다 형편 때문에 자가용을 장만하더라도, 타야 할 때만 타고 되도록 멀리하는 매무새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핀란드 교실혁명》을 가슴찡하게 읽고 새기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고 말리라 봅니다.

 삶을 바꾸어 주는 책이 있기도 하지만, 삶을 바꾸어 주는 책을 바라기 앞서 내 삶을 바꾸는 가운데 만나는 책입니다. 내 삶을 바꾸어야 책이 책 그대로 보이며, 내 삶을 바꾸는 동안 책에 담긴 알맹이가 꾸밈없이 내 마음밭에 속속들이 스며듭니다. (4342.10.26.달.ㅎㄲㅅㄱ)


 ┌ 《핀란드 교실혁명》(비아북,2009)
 ├ 글 : 후쿠타 세이지 / 옮긴이 : 박재원, 윤지은
 └ 책값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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