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양장) -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
加藤一夫 외 지음, 최석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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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재는 왜 이리 따분해야 하나?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6]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



 엊저녁 고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동인천 가는 빠른전철을 코앞에서 놓친 다음 한참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십 몇 분이 지나 빠른전철이 다시 들어옵니다. 굳이 앉아서 갈 생각은 없었지만, 맨 앞줄에 섰으니 ‘오늘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철문이 열릴 무렵 갑자기 옆에서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새치기를 하며 밀고 들어오더니 잽싸게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습니다. 그런데 비스듬하게 앉습니다. ‘이 아줌마 뭐하는 짓이래?’ 조금 뒤 손짓으로 누군가를 부릅니다. 함께 타는 동무 아주머니인데 옆자리를 당신이 맡아 차지하려고 이처럼 비스듬히 앉아서 다른 사람이 못 앉도록 한 셈이었습니다.

 두 아주머니는 새치기를 했기에 자리에 앉습니다. 제대로 줄을 섰다면 서야 할 분들입니다. 나란히 앉은 두 아주머니는 저를 잠깐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호호호!” 하고 웃습니다.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 대단하신 분들이네. 아주머니들 나이를 보건대 틀림없이 아이 한둘쯤은 있음직한데 아이들 앞에서도 이렇게 살아가시나?’

 하루 지나고, 오늘 아침에 인천에서 서울로 길을 나설 때에도 어제와 같은 꼴을 겪습니다. ‘얼마나 다리가 아프고 졸립고 힘드시면 이렇게 새치기로 하루하루를 보내실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이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가녀린 마음을, 이웃이고 무어고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가벼운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알쏭달쏭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책을 펼쳐 읽습니다. 아주머니이든 아저씨이든 아가씨이든 젊은 사내이든 꼬맹이이든 할매이든 할배이든, 날마다 숱하게 겪는 새치기를 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바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치기를 않고 얌전한 사람도 많으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착하고 얌전한 마음이 자꾸자꾸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마음은 곧고 바른 쪽으로 가 있어도, 고달프고 지친 몸은 마음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본서는 일본의 점령 지역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설치한 도서관의 발자취를 추적한 것이다.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그 이유는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측면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그 지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과학 기술 등의 정보 자료를 수집하여 정부나 군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식민지의 일본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학교교육을 보완하거나 식민정책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셋째,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 전쟁의 발단과 원인이라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청일전쟁과 10년 후의 노일전쟁도 무엇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는지 현재의 일본인은 잊은 지 오래다. 동시에 명치정부에 의한 조선 침략의 목적을 위한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일과 노일이라는 이름이 그 본성을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  (14, 184∼185쪽)


 지옥철을 타고다닌 지 열 몇 해째가 되는 오늘날까지 돌아본다면, 한손에 책을 쥐고 전철을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 해서 더 착하거나 훨씬 얌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덜 바빠맞거나 덜 촐랑댄다고 느낍니다.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 말이 없는, 밀치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앞사람 등판이나 머리에 손전화나 신문을 턱 걸치고 게임을 즐기거나 주식시세표를 읽는, 땅위에 있는 전철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책을 손에 쥐어 보는 사람은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부터 새벽과 밤으로 고단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찾아가기 힘든 판인데, 여느 날은커녕 토요일과 일요일에라도 도서관 마실을 갈 겨를이 있을까 하고. 아니,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고단함 가득 쌓인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찾아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바다에 풍덩 빠지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더욱이, 담배 한 개비와 바깥밥 한 그릇과 술 한 잔과 노래 한 가락과 차 한 잔으로 고단함을 달래거나 잊어야지, 책을 읽으며 마음밥을 채우며 좀더 넉넉하고 너그럽고 따사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마음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 조선에서의 도서관정책은 식민정책이지만 도서관은 설치하지 않으며 기존 도서관은 폐쇄한다는 것에 오랫동안 중점을 두고 있었다 … 그렇다면 왜 일본은 조선에 도서관을 설립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일까? 도서관을 세우는 대신 무엇을 한 것일까? … 합병 직후(1910년) 초대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에 의해 ‘애국장서회진’이라는 분서가 단행되었다. 그 수는 수십만 책이라고도 전해지며, 헌병과 경찰이 조선인학교, 서점, 개인주택을 습격하여 압수하여 소각한 것이다. 내용이 민족적이라는 이유로 처분되었으며, 주로 역사서, 고전, 위인전, 지리서, 초ㆍ중등학교 교과서가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근대적 인쇄에 의한 대량 출판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그 후 조선의 문화 발전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 러시아의 남하를 억제하면서 만주를 취하려는 일본으로서는 동쪽으로부터의 침략 루트인 조선반도는 단순한 발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하여 조선에 대해서는 토지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일본의 일부로 삼아버리는 ‘황민화’라는 식민정책을 세우게 되었다. 언어를 위시하여 일상 생활양식과 관습, 종교, 역사관, 기타 일본과 상이한 모든 것이 말살 대상이 되어 일본풍으로 바꾸도록 강제되었다. 언론 출판 활동과 도서관 활동도 철저하게 탄압되었다 … (세월이 흘러 1921년이 되어) 조선총독부는 조선에 도서관이 없음으로 인하여 우민화정책마저도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조선총독부도서관을 설립하여 체면을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  (181, 38, 188, 201쪽)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느긋하게 책을 읽기 어려운 우리 나라입니다. 이 나라 초등학생은 그냥 초등학생이 아닌 줄을 누구나 알고 있겠지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 책하고는 아예 담을 쌓아야 하는 우리 나라입니다. 중고등학교를 거친 분이라든지,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닌다든지 한다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요. 그런데, 대학생이 된다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회로 나온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라밖으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책을 더 잘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돈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된다고 책을 찾아서 읽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너무도 마땅한 소리인지 모르지만, 연속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아리땁고 멋진 짝짝꿍들이 책방에서 말없이 마음밥을 냠냠짭짭하면서 사랑을 키우거나 북돋우는 모습을 보기란 더없이 힘듭니다. 연속극이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부터 그렇습니다. 책방마실을 할 겨를이 없고, 둘레에서 “야, 우리 책방마실 좀 다녀오자!” 하고 손목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없어요. “야, 우리 ○○도서관에서 만나자. 일이 있어 늦으면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야, 우리 ○○헌책방에서 만나자. 술 한잔 하기 앞서 서로한테 책 하나씩 사 주기로 하자.”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야, 오늘 아무개 생일인제 책방에 가서 좋은 책 몇 권 사 주자.” 하는 사람이 남아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일본사람을 깎아내리며 일컫던 ‘경제동물’이라는 말마디를 우리한테 붙여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돈벌레’라고 이름을 살짝 고쳐서. ‘돈만 아는 바보’라고 살을 붙여서. ‘돈 없이는 살지 못하는 멍텅구리’라고 낱낱이 밝혀서.


.. 북해도는 아이누의 자유로운 대지였지만 이 선주민족을 어떻게 ‘일본인’화할 것인지가 과제였다. 이를 위하여 근대교육이 중요시되었고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도서관을 그 속에 놓았다. 아이누 사람들은 정책난민 상태에 놓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소수민족으로서의 생활환경과 문화가 해체되었다 … 철저한 동화정책으로 아이누 사회는 해체된다. 근대 북해도는 그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 (대만에서는) 선주민족의 반란을 억제하고 인심을 모아 일반 대중을 사회 교화의 대상으로 하기 위한 사회교육 행정이 이때(1919년)부터 강화되게 되었다 ..  (63, 88쪽)


 대학교재로 쓰는구나 싶은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391쪽짜리 책이요 책값은 3만 원입니다. 카도 카즈오, 카와타 이코이, 토조 후미노리라고 하는 일본사람 셋이 함께 쓴 책입니다. 책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 나라는 일본한테 식민지로 눌려살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겪어야 한 생채기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93쪽을 보면, 1928년에 일본 내무국장이 “도서관을 통하여 내지의 문화를 주입시킴과 동시에 국어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196쪽을 보면, 일본 문부성이 “(1) 고등교육은 정신적 욕구, 특히 자유에 대한 희구를 높이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좀더 높은 교육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형편을 나쁘게 하는 일이다. (2) 조선인을 일본인보다 열등하다고 보고 싶다. (3) 조선인의 교육을 위해서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 (4) 조선인이 최하층 일본인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내놓았다는 대목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문헌정보학(지식정보학)을 배우는 대학생들이 교재로 이 책을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옮긴이 최석두 교수는 일본사람 이름을 ‘암창구시’나 ‘대구보리통’이니 ‘목호효윤’이니 ‘이등박문’이니 ‘구미방무’라고 적습니다. ‘문무대보’니 ‘전중불이마’니 ‘문부이사관’이니 하고 적으며 옆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 이름을 밝혀 놓는데, 2000년대 한국땅 지식사회에서 일본사람 이름을 이렇게 읽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학과도 아닌 문헌정보학과에서 이렇게 사람이름을 가리켜도 되는지 궁금하고, 이런 번역투와 엮음새는 이 나라 대학생한테 어떤 지식을 나누어 줄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이라고 하는 책은 “아시아에서의 일본 근대 도서관사”라고 밝혀 놓았으나, ‘근대 도서관’이 어떤 몫을 맡았고 어떻게 꾸려졌으며 어떤 책을 갖추어 어떤 일에 이바지했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첫머리에 “왜 식민지에 도서관을 설치하였는가?” 하고 스스로 물으며, “침략한 나라의 민중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소위 황민화정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고 밝히는데, 이 말마디를 넘어서는 생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학문하는 대학생하고 대학교수한테는 어떠할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도서관을 꾸리는 사람한테든지 식민지 역사를 파헤치거나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한테든지 도서관 발자취를 좇고픈 사람한테든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든지, 이 책이 어느 만큼 보탬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교재는 이렇게 따분하게 엮어도 되는 책인지 모르겠고, 이렇게 써낸 일본사람 책을 우리가 굳이 옮겨내야 했을까 하는 궁금함을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일제강점기 한국 도서관 발자취”를 그러모은 자료가 거의 없지 않느냐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렇구나. 이만한 책조차 우리한테 없구나.’ 하며 고개를 떨굽니다. (4342.10.6.불.ㅎㄲㅅㄱ)


┌ 《일본의 식민지 도서관》(한울 펴냄,2009)
├ 가토 카즈오+카와타 이코이+토조 후미노리 씀 / 최석두 옮김
└ 책값 :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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