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4 : 읽고 싶은 책

 자전거책에 글 하나 쓰신 어느 분이 책을 서로 바꾸어 읽자고 연락해 옵니다. 제가 쓴 책을 보내고, 그분 글이 담긴 책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이 다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살면서 자전거를 만나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자전거를 좋아한다’거나 ‘자전거를 즐겁게 탄다’는 대목에서는 한동아리입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목에서 아쉽다고 느끼기에, 책을 펼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글을 쓴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 있지만, 모두 ‘서울이라는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도시에서 흙이나 자연하고는 동떨어진 일손’을 붙잡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이기에 더 빠르게 달리는 예쁘거나 잘 빠진 자전거한테 눈길을 두는지 모르지만, 좀 나이든 분들이 지난날 짐자전거와 얽힌 옛생각을 늘어놓듯 오늘날 사람으로서 오늘날 사랑받는 자전거와 얽힌 ‘추억’에 갇혀 있습니다.

 오랜만에 《블랙 잭》(데즈카 오사무)이라는 만화책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 또한 저 나름대로 제 ‘추억’에 사로잡히면서 책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고 새기고 받아들인다 할 텐데, 저부터 좀더 옳거나 바르거나 아름다운 책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제 옛생각에 사로잡힌 채 제자리걸음을 하듯 고인 물과 같이 책을 만나지 않느냐 싶습니다.

 받은 책을 덮고, 잠자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일거리 때문에 읽어야 해서 책상맡에 쌓아 놓은 책을 가만히 쓰다듬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당신들 스스로 하고픈 일이나 꿈꾸던 일이 아니라, 코앞에 닥친 먹고사는 일 때문에 버겁고 빠듯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을 못 읽는다고 하는데, 책과 함께 살아간다는 저부터 제가 느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책으로는 다가서지 못하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제 좁은 우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끼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좋아하며 즐기는 일을 찾고, 훌륭하면서 올곧은 책을 손에 쥐는 삶이란, 어떻게 보면 꿈같은 노릇이거나 이루지 못할 하늘나라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식구들 먹여살리고 내 앞가림을 하고 내 얼굴값과 이름값을 지키자면, 정작 내 넋과 얼을 알뜰히 추스를 겨를이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읽고 싶은 책’에서는 멀어지고 ‘읽기 싫어도 읽을밖에 없는 책’을 읽도록 길들여 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며칠 앞서 《적과 흑》 1950년대 옮김판을 오랜만에 들추었습니다. 스탕달 님 이 옛 작품을 읽고 싶어서, 헌책방에서 퍽 묵은 옮김판을 찾아내어 갖추었는데, 아직 첫 쪽조차 못 넘깁니다. 다른 숱한 책에 치여 자꾸 뒤로 밀립니다. 북녘에서 옮겨낸 적이 있는 ‘아리요시 사와코’ 소설 또한 장만하기는 했어도 못 넘기고 있으며, 김석범 님 소설 하나 또한 어렵사리 얻어 놓았으나 못 펼치고 있습니다. 혼자 살 때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읽고, 집에서 보리술 홀짝이면서도 읽은 책들이지만,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에는 어떠한 책조차 뒤적이기 힘듭니다. 따지고 보면, 책이란 이야기요 삶이라, 다른 이 얘기나 삶을 엿보지 말고 내 삶을 들여다보고 읽어도 넉넉하니까 책이 없어도 되는지 모르는데, 식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워도 되는데, 얌전히 꽂힌 책을 떠올릴 때면 눈물이 흐릅니다. (4342.7.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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