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5 :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책

 지난 2007년에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뒤 올 유월부터 두 번째 살림집으로 삼으며 지내고 있는 인천 중구 내동 골목집 2층 씻는방에서는 창밖으로 복숭아나무가 가까이 보입니다. 창문 밖으로 손을 뻗으면 나날이 익어 가는 푸른 열매를 쥘 수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열매가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알맞게 다 익은 다음 제가 슬그머니 따서 먹어도 괜찮을까 헤아려 봅니다. 동네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쪼아먹게 두어야 할까 싶기도 한데, 손 닿는 대로 마꾸 따지 않고, 꼭 한두 알만 따먹으면 괜찮지 않으랴 생각해 봅니다.

 지난 밤부터 새벽과 아침에 걸쳐 제대로 잠들지 못하며 찡찡대던 아기가 낮나절부터 새근새근 잠들어 주었기에 모처럼 마루에 나앉아 부채질을 하며 책을 펼칩니다. 지난달부터 조금씩 읽다가 지난주에 다 읽은 책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훑습니다. 나라안에서 한비야 님이 세계여행과 세계빈민구호 일을 하면서 이름값이 높다면, 이 책을 쓴 ‘소노 아야코’ 님은 일찍이 1950년대부터 비정부기구 일을 하면서 온누리 가난한 나라를 돕는 데에 힘을 보태면서 이름값이 높습니다. 저는 예전에 《계로록》이라는 책을 읽으며 ‘소노 아야코’라는 이름을 알았는데, 나중에 다른 책을 더 읽다 보니, 숱한 소설을 쓰는 가운데 가난한 나라 돕기를 오랫동안 해 왔음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참에 나온 책은 이제까지 쓴 책하고 사뭇 다르게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하고 스스로 묻는데, “숲은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으로 넘쳐나고 사람은 반딧불이의 빛을 헤치면서 걸어간다고 했다. 나는 그처럼 청정한 공기를 아프리카의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사람의 폐와 장은 물론 자동차 엔진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깨끗하고 강렬한 생기로 가득 찬 공기였다. 공업의 발전과 반딧불이의 서식은 양립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나는 카메룬과 방글라데시에서 알았다(78쪽).”는 이야기처럼, 당신은 ‘온누리 돈과 물질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하려’고 가난한 사람 돕는 일을 스스로 맡아서 해 왔다고 밝힙니다. 당신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나아가는 마지막 자리는 ‘반딧불이가 일본에서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데에 있고, 이렇게 이루어지자면 미국뿐 아니라 일본도 한국도 유럽도 인도도 한결같이 무기를 녹여 낫과 쟁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덮고 능금 한 알을 먹습니다. 어제 서울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능금을 한 봉지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손님한테 먹을거리를 차려 주어야 할 판에 거꾸로 얻어먹습니다. 집에서 옆지기하고 능금을 먹는데, 한 알을 그냥 먹을 때에는 깡지까지 먹기 힘듭니다. 그러나, 칼로 반을 쪼개어 먹을 때에는 씨앗까지 오독오독 깨물어 깡지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습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예전부터 늘 이렇습니다.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는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오숙희,1991)를 다시금 펼쳐 보려고 하는데, 잘 자던 아기가 어느새 깨어나 방긋 웃더니 엄마와 아빠 있는 데로 아장아장 걸어옵니다. “나는 어머니들에게 말하고 싶다. 딸로 하여금 같은 여성으로서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 생각해 보시라고(74쪽).”라는 대목까지 훑고는 책을 덮고 아기를 덥석 안습니다. (4342.8.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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