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다바타 세이이치 글 그림,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고장나서 버린’ 자전거일까, ‘버려서 망가진’ 자전거인가
[그림책이 좋다 70] 다바타 세이이치,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책이름 :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 글ㆍ그림 : 다바타 세이이치
- 옮긴이 : 엄혜숙
- 펴낸곳 : 우리교육 (2009.4.1.)
- 책값 : 1만 원
(1) ‘자전거 삶’이 되기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인천 골목마실을 하면서 ‘버려진 자전거’를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잘 안 타는 채로 오래 묶여 있는 자전거’는 드문드문 보는데, 이런 자전거들은 어느 만큼 비눈바람을 맞고 있다가도 누군가 데려가서 헌 쇠붙이로 다시 쓰거나 헌 자전거로 손질해서 다시 쓰곤 합니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안 버린다’라기보다는 ‘버릴 자전거가 없다’고 해야 맞는 말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제 고향 인천이라 하여도 아파트가 많이 몰린 데에는 어김없이 ‘버려진 자전거’가 곳곳에 묶여 있거나 나뒹굴고 있습니다. 전철역 앞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이제는 한국땅에서 상식처럼 되었는데, 전철역이든 기차역이든 버스역이든 학교나 관공서이든 ‘자전거 주차장’이라고 삼은 곳은 ‘자전거를 대어 두는 곳’이 아닌 ‘안 타거나 못 쓰게 된 자전거를 버리는 곳’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자전거 주차장’ 간수를 허술하게 할 뿐 아니라, 비눈바람을 맞지 않게끔 지붕을 씌워 놓지 않기 일쑤요, 지붕을 씌워 놓았어도 비눈바람이 으레 들이칩니다.
곰곰이 살피면, ‘자전거 주차장’에만 지붕이 제대로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버스역에도 지붕이 없기 마련이요, 지붕이 있어도 비를 제대로 못 가리기 마련입니다. 멋스럽게 꾸며 놓는 버스역 지붕은 곳곳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비눈바람을 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도록 마련한 버스역 지붕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이 모자란 탓인지, 생각을 안 하는 탓인지, 정책이 없는 탓인지, 정책이 엇나간 탓인지, 건설업자가 대충 짓는 탓인지, 건설업자가 함부로 짓는 탓인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다만, 이런 엉터리 ‘자전거 주차장’과 ‘버스역 지붕’이 판을 쳐도 우리들 스스로 아무 말이 없습니다. 만들어 주니 고마운 노릇이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이건 자전거 날쌘돌이입니다. 삐걱삐걱 괴상한 소리를 내던 날샌돌이는 결국 이런 곳에 버려졌습니다. “너무해! 난 쓰레기가 아니란 말이야. 제대로 손보면, 아직 힘차게 달릴 수 있다고!” .. (2∼3쪽)
지난주에 서울로 마실을 오며 대방동을 지나갈 무렵입니다. 지하도 들머리에 서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보았습니다. 몸통을 까맣게 바른 자전거인데, 얼핏 보기로도 버려진 자전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뒷바퀴에는 바람이 빠져 있고 안장은 사라졌습니다. 신문을 받아보면 신문사 지국에서 거저로 주는 자전거가 아닐까 싶은데, 예전 임자가 자전거 몸통을 까만 스프레이로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는 왜 여기에 멀뚱멀뚱 서 있을까요. 뒷바퀴에 자물쇠를 채워 놓은 모습으로 보건대, 틀림없이 자전거 임자가 있을 텐데.
누군가 이 자전거를 몰래 훔치려고 했을까요. 아니면, 이곳에 오래도록 묶여 있던 탓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장난 삼아 바퀴에 구멍을 내고 안장을 빼갔을까요.
자전거 임자가 자전거를 사랑해 주지 않아 오래도록 내버려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 자전거한테는 어김없는 임자가 있으니, 안장이든 다른 부속이든 훔쳐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임자 있는 자전거 부속’을 몰래 빼내고 훔칩니다.
저도 예전에 길가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조금 오래 볼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중요한 부속을 누군가 빼내는 바람에 자전거를 못 타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부속 빠진 자전거를 자전거가게로 끌고 가서 고쳤습니다. 그 부속은 그 자전거한테만 쓰는 부속이라 그 자전거를 다루는 대리점에서만 고칠 수 있는데, 그 부속을 빼낸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당신한테도 저와 똑같은 자전거가 있기에 그 부속을 빼냈는지, 재미 삼아서 슬쩍했는지, 아니면 자전거 타는 사람을 못마땅해 하기에 일부로 놀려 주려고 했는지 더없이 궁금했습니다.
..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 하나 도와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아, 나는 이제 틀렸어. 이런 채로 부슬부슬 녹이 슬어 죽고 말 거야!” 날쌘돌이는 엉엉 울고 말았어요 .. (8쪽)
우리는 자전거를 참으로 쉽게 얻고 쉽게 버립니다. 자전거를 쉽게 거저로 나누어 주고,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 버립니다. 자전거 한 대를 장만하느라 이삼십만 원을 썼다면, 또는 이삼백만 원을 들였다면, 섣불리 길가 아무 데에나 자전거를 버리는 일이 있겠습니까. 또는, 짐자전거를 장만하여 일터에서 짐을 나르는 분들이라면 당신들 자전거를 가볍게 내다 버리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자전거를 어디에 쓰려고 생각하면서 장만한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 타고다니겠다고 생각하면서 마련한다면, 자전거를 함부로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내 쓰임새에 알맞게 자전거를 장만하려 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멋져 보이는(뽀대나는) 자전거를 큰돈 들여 장만할 까닭이 없습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자전거를 타든, 가끔 먼 나들이 나가는 자전거를 타든 하려 한다면, 괜히 더 값나가는 자전거를 목돈 들여 마련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타는 자전거를 나중에 내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이라면, 또는 내 둘레 이웃한테 넘겨주거나 내 가까운 동무나 살붙이한테 이어주려는 마음이라면, 아무 자전거나 쉬 사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틈틈이 손질하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가운데, 언제나 ‘자전거 삶’을 즐겁게 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겐지 할아버지는 정말로 자전거를 잘 고쳤어요. 이제는 날쌘돌이도 다시 태어난 것처럼 쌩쌩해졌습니다. “자아, 날쌘돌이야. 너,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래?” “아프리카요?” “그래, 아프리카는 우리 인간들의 고향이란다. 그 아프리카가 이제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고 불끈 힘내고 있어. 희망 가득한 일이지. 여러 가지로 도움이 필요해. 난 너에게 그런 도움을 부탁하고 싶구나.” “나라도 괜찮아요?” .. (18∼19쪽)
봄부터 여름까지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석 달에 걸쳐 ‘자전거 정비’ 수업을 함께하면서 여러모로 자전거를 다시 생각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바라보는 눈길을 새삼스레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 어느 누구도 자전거를 처음 장만하던 날부터 자전거 수업을 하는 그때까지 ‘자전거 닦아 주기를 한 번조차 한 적이 없다’는 대목에서 놀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이 아이들한테 ‘얘야, 네 자전거는 네가 스스로 틈틈이 닦아 주고 만져 주고 기름 쳐 주고 해야지’ 하고 가르쳐 주지 못한 탓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 어버이 되는 분들한테 어버이가 되는 분들 또한 ‘자전거 손질하기’를 물려주지 못한 탓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전거 손질을 일러 주지 못한 탓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내 옷을 빨고, 내 손으로 내 옷을 기우며, 내 손으로 우리 집 걸레를 빨아 우리 집 방바닥을 닦고 하는 버릇을 일찍부터 들여 놓았으면 ‘자전거 닦고 손질하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입니다. 자동차도 틈나는 대로 닦아 주면서, 아니 자동차는 꽤나 자주 닦아 주면서 자전거를 안 닦아 준다면 어딘가 얄궂지 않겠습니까. 무언가 뒤바뀌지 않겠습니까.
.. “날쌘돌이야, 먼 곳까지 잘 왔구나! 아산티 사아나(정말 고마워)!” 마을의 아이들과 모샤 아주머니가 크게 기뻐하며 마중을 나왔어요. 모샤 아주머니는 마을 보건소의 산파예요. 이렇게 해서 날쌘돌이는 모샤 아주머니를 태우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 (36쪽)
자전거는 두 다리보다 빠릅니다. 자동차는 자전거보다 빠릅니다. 그런데 도심지에서는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그리 안 빠를 뿐더러 더 느리기도 합니다. 자동차는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큰짐을 자주 날라야 하지 않는다면 자전거로 나르는 짐으로도 넉넉합니다. 때로는 자동차와 자전거 없이 가방을 메거나 수레를 끌면서 짐을 날라도 됩니다.
자전거를 알맞고 올바르게 탈 수 있는 삶이 되자면, 먼저 내 두 다리와 내 두 손과 내 몸뚱이를 알맞고 올바르게 가누거나 부릴 줄 아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두 다리로 내 삶터를 느끼고 내 이웃 삶터를 헤아리는 가운데, 내 두 손을 펼쳐 내 온몸으로 내 이웃을 껴안고 내 동무와 식구를 껴안으며 내 삶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뭇목숨붙이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풀벌레이든 푸나무이든, 또는 풀꽃이든, 가만히 들여다보고 넌지시 손을 내밀며 따스히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가운데 비로소 ‘자전거 삶’이 열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씽씽이도 자전거요 날쌘돌이도 자전거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까닭은 씽씽 내달리거나 날쌔가 휘몰아치는 데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즐거웁자고 타는 자전거요, 바람맛과 다리맛과 땀맛과 길맛, 여기에 사람 사는 삶터를 두루 돌아보고 부둥켜안는 사랑맛을 함께 느끼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번역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를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고물자전거가 아닌 ‘날쌘돌이’였지만, 이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아무 데나 내다 버리면서 고물자전거가 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옆지기하고도 보고,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돌려읽으면서 생각을 나누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 자전거는 처음에는 어느 한 군데가 망가졌을 텐데, 자전거 임자인 아이는 틀림없이 ‘고장난 데를 안 고치고 그냥’ 탔을 테며, 이렇게 타는 동안 다른 곳도 하나둘 고장이 나면서 더는 탈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무 아쉬움 없이 내다 버렸으리라 봅니다.
이웃 일본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가볍게 얻은 물건을 가볍게 다루다가 버리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동무들을 따돌리고 이웃을 따돌리는 모양새도 똑같습니다.
.. “모샤 아주머니 큰일났어요! 아기를 낳으려는데 위험해요! 지금 빨리 와서 도와주세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아주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떠내려가서 자동차는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할게! 날쌘돌이야, 힘내렴!” 모샤 아주머니는 날쌘돌이를 짊어지고 강을 건넜습니다 .. (42쪽)
그렇지만 《고물자전거 날쌘돌이》에서 날쌘돌이는 길고양이들을 만나 새 길을 찾게 됩니다. 길고양이들은 저희하고 생각을 나눌 줄 아는 동네 꼬마 유끼짱한테 마음으로 이야기를 건네며 ‘버려진 날쌘돌이’를 살려 달라고 하고, 유끼짱은 낡고 망가진 날쌘돌이를 스스럼없이 자전거가게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자전거가게 할배는 기꺼이 날쌘돌이를 손질해 주며, 그런 다음 아프리카로 ‘원조품 자전거’가 되도록 다리를 놓아 줍니다.
.. 그날 밤, 날쌘돌이는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츠이마와 모샤 아주머니, 마을 모든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머리속에 뱅글뱅글 맴돌았습니다. “대단하구나! 이렇게 기쁜 일이 있다니, 나는 생각지도 못했어!” .. (52쪽)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함부로 타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좋은 책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부터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여느 때 나는 내 자전거나 이웃 자전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돌아보아 주고, 이렇게 돌아본 마음으로 당신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를 곱씹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느낍니다.
그예 수수하게 펼쳐지는 그림책이요, 딱히 도드라지는 사건사고가 없는 그림책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밋밋하다 할 수 있고, 그림책 겉장에 나오는 ‘유끼짱’이라는 아이가 끝에 다시 나오는 대목을 잇는 얼거리는 퍽 허술하다고 느낍니다. 이 그림책이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책임을 헤아린다면, 책끝이나 책머리에 ‘자전거가 버려지는 일’과 ‘자전거를 되살리는 일’과 ‘낡은 자전거를 손질해서 제3세계나 가난한 나라’로 보내는 이야기 들을 짤막하게나마 붙여 준다면,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한테 한결 도움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늘 일어나거나 부대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림책이 아주 드문 모습을 돌아본다면, 그림책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는 퍽 싱그럽고 괜찮은 이야기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이 그림책에 담긴 줄거리는 우리 둘레에 대단히 자주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웬만한 사람들은 으레 겪음직하거나 보았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우리네 그림책 작가나 글책 작가는 거의 못 그려내고 못 써냅니다. 보아도 못 느끼고, 겪어도 못 깨닫습니다. 그러니, 이렇게나마 번역 그림책을 낼밖에 없을 텐데, 나라밖 ‘좋은 생활그림책’을 옮겨내는 마음씀과 눈썰미를 조금 더 가다듬거나 모두면서 우리 땅 우리 사람 이야기로 꾸미는 새로운 생활그림책을 빚어낼 수 있으면 한결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342.8.2.해.ㅎㄲㅅㄱ)